[비즈니스포스트] 많은 남양유업 주주들은 17일 월요일을 허망하게 보냈다.
이 날은 사모펀드 운용사 한앤컴퍼니와 홍원식 회장간 주식양도 소송이 종지부를 찍을 수도 있는 날이었다.
▲ 낭양유업 경영권 소송 장기화에 주주들만 멍이 들고 있다. 사진은 남양유업 본사. <연합뉴스>
홍 회장 일가는 2021년 한앤컴퍼니와 경영권 지분 매매계약을 체결했다가 4개월 뒤 이를 번복하고 해지했다.
한앤컴퍼니는 적법하게 체결한 계약을 이행하라며 소송을 냈고 홍 회장 측은 한앤컴퍼니가 선행조건을 충족하지 않아 지분매각 의무가 없다고 맞섰다.
1심과 2심은 한앤컴퍼니 손을 들어줬다. 홍 회장 측은 대법원에 상고를 했다.
17일은 이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심리불속행’ 결정 시한일이었다. 심리불속행이란 말 그대로 대법원이 상고사건의 심리를 하지 않고 기각하는 것이다.
상고심 절차에 관한 특례법(상고심법)은 원심판결이 헌법 위반 또는 헌법의 부당한 해석에 해당하거나 사건의 법률위반 여부를 부당하게 판단한 경우 등 특정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으면 본안심리없이 2심 판결을 확정짓는다.
심리불속행 결정은 2심 법원으로부터 상고기록을 받은 날로부터 4개월 이내에 내려야 하는데 남양유업의 시한이 바로 17일이었다.
이날 대법원은 심리불속행 결정을 하지 않았다.
따라서 소송은 본안심리에 들어가게 된다. 이 경우 판결이 언제 날지는 아무로 모른다.
주주들은 소송이 빨리 종결되고 남양유업이 새롭게 이미지 쇄신을 해서 정상화되기를 원하고 있다.
1심과 2심에서 한앤컴퍼니가 잇달아 승소했기 때문에 심리불속행 기각(심리불속행 결정으로 인한 상고심 기각)에 대한 주주들의 기대는 컸다.
이들이 시한일까지 기대의 끈을 놓지 않았던 것은 과거 일부 사건의 경우 마지막날 결정이 나온 사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개인사업자에게 신용공여한도 초과대출을 한 행위로 금융당국으로부터 직무정지 등 중징계 처분을 받은 유준원 상상인그룹 대표의 불복소송은 올해 1월18일 대법원에 상고접수됐다.
그리고 딱 4개월째인 5월18일 심리불속행 기각결정이 나왔다.
일각에서는 본안심리로 넘어가면 판결에 수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행동주의펀드의 주주제안으로 지난 3월 남양유업 주주총회에서 감사로 선임된 심혜섭 변호사는 사회관계망(SNS)에 올린 글에서 “심리불속행 기간을 살짝 넘겨서 간략한 이유와 함께 판결을 내리는 경우도 많다”고 밝혔다.
그는 “대법원 입장에서도 아예 심리를 하지 않고 판결을 내리는 것보다는 간략하게라도 심리하고 이유를 기재하여 판결하는 것이 여론이나 사건 당사자 보기에도 덜 부담스럽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남양유업 분쟁처럼 사회의 이목을 크게 끌었던 사건이라면 바로 심리불속행 기각을 하기보다는 단기간 심리를 거치는 절차를 대법원이 선호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한앤컴퍼니와 홍 회장간 분쟁은 벌써 만 2년이 넘어가고 있다.
홍 회장 측이 한앤컴퍼니에 경영권 지분 53%를 3107억원에 넘기기로 계약한 것은 2021년 5월이다. 7월 임시주주총회에서 새 이사진을 선임한 뒤 주식과 대금 교환을 끝내면 거래가 최종 종결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주총 하루 전 홍 회장은 한앤컴퍼니에 엉뚱한 공문을 보냈다.
본인의 주소지로 거래종결일이 서면통지되지 않았으므로 아직 거래종결일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홍 회장은 끝내 주총 ‘노쇼’를 하였고, 9월에 주식매매계약을 해지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한앤컴퍼니가 거래종결을 위한 선행조건을 충족하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홍 회장 일가에 대한 직위 유지 등 예우와 함께 백미당을 포함한 외식사업부를 넘겨주기로 하는 등 몇가지 사안을 약속했지만 이를 지키지 않았다는 주장이었다.
1심과 2심에서 모두 한앤컴퍼니가 승소했다.
1심재판과정에서 홍 회장측은 이른바 주식매매 별도합의서라는 것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 문서에는 한앤컴퍼니나 홍회장측의 날인조차 없었다. 이는 홍 회장 지시를 받은 남양유업 간부가 작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문서에는 남양유업 재매각시 우선협상권 부여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에 대해 문서를 만든 남양유업 간부는 “회장님이 회사를 언젠가 다시 찾아올 것이라고 말씀하셔서 이에 대해 한앤컴퍼니측과 이야기가 된 것인 줄 알고 문구를 넣었다”며 “나중에 회장님께서 그런 의도로 이야기한 것은 아니라고 하셨다”고 증언하였다. 코미디 같은 일이었다.
재판부는 이 합의서에 대해 홍 회장의 일방적인 내심의 요구사항을 간부가 받아적은 것으로 신뢰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2심 재판부는 “사안을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검토해 봤지만 변론을 재개할만한 사유가 없었다”며 항소를 기각했다.
2심 재판부는 이 사건은 성격상 신속한 분쟁해결이 필요하고 홍 회장측이 내세운 주장이 기존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1심에서 1년여 기간동안 다수의 증인과 본인 신문이 이루어지는 등 제출된 증거로도 2심의 심리는 충분하다고 보아 변론재개신청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홍 회장 측은 2심 패소 뒤 “합의불이행에 따른 계약효력과 김앤장 변호사들의 쌍방대리 및 배임적 대리행위에 대한 사실관계나 법리다툼이 충분히 심리되지 못했다”는 입장문을 내고 상고 했다.
2년 넘는 기간동안 다툼이 이어지면서 남양유업은 여전히 적자에 시달리는 등 정상화 과정에 본격적으로 들어서지 못하고 있다.
남양유업 한 주주는 이렇게 말했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는 유명한 법언이 있다. 법원 판결이 늦어지면 정의를 실현하는 법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기업의 지배주주가 바뀌는 것은 기업가치 및 주주가치에 매우 큰 영향을 비치는 변화이다. 이렇게 중대한 변화에 대한 법적 판단이 조속히 이루어지지 않고 수년째 계속됨에 따라 소액주주는 물론 기업 이해관계자들이 극심한 피해를 보고 있다.”
그는 “상장기업 주주들이 법원의 일정까지 봐가며 투자해야 하는 처지에 몰리면 안되는 것 아니냐”며 “법원은 수많은 주주와 이해관계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조속한 판결을 내려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수헌 코리아모니터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