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만 TSMC가 미국 애리조나 파운드리공장에서 생산된 반도체 공급 가격을 대만에서 제조하는 물량보다 크게 높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
[비즈니스포스트] 대만 TSMC가 미국에 신설하는 파운드리공장에서 생산된 반도체를 대만 내 공장에서 제조된 제품보다 비싼 단가에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시설 투자금 및 운영 비용 부담과 미국 정부의 반도체 지원금 불확실성을 고려한 결정으로 분석되는 만큼 비슷한 입장에 놓인 삼성전자도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됐다.
3일 대만 디지타임스 등 외신보도에 따르면 TSMC는 미국 애리조나 공장에서 생산하는 반도체의 공급 단가를 최대 30% 이상 높여 받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대만에 위치한 공장에서 생산한 반도체를 고객사들에 공급하는 가격보다 훨씬 비싼 금액을 받는다는 의미다.
디지타임스에 따르면 TSMC는 이미 주요 고객사와 이러한 계획을 두고 협상에 들어간 것으로 파악된다. 4나노 및 5나노 반도체 단가를 20~30% 높이는 방안이 거론된다.
TSMC가 이처럼 고객사들의 반발이 예상되는 가격 정책을 꺼내든 배경은 갈수록 늘어나는 투자 비용 부담과 반도체 지원법 관련한 불확실성 때문으로 꼽힌다.
대만이 아닌 미국에 공장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데 드는 비용은 50%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달러화 강세로 최근 금전적 부담이 더욱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바이든 정부는 반도체기업의 현지 공장 투자에 보조금 및 세제혜택을 제공하는 반도체 지원법을 앞세워 TSMC의 생산설비 설립을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있다.
그러나 TSMC가 받게 될 보조금이 장기적으로 이러한 비용 부담을 만회하기 충분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정부 지원을 받게 될 지 여부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다.
바이든 정부가 반도체 지원금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TSMC의 중국 내 시설 투자를 제한하고 민감한 사업 기밀정보와 초과이익 등을 미국에 공유하라는 요구를 내놓았기 때문이다.
TSMC가 미국에서 제조하는 반도체 공급 단가를 높이기로 한 점은 결국 미국 정부 지원을 온전히 받지 못하게 될 가능성도 염두에 둔 것으로 것으로 분석된다.
물론 대부분의 고객사는 TSMC의 가격 인상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공산이 크다.
하지만 첨단 미세공정 기반 시스템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가 이어지는 데다 미국 정부도 자국 기업들에 꾸준히 반도체 자급체제를 압박하고 있는 만큼 선택지가 제한적일 수도 있다.
바이든 정부가 애플을 비롯한 미국 기업들에 미국 내 공장에서 생산되는 반도체 사용을 유도하는 정책을 앞세울 가능성이 유력하기 때문이다.
TSMC의 4나노 미세공정 등 첨단 기술 기반의 시스템반도체 생산능력은 지금도 주요 고객사들의 수요에 못미치는 수준으로 파악된다. 결국 TSMC가 대만 공장보다 더 높은 가격을 요구하더라도 애플과 엔비디아, AMD와 퀄컴 등 주요 고객사가 이를 받아들여야만 할 수도 있다.
▲ 삼성전자 반도체 파운드리공장 내부. <삼성전자> |
이러한 TSMC의 전략적 선택은 자연히 파운드리 최대 경쟁사인 삼성전자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삼성전자도 현재 미국 텍사스주 테일리에 새 반도체 파운드리공장을 신설하고 있어 TSMC와 매우 비슷한 입장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IT전문지 톰스하드웨어는 “미국 내 일부 고객사들은 파운드리 단가와 관련한 협상력을 얻기 위해 반도체 위탁생산 물량 일부를 삼성전자에 넘기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TSMC 대신 삼성전자의 첨단 반도체 파운드리 생산라인을 활용하면 비용 부담이 상대적으로 덜할 것이라는 데 기대를 걸고 있다는 의미다.
물론 이는 삼성전자가 TSMC와 달리 미국에서 생산하는 반도체 단가를 한국 내 공장의 제조 물량과 비슷하게 유지할 것이라는 가정을 담고 있다.
삼성전자는 미국 파운드리 공급 단가를 놓고 딜레마를 안고 있다. 삼성전자 역시 환율 변동 등 영향으로 테일러 공장 시설투자 금액이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수익성을 고려해 TSMC와 같이 파운드리 단가를 높이면 미국 주요 고객사들의 선택을 받기 어려울 수 있다. 반대로 가격을 경쟁력 있게 유지한다면 수주 기회를 늘릴 수 있지만 미국 내 공장에서 당분간 큰 손해가 불가피해질 수 있다.
더구나 미국 인텔도 파운드리사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며 미국에 대규모 공장을 신설하고 있는 만큼 경쟁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은 더욱 복잡해질 수 있다.
톰스하드웨어는 “AMD와 퀄컴, 엔비디아 등 반도체 설계기업은 TSMC와 삼성전자, 인텔 등에 파운드리 물량을 나누어 맡기는 멀티소싱 전략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삼성전자가 이런 상황에 기회를 잡으려면 당분간은 미국 공장에서 손해를 입더라도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TSMC의 고객사 물량을 최대한 빼앗아 와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톰스하드웨어는 TSMC가 파운드리 단가를 높이면서 삼성전자와 인텔에 고객사 물량을 일부 넘겨주더라도 여전히 생산라인을 최대치로 가동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