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상경대를 나온 출신들이 은행 핵심 보직을 맡아 승승장구하는 일은 갈수록 줄어들 수도 있다.
금융권에서 디지털 전환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관련 분야 이해도가 높아야 하는 것은 물론 직접적 업무경험을 지닌 인물이 중용되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출신으로 KB국민은행에 영입된 윤진수 부행장이 대표적인데 그의 직함이 테크그룹 부행장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30일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인공지능 역량 강화에 윤진수 KB국민은행 테크그룹 부행장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
윤 부행장은 삼성전자 빅데이터센터장, 현대카드 N 본부장 등을 역임한 디지털전문가인데 순혈주의가 강한 금융권에서 디지털 전문성을 바탕으로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KB국민은행은 7월까지 지점에 '인공지능 안내 키오스크'를 도입하고 올해 말까지 KB스타뱅킹에 인공지능을 활용한 업무용 챗봇을 적용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이를 위해 12일 KB국민은행은 여의도 신관에 'AI체험존'을 열고 인공지능 금융상당 경험 제공과 고도화를 위한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KB국민이 제공하게 될 인공지능 상담서비스에는 자체개발한 금융언어 모델 'KB알버트'와 자연어 처리 플랫폼 'KB스타'가 탑재된다.
KB알버트는 2020년 6월 KB국민은행이 내놓은 한글 자연어 학습모델이다.
인공지능 기술과 KB국민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1억 건 이상의 텍스트 데이터를 바탕으로 어려운 금융언어를 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한다. KB스타는 비정형 텍스트 데이터 분석을 위한 일종의 플랫폼이다.
KB국민은행은 인공지능 기술 연구개발을 위해 스타트업과 교류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AI체험존의 가상상담 서비스 아바타는 영상합성 스타트업 머니브레인과 협력한 결과물이다.
25일에는 인공지능 스타트업인 업스테이지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고 자체 인공지능 로드맵을 구축해 특화된 인공지능기술을 고도화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KB국민은행이 인공지능을 중심으로 디지털 전환에 속도를 내는 상황에서 외부출신인 윤진수 KB국민은행 테크그룹 부행장이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윤 부행장은 KB알버트 개발을 이끈 장본인이다. 그는 데이터, 인공지능 등 디지털 분야에서 전문가로 꼽힌다.
앞서 KB국민은행은 2019년 4월 윤 부행장을 데이터전략본부장 전무로 영입했다. 순혈주의가 강한 은행에서 임원을 외부에서 영입했다는 점 때문에 주목을 받았다.
이후 윤 부행장은 2020년 말 인사에서 KB국민은행 테크담당 부행장에 오르며 영입 1년 여 만에 부행장 자리도 차지했다. KB국민은행이 디지털전환을 얼마나 중요한 과제로 삼았는 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은행권에서는 흔히 부행장에 오르는 것을 '별을 단다'고 표현한다. 특히 KB금융그룹에서는 은행 부행장이 다른 계열사 대표로 다음 행선지를 옮기는 경우가 많아 더욱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물론 다음 은행장을 노려볼 수도 있다.
윤 부행장은 올해부터 KB금융지주 IT총괄(CITO)을 겸직하며 그룹 전반의 디지털 전환도 이끌고 있다.
윤 부행장은 1964년에 태어나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하고 카이스트에서 전산학 석·박사 과정을 마쳤다. 삼성전자, 삼성SDS, 현대카드, 현대캐피탈 등에서 빅데이터를 담당했다.
디지털 전환이 금융권의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면서 다른 은행지주들도 핵심인력을 외부에서 확보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금융과 결합하는 디지털 기술이 점점 고도화되는 상황에서 금융권 경력에 치우친 내부출신만으로는 과감한 디지털 전환이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신한은행은 2020년 말 인사에서 디지털 혁신조직을 신설하고 김혜주 전 KT 상무와 김준환 전 SK주식회사 C&C 상무를 각각 마이데이터 유닛장(상무), 데이터 유닛장(상무)에 앉혔다.
김정한 하나금융지주 부사장은 삼성전자 소프트웨어 연구소장 출신이다. 그는 현재 그룹의 CICTO(디지털 총괄책임자), CDO(데이터 총괄책임자)와 하나금융융합기술원장 겸 하나금융티아이 부사장을 겸임하며 그룹 디지털 전환을 이끌고 있다.
이 밖에 노진호 우리은행 디지털금융최고책임자(CIO), 이상래 NH농협은행 디지털금융부문장 부행장도 각각 한글과컴퓨터, 삼성SDS 출신으로 디지털 전환을 이끌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공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