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이 가상화폐(암호화폐)와 관련된 과세를 놓고 기획재정부와는 다른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기획재정부의 정책방향을 고려하면 국세청의 태도는 내년에 마련될 세법 개정안의 예고편일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 국세청이 빗썸에 800억여 원의 과세를 결정한 것은 기획재정부가 마련 중인 세법 개정안의 예고편일 수도 있다. |
30일 가상화폐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국세청은 앞으로 업비트, 코인원 등 국내 가상화폐 거래사이트를 운영하는 회사에 세금을 부과할 가능성이 크다.
국세청은 이미 빗썸에 803억 원의 세금을 부과했다. 가상화폐 거래와 관련해 세금이 부과된 첫 사례다.
국세청이 빗썸에 통보한 과세내용은 외국인 소득세 원천징수다. 빗썸이 가상화폐 거래를 통해 소득을 올린 외국인의 소득세를 원천징수해 납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세청은 빗썸에 과세하며 외국인이 국내 가상화폐거래소에서 가상화폐 거래를 통해 얻은 이익을 소득세법상 ‘기타소득’으로 봤다.
문제는 현행 소득세법상 아직 가상화폐 거래에 따른 이익에 과세할 수 있는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기획재정부도 소득세법의 한계를 인식하고 8일 가상화폐 거래에 소득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구체적 과세방안을 마련해 2020년도 세법 개정안에 담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과세 방침만 정해졌고 양도소득과 기타소득 중에 어떤 것을 택할지 등 세부적 내용은 아직 검토단계”라고 말했다.
국세청이 빗썸에 과세한 것은 기획재정부가 아직 결론 내리지 못한 내용을 놓고 먼저 결론을 내린 셈이 된다. 때문에 국세청의 태도를 놓고 기획재정부와 엇박자를 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국세청이 기획재정부의 산하기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국세청의 빗썸에 대한 과세가 구체적 과세 방안이 마련되기 전이라도 기획재정부의 방침이 정해진 만큼 현행 법령 해석상 가능한 범위에서 세금을 부과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국세청이 이번 과세에서 외국인만을 대상으로 한 것도 소득세법 규정이 내국인과 외국인은 다르게 규정하고 있음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소득세법은 내국인의 기타소득을 놓고는 열거주의를 취하고 있지만 외국인의 기타소득은 ‘국내에 있는 자산과 관련해 받은 경제적 이익으로 인한 소득 등’이라는 문구를 통해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게다가 가상화폐 거래에 따른 이익을 기타소득으로 보게 되면 다른 금융소득 및 사업소득과 합산해 연 1회 세금을 매기는 방식을 적용할 수 있다는 행정적 이점이 있다.
가상화폐 거래에 따른 이익을 양도소득으로 판단하면 가상화폐거래소로부터 거래 내역을 전부 제출 받고 가상화폐의 기준시가를 산정하는 등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가상화폐 거래에 따른 이익을 기타소득으로 봤다는 것은 가상화폐를 자산으로 간주했다는 의미도 있다.
미국 국세청을 비롯해 유럽 사법재판소 등 해외 주요국가에서는 가상화폐를 상품이 아닌 화폐적 속성을 지닌 자산으로 보는 것이 대체적 흐름이다. 기획재정부는 구체적 과세지침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해외 주요국가의 사례를 참고할 가능성이 크다.
부과제척기간도 고려됐을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소득세법에 따르면 소득이 발생한 뒤 5년이 지나면 과세할 수 없기 때문에 국세청이 다소 무리한 해석이라는 논란을 무릅쓰고 일단 과세를 결정했다는 것이다.
다만 현행 소득세법상 불명확한 부분을 놓고 국세청과 과세대상 기업의 다툼은 불가피해 보인다.
국세청의 판단과 같은 내용으로 법률이 개정돼도 개정된 법률이 과세불소급의 원칙에 따라 법률 개정 전 과세에는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빗썸 관계자는 국세청의 과세를 놓고 “국세청의 과세처분은 확인했고 부과된 세금은 곧 납부할 것”이라면서도 “이견이 있는 부분은 권리 구제 등 절차에 따라 충실히 소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