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는 매년 우수 딜러사를 선정하는 '딜러 어워드'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
수입차 브랜드 인피니티는 최근 7인승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 ‘QX60’의 가격을 최대 700만 원 이상 파격적으로 내렸다.
하지만 이 모델은 이미 지난해부터 여러 프로모션을 통해 최대 1천만 원이나 할인해 주던 차량이다.
이런 수입차의 속보이는 가격정책은 인피니티뿐이 아니다.
출시한 지 반 년도 되지 않는 차를 20% 가까이 할인해 판매하는 일은 수입차시장에서 흔한 일이다. 이미 제값을 주고 차를 구매한 소비자는 뒤늦게 억울해 할 수밖에 없다.
수입차는 언제, 어디서, 누구를 통해 사느냐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이 때문에 소비자의 혼란만 가중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제값 주고 사면 바보’라는 인식과 함께 수입차 가격거품 논란만 키운다는 것이다.
수입차시장이 한 단계 도약하려면 지금과 같은 비합리적이고 불투명한 가격정책이 바뀌어야 한다는 요구도 높아지고 있다.
◆ 수입차 왜 이렇게 자주 그리고 많이 할인할까
수입차업체는 거의 매달 비정기적으로 큰폭의 할인행사를 진행한다. 이들이 할인행사를 많이 진행할 수 있는 이유는 처음 가격이 책정될 때부터 마진이 매우 높게 붙기 때문이다.
수입차 가격은 여러 단계를 거쳐 정해진다. 우선 수입차업체들이 해외에서 차를 들여오면 수입원가에 관세가 붙는다. 수입원가와 관세를 더한 금액에 개별소비세가 붙고 개별소비세의 일정 비율만큼 교육세도 붙는다.
여기에 한국법인과 딜러사의 마진이 더해진다.
수입차 브랜드의 한국법인들은 외국의 본사로부터 차량을 수입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역할을 한다. 독일에 본사가 있는 BMW, 메르세데스-벤츠가 각각 한국법인인 BMW코리아와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를 두고 있는 식이다.
하지만 이들은 판매를 직접 하지는 않는다. 수입차의 국내 판매는 별도의 딜러사가 맡고 있다.
한국법인과 딜러사의 마진폭은 보통 10~14% 안팎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둘을 합치면 30% 가까이 가격이 뛰는 셈이다.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차를 큰 폭으로 할인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이런 구조에서 온다.
◆ 가격경쟁 부추기는 시장구조
수입차업체는 수입한 차량이 팔리지 않을 경우 큰 폭의 할인을 해서라도 재고를 처리한다. 현금을 확보해야 하는 데다 시장점유율이 높아야 시장에서 더욱 잘 팔리는 경향이 있어 일단 판매량을 늘리고 보자는 식이다.
한국법인과 딜러사들에 할당된 판매량도 할인경쟁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꼽힌다.
수입차 브랜드 본사는 보통 한국에 수출할 물량을 1년 단위로 미리 정해놓는다. 이 물량이 곧 한국법인의 할당량이 되는 셈이다. 한국법인은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할인폭을 높이게 된다.
한 업체가 특정차종을 할인하기 시작하면 비슷한 차급의 경쟁모델들 역시 할인에 들어간다.
특히 시장점유율이 높고 가격도 비싼 독일 브랜드들이 할인에 들어갈 경우 인피니티나 볼보 등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떨어지고 가격이 싼 브랜드들도 할인해 파는 수밖에 없다.
딜러사들의 경우 실적이 월 단위로 계산돼 실적압박이 심하다. 이들은 월말에 가까울수록 각종 프로모션 등을 통해 할인율을 높여주기도 한다.
이러다 보니 일부 딜러사들은 정해진 판매량을 채우기 위해서 이익을 포기하면서 차값을 큰 폭으로 할인해 주기도 한다. 딜러사들의 영업이익률이 매우 낮은 것도 이 때문이다.
아우디코리아는 딜러사들에게 최소 마진을 보장해 차를 넘긴 뒤 판매 할당량을 제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할당량을 넘겨야 차값의 3%를 인센티브로 지급하는 방식이다. 일단 할당량을 넘겨야 하는 구조에서 딜러사들이 손해를 보고 팔 수밖에 없다.
2013년 아우디코리아의 딜러사 고진모터스와 태안모터스의 영업이익률은 2%대에 머물렀다. BMW코리아의 딜러사 가운데 하나인 한독모터스의 영업이익률도 1%대에 그친다.
폴크스바겐의 딜러사인 클라쎄오토는 2013년 28억 원의 적자를 내며 적자전환했다.
|
|
|
▲ 지난해 6월 서울 강남구 메르세데스-벤츠 강남 전시장에서 모델들이 5세대 '더 뉴 C클래스'를 선보이고 있다.<뉴시스> |
◆ 수입차의 고가전략
수입차들이 고가전략을 유지하고 있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비싸야 좋다는 인식 때문에 가격을 내릴 수 있어도 내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국내 수입차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독일차 브랜드들은 유로화 가치가 12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할 만큼 떨어졌지만 가격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유로화 환율은 최근 1유로에 1200원대가 무너지는 등 1년 동안 20% 가까이 떨어졌다. 유로화 가치가 떨어지면 유럽에서 차를 구입하는 비용이 그만큼 줄어든다. 하지만 이를 반영하는 수입차업체는 없다.
수입차업체들은 차값이 소비자 신뢰와 직결되는 만큼 환율변동에 따라 즉각적으로 조정하기 힘들다는 입장을 보인다.
유럽산 수입차에 대한 관세가 지난해 완전히 철폐됐지만 수입차 가격은 큰 폭의 변화가 없거나 오히려 소폭 올랐다. 한국은 2011년 유럽연합(EU)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으면서 1500㏄ 이상 수입차에 붙던 8%의 관세를 단계적으로 없앴다.
하지만 2012년 5190만 원에 판매되던 메르세데스-벤츠의 C220 모델은 관세가 완전히 사라진 뒤에도 가격을 올려 5600만 원에 판매하고 있다. 신모델이라는 이유를 내세웠다.
◆ 시장 발전 위해 투명한 가격정책 필요
수입차업체들이 일관성 없는 가격정책을 펴면서 그 피해가 소비자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되고 있다.
소비자는 자신이 산 가격이 정말 싼 가격인지, 어느 정도 싼 가격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조금이라도 더 싼 가격에 차를 사려면 일일이 발품을 팔아 딜러들을 만나야 한다.
또 차값을 지나치게 깎아 수입차업체들의 수익성이 악화하면 결국 부품값이나 공임비로 적자를 보전하게 된다. 장기적으로 소비자들에게 피해로 돌아가게 되는 구조다.
지금까지의 가격정책을 유지하면 수입차시장의 성장에도 한계가 올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오락가락하는 가격정책으로 수입차 브랜드에 대한 불신이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수입차가 가격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고소득층의 전유물이었지만 수입차 대중화 시대가 열리면서 투명한 가격정책에 대한 요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투명한 가격 공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산업통상자원부, 국토교통부, 관세청 등 해당 정부부처 관계자들은 가격공개를 요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고, 수입품의 원가를 공개하는 것 자체가 무역마찰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말한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