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
법치주의에 뿌리를 둔 나라에서 지극히 당연한 얘기다. 하지만 교과서에도 나오는 이 말이 현실에서도 통할 것이라 믿는 국민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일일이 사례를 열거하지 않더라도 돈과 힘이 있는 이들에게 법은 관대할 때가 많았다. 재벌 총수가 관련된 재판 결과를 놓고 특혜 시비가 꼬리표처럼 따라붙곤 하는 이유다.
그러다보니 '법 앞에 만인만 평등하다'는 우스갯 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여기서 만인이란 하늘 아래 모든 사람이 아니라 소수의 특권 있는 자를 뜻하는 상징적 숫자 1만 명을 가리킨다.
신동빈 회장은 대한민국 재계 서열 5위의 롯데그룹 총수다. 그는 보석으로 풀려나기 위해 ‘경영권 불안’ 카드를 꺼내 들어 재판부에 '호소'하고 있다.
신 회장과 변호인 측이 보석 허가를 요청하며 내건 명분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일본 롯데홀딩스 경영권 방어를 위해 29일 열리는 롯데홀딩스 주주총회에 꼭 참석하도록 풀어달라는 것, 재계 서열 5위의 그룹을 이끄는 처지에서 결코 도주할 우려가 없다는 것, 현재 재판을 받고 있는 뇌물공여죄와 관련해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검찰은 신 회장 측의 보석을 허가해서는 안된다고 반론을 펴고 있다.
검찰 측의 주장은 이렇다. “재계 5위 그룹의 총수라는 점에서 사회적 신분이 보통 국민과 다르다고 다르게 대우받는 사유가 될 수 있는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검찰은 “피고인은 사회적 영향력이 매우 큰 사람으로 잘못을 했으면 오히려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롯데그룹은 이미 지난해 신동주 전 부회장과 벌어진 경영권 다툼이 사실상 신 회장의 완승으로 끝났다고 선언했다. 언론에서도 한일 롯데의 '원톱' 리더로서 신 회장의 우위를 공인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이런 점에서 신 회장이 경영권 불안을 이유로 보석을 청구한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지금까지의 주장을 뒤집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신 회장 측 주장대로 경영권이 불안할 수도 있다. 이번 일본 롯데홀딩스 주총은 신 회장의 이사 해임 건을 다룬다.
신 회장이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에서 해임되면 한일 롯데그룹 사이에 수십년 동안 이어온 연결고리는 사실상 끊어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다 하더라도 신 회장의 경영권은 개인의 문제이다. 식당을 하다 잘못을 저지른 혐의로 감옥에 갇힌 사람이 "내가 없으면 식당 문을 열 수 없으니 풀어달라"고 하는 것과 다를 게 없는 논리다.
법조계에서는 "
신동빈 회장이 경영불안을 이유로 보석을 청구한 것은 법보다 롯데 경영권을 우위에 두는 것"이라고 꼬집는 시각도 있다.
대형 로펌에서 형사사건을 전문으로 하는 한 변호사는 “경영권 분쟁 소지라는 게 상당한 이유가 될지 의문”이라며 “뇌물같은 죄를 범했을 때는 오히려 경영권에서 배제되는 게 통념이 아닌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신 회장의 일본 롯데 경영권이 불안한 근본적 원인은 온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형제 다툼에서 비롯됐다. 그런데도 이를 이유로 재판부에 보석을 호소하는 모습은 국민의 감정으로 볼 때 동의하기 어려운 구석도 있다.
재판부로서는 고민이 깊을 것으로 보인다. 보석을 허가하면 재벌 특혜시비 논란이 다시 거세질 수도 있다. 일본 롯데홀딩스 주총이 열리기까지 사흘밖에 남지 않았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