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규율을 세운다는 '군기잡기' 문화는 권력을 이용한 강자의 약자 괴롭히기라는 형태로 표출되면서 직장인들을 위협하고 있다.
이 악습을 없애려면 기업이 기강잡기에 기대 일상적 업무환경을 유지하는 관례를 버리고 원활한 소통체계를 만드는 등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부산 남구 동명대 중앙도서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제5회 간호학과 나이팅게일 선서식'에 참가한 간호학과 4학년 학생 81명이 촛불 의식을 하고 있다. <뉴시스>
1일 간호사들 소셜커뮤니티인 '널스스토리' 등에 따르면 "태움문화가 없는 병원은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간호사들 사이에서 선배가 후배를 정신적으로 괴롭히는 관례로 자리잡고 있다.
태움문화는 ‘후배의 영혼이 까맣게 탈 때까지 선배가 (정신적 신체적) 폭력을 가하는 문화’라는 뜻이다.
업무와 관련이 없는 일을 시키거나 언어폭력을 일삼고 손찌검을 하는 등의 사례가 알려졌다. 태움문화가 자살까지 몰고 간 사례도 최근 드러났다.
간호사 집단처럼 '태움문화'라는 특정 단어가 없어도 승무원집단이나 군대, 대학가 등에서 상대적 약자들이 권력에 눌려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장애를 얻는 피해사례가 빈번히 나온다.
최근 불거진 미투운동과 관련한 설문조사에서도 성폭력의 본질적 문제로 응답자 71.6%가 ‘권력관계’를 꼽았다. 이윤택 연출가의 성폭력 의혹에서도 한 여자선배가 여자후배들에게 "너 하나만 희생하면 모두가 편하니 이 연출가에게 안마를 하라"며 권력을 이용한 괴롭힘을 일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나미 서울대병원 인권센터장은 한 라디오방송에서 “간호사 뿐 아니라 어떤 집단이든 성별을 불문하고 태움문화가 나타난다”며 “이는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는 군사문화의 잔재”라고 말했다.
가해자들이 이런 가혹행위를 정당화하는 보편적 이유 가운데 하나는 효율적 업무수행을 위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개개인이 과중한 업무를 맡는 근무환경에서 기강이 잡혀야 빡빡한 일정을 소화할 수 있기 때문에 ‘필요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태움문화를 암묵적으로 용인하며 원활한 업무환경을 유지해온 병원 등 기업에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과중한 업무 부담을 줄이는 것이 태움문화를 없애는 첫 걸음이라는 말도 나온다.
소통경로의 미비도 왜곡된 기강잡기에 따른 문제를 방치하게 된 원인의 하나로 제기됐다.
인력수급이 원활히 이루어지는 병원에서도 태움문화가 나타나는 점을 감안하면 열악한 업무환경과 별개로 ‘그냥 괴롭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 간호사들도 있다. 태움문화를 피해자 개인의 능력문제로 치부해 피해사실을 알리고 처벌을 요청할 곳을 만들지 않은 점이 피해를 키웠다는 말도 나온다.
이런 점을 고려해 피해자 신문고를 만들거나 가해자 처벌을 강화하는 등의 방안과 함께 전반적 소통경로 개선을 병원 및 기업에 제안하기도 한다.
정용철 서강대 교육대학원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처벌을 강화하는 방식으로는 태움문화를 없애는 데 한계가 있고 군기문화를 음지화할 수 있다”며 “상하 평등한 존재로서 존중하고 소통하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임주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