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 3사가 5G 이동통신 속도를 거짓·과장·기만적으로 광고한 게 공정거래위원회 조사에 이어 고등법원 행정소송 결과를 통해서도 드러났지만, 통신 3사 어느 곳도 소비자 '기만 행위'에 대해 가입자들에게 보상은 커녕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어 비판을 사고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20대로 보이는 여성 둘이 탄 2인용 자전거가 갑자기 뒤에서 덮쳤다. 다행히 자전거 속도가 빠르지 않았고, 자전거 앞바퀴가 내 종아리를 스치며 옆으로 넘어져, 크게 다친 사람은 없었다. 나 역시 종아리 부분 피부가 까지고 멍이 들며 약간 부어올랐을 뿐 찢어져 피가 흐르거나 하지는 않았다.
당사자들은 물론이고 다른 남성 일행들도, 서로 손잡아 일으켜 주며 다치지 않았느냐고 물을 뿐, '가장 큰 피해자'인 내 안부를 묻거나 사과하지는 않았다. 까진 종아리 부분을 손으로 매만지며 '뭔 매너가 저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말 그대로 자식을 키운 '부모의 마음'으로 참았다.
자신들의 안부를 확인하며 한참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나를 향해 "많이 다치지 않으셨죠?"라고 물었다. 혹시라도 내가 드러누울까 봐 선을 긋는 모습이 역력했다. "여기는 보행자 전용 길이니, 여기서 자전거를 타면 안 돼요. 자전거 길은 저쪽에 따로 있어요"고 한마디 한 뒤 자리를 벗어났다.
뒤돌아보면, 그들은 보행자 전용 길에서, 앞에 가던 사람을 뒤에서 들이받아 놓고, 받힌 사람에 대한 사과 예의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5천만 명이 넘는 이동통신 가입자들도 이와 같은 일을 당했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KT가 공정거래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과징금 부과와 시정명령 등 취소 소송에 대해 서울고법 행정7부(권순형 부장판사)가 지난 7월16일 원고 패소를 판결했다.
앞서 공정위는 2023년, KT가 2018년 8월부터 2022년 4월까지 5세대(5G) 이동통신 속도를 거짓·과장하고 기만적으로 광고했다며 시정명령과 함께 139억3천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공정위는 5G 이동통신 서비스 속도가 20Gbps(초당 기가비트)로 LTE(4세대 이동통신)보다 20배 빠르다는 내용의 KT 누리집 및 유튜브 광고, 객관적 근거 없이 KT 5G 이동통신 서비스가 경쟁사 서비보다 빠른 것처럼 표시한 포스터 등을 근거로 삼았다.
KT는 공정위 심결 과정에서 "기술이 갖는 특성을 소개한 것일 뿐, 실제 제공하는 서비스 속도를 광고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보통의 주의력을 가진 소비자라면, 기술적 이유로 이러한 속도를 구현하기 어렵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속된 말로, 소비자들도 광고 내용이 '뻥'이라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다.
KT는 공정위 제재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냈다. 하지만 재판부는 광고의 거짓·과장성이나 기만성이 인정된다며 공정위 판단을 인용했다.
재판부는 "20Gbps는 실제 사용 환경에서 구현될 수 없는 속도"라며 "원고가 제공한 5G 이동통신 서비스 속도는 20Gbps의 3%에 불과한 속도로, LTE보다 20배 빠르다고도 할 수 없다"고 짚었다.
소비자들은 제한된 실험 조건에서의 성능이 아닌 실제 사용 환경에서의 성능을 중요하게 고려한다는 점과 광고의 표현 및 맥락 등을 토대로 "일반 소비자들은 '20Gbps', '20배 빠른' 표현을 단순한 기술의 비전·목표가 아닌 실제 속도라고 받아들였을 것으로 보인다"고 재판부는 밝혔다.
재판부는 이동통신 서비스 속도를 정확하게 측정하기 위해서는 전문 지식 및 장비가 필요해 일반 소비자들은 직접 확인하기 어렵고, 당시 5G 이동통신 기술이 새로 도입된 시점이라 그 속도를 경험적으로 알 수 없다는 점도 들었다. 소비자들은 KT의 광고 내용을 실제 속도라고 받아들였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경쟁사 서비스 속도와 자사 서비스 속도를 부당하게 비교한 포스터 광고도 기만적인 광고에 해당해 소비자에 오인을 불러일으킨다고 봤다. 해당 포스터에는 '전국에서 앞서간다'는 표현과 함께 전국 11개 지역에서 제공되는 5G 이동통신 서비스 속도가 구체적으로 제시됐다.
재판부는 "단정적 표현과 확정적 숫자가 제시됐으므로 보통의 주의력을 지닌 소비자는 KT의 5G 서비스 속도가 다른 사업자들의 서비스에 비해 빠르다고 객관적으로 입증된 것으로 오인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했다.
재판부는 이런 판단으로 "위반 기간과 당시 매출액을 기준으로 한 과징금 산정에도 문제가 없다"며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위법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 KT는 박윤영 사장 취임 뒤 '본질경영'과 '사명'을 강조하고 있다. 진심이 담기려면 5G 이동통신 속도 거짓·과장·기만 광고에 대해 소비자에 공식 사과하는 등 후속 조치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합뉴스>
같은 혐의로 이뤄진 공정위 처분에 불복해 함께 행정소송을 제기한 LG유플러스도 패소했고, SK텔레콤은 과징금 산정 일부 오류 판결을 받았다. LG유플러스도 상고했다.
공정위는 5G 이동통신 속도 과장 광고 혐의로 LG유플러스에 28억5천만 원, SK텔레콤에는 168억3천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동통신 3사 가입자 측에서 보면, 5G 이동통신 거짓·과장·기만 광고 마케팅을 당한 셈이다. '사기' 마케팅에 넘어가, 그동안 요금을 월 몇만 원씩 더 물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동통신 3사 모두 공정위 조사 결과 발표 때도, 이번 고법 판결이 나온 뒤에도 가입자들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당연히 거짓·과장·기만 광고 마케팅 피해에 대한 보상도 하지 않았다.
하긴 이동통신 3사의 가입자 대상 '사기 행각'은 이뿐만이 아니다. 이동통신은 장치 산업이라 초기 투자비가 많이 든다며 5G 이동통신 요금을 기존 LTE 대비 2~3배 수준으로 왕창 올려놓고, 5G 이동통신망 투자는 제대로 하지 않았다. 이에 이동통신 가입자들은 비싼 5G 이동통신 요금을 물며 LTE 통신망을 이용하는 '불공정'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한 이동통신사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이동통신사들이 5G 이동통신 서비스 성능을 거짓·과장·기만 광고했다는 게 아직은 공정위 판단일 뿐, 대법원 판결로 확정되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모두 행정소송 결과에 불복해 상고하지 않았냐"고 덧붙였다.
이 주장대로라면, 공정위가 이동통신 3사를 제재하며 근거로 삼은 혐의가 대법원 판결로 확정되면, 5G 이동통신 성능 거짓·과장·기만 광고로 LTE 가입자를 5G 가입자로 전환시켜 더 받아 간 요금을 돌려줘야 한다. '사기'로 뜯어 간 것과 다름없으니까. 5G 이동통신 요금을 비싸게 책정해 받으며, LTE 통신망으로 이동통신 서비스를 제공해 온 부분에 대해서도 보상해야 한다.
무엇보다 가입자들을 기망한 것에 대해 각 이동통신사 최고경영자가 가입자들에게 머리 숙여 사과해야 한다. "잘못했습니다"라고 사과한 뒤에야 비로소 '고객 만족' 내지 '고객 신뢰 회복'을 외칠 자격이 생긴다.
보행자 전용 길에서 자전거를 타다가 산책 중인 사람을 뒤에서 덮쳤으면 이것저것 따지기 전에 일단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하며, "일단 병원으로 모시겠습니다"라고 하는 게 옳은 것처럼 말이다. 김재섭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