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편리함 중독.'

쿠팡 이용자 3370만 명 개인정보 유출 사태와 쿠팡 창업자 겸 실질 최고경영자 김범석 쿠팡 아이엔씨(Inc) 이사회 의장의 한국 사회 우롱 및 한국 소비자 '호갱'(호구 고객) 취급 행태가 만들어낸 말이다. '불팡'(쿠팡 불매)과 '탈팡'(쿠팡 탈퇴)을 해야 마땅하지만 편리함에 중독돼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다는 식으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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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팡 뉴스레터에 따르면, 쿠팡 이용자 편리함 중독은 마케팅 전략이었다. <연합뉴스>


쿠팡에서 과로사로 보이는 노동자 사망이 이어진 데 이어 이용자 개인정보 대량 유출 건이 터졌는데도 김 의장은 미국 시민권 뒤에 숨어 공식 사과는 물론 모습을 드러내지조차 않는 등 노동자와 소비자를 우습게 보는 행태에 울화통이 터지지만, 쿠팡 배달 서비스가 제공하는 편리함에 길들여져 불팡과 탈팡 행렬에 가세하지 못하는 소비자들이 자괴감을 호소하는 말로로 사용된다.

언론 기사나 컬럼 등에서도 자주 인용된다.

"모든 고객들에게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 이 한마디를 듣는 것이 쿠팡의 미션입니다…쿠팡의 고객들은 응답합니다. '내 삶에 쿠팡이 없는 모습을 상상할 수 없다'고. 이런 고객들의 목소리가 쿠팡을 달리게 하는 원동력입니다."(2019년 7월23일 쿠팡 뉴스레터 중)

이용자 편리함 중독은 쿠팡의 마케팅 전략이었다.
 
반면 편리함에 중독된 쿠팡 이용자들은 불편하다. 양육과 돌봄 등으로 여건이 안돼 쿠팡 서비스를 계속 이용하고 있지만, 12.3 내란 사태 때 국회로 달려가 계엄군 진입을 막고, 남태령 고개와 광장의 찬바닥에서 온 몸에 눈이 쌓이는 것까지 감수하는 시민 행렬에 동참하지 못한 사람들이 미안함을 갖고 살아가는 것만큼이나, 호갱 취급을 당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불팡과 탈팡 행렬에 동참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에 자괴감을 호소하기도 한다.

결은 다르지만, 또 다른 사례도 꼽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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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K텔레콤이 '고객 신뢰 회복 프로젝트'에 따라 모든 가입자들에게 다달이 데이터를 50기가씩 추가로 제공하던 게 이번 달(12월)로 끝난다. <연합뉴스>


SK텔레콤은 통신망 해킹 및 개인정보 대량 유출 사태로 피해를 본 가입자들을 위로하는 차원에서 '고객 신뢰 회복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지난 8월부터 2300여만 가입자 모두에게 다달이 50기가바이트(GB) 분량의 데이터를 추가로 제공해왔다.

덕분에 SK텔레콤 가입자들은 지난 5개월 동안 거리와 격오지 등 무선랜(와이파이) 서비스가 안되는 지역에서도 데이터를 이용해 영상과 음악 등 각종 콘텐츠를 스마트폰으로 맘껏 즐길 수 있었다.

그 사이 스마트폰을 통해 밖에서도 드라마와 영화 같은 영상과 음악 등을 즐기는 습관이 들었다. 식당이나 카페를 들르거나 숙소 체크인을 할 때마다 카카오톡으로 받은 영상을 열어보거나 여행지 등서 찍은 사진과 영상 등을 공유하기 위해 무선랜 사용자이름(ID)와 비밀번호를 물어보지 않아도 됐다.

SK텔레콤이 모든 가입자들에게 데이터를 50기가씩 추가로 제공해온 게 이 달(12월)로 끝난다. 새 해(2026년 1월1일)부터는 데이터 추가 제공이 사라진다.

새해부터 SK텔레콤 5G 요금제 가입자들은 월 정액요금으로 기본 제공된 데이터가 소진되면 데이터통신 속도가 뚝 떨어진다. 고가 요금제 가입자는 1Mbps, 저가 요금제는 400Kbps로 떨어진다. 저가 요금제 가입자의 경우, 소량의 데이터를 주고받는 데는 문제가 없지만, 대용량 콘텐츠는 주고받는 게 불편할 수도 있다. 콘텐츠에 따라서는 실시간 재생이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데이터 종량제가 적용되는 LTE 표준 요금제 가입자는, 예전처럼 무선랜 서비스가 제공되는 곳을 찾아 이용하는 습관을 되찾지 못하면 요금 폭탄을 맞을 수도 있다.

SK텔레콤이 해킹 및 개인정보 유출 피해 가입자를 대상으로 한 '고객 신뢰 회복 프로젝트'로 다달이 데이터 50기가씩 추가로 제공하겠다고 했을 때, 보상이라기보다 가입자를 편리함에 길들여 가입자당매출을 늘리는 마케팅 행위에 가깝다는 지적이 제기됐던 배경이다. SK텔레콤은 이를 피해자 보상으로 잘 포장해, 개인정보보호위원회 과징금을 감면받는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물론 월 5만원 대 이상 요금제에 가입해 이미 데이터를 사실상 무제한 이용해온 가입자들에게는 데이터 50기가 추가 제공이 아무런 의미가 없었고, 새 해에도 습관대로 그냥 이용하면 된다. 휴대전화를 음성통화와 문자메시지 송수신 용도로만 쓰는 가입자들도 마찬가지다.

가능한 무선랜 서비스 지역을 찾아 콘텐츠를 주고받으며 요금을 아끼는 '알뜰 이용자'였다가 데이터를 맘껏 쓰며 편리함 중독에 빠진 가입자들은 조심해야 한다.

예상해보건대, 새해 1월에는 SK텔레콤 가입자들이 고객센터(114)로 전화를 걸어 갑자기 데이터 속도가 떨어져 콘텐츠 이용이 불편하다고 호소하고, 상담원이 가입자에게 요금제 상향 조정을 권하는 사례가 빈발할 수도 있다. 이를 포인트로 삼은 텔레마케팅이 성행하는 상황도 예상해볼 수 있다. 

SK텔레콤은 이를 짚는 비즈니스포스트 질문에 "올해가 끝나기 전 고객 신뢰 회복 프로젝트 종료 사실을 T월드를 통해 공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편리함을 쫓다 더 큰 두통꺼리를 만날 수도 있는, 또다른 사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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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G유플러스 AI 통화비서 '익시오'. 통화내용을 회사 서버에 6개월 보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새해에는 이동통신사들이 실시간 보이스피싱 감지와 전화 대신 받아주기 등의 편리함을 앞세워 'AI 통화 서비스' 가입 유도 마케팅을 본격화할 가능성이 크다.

SK텔레콤은 '에이닷', LG유플러스는 '익시오'란 이름으로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카카오톡 통화에도 붙어있다.

하지만 통신비밀과 사생활 보호에 민감한 이용자들은 이런 편리함에 혹했다가 통화내용 노출·유출 걱정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이동통신사들은 그동안 AI 서비스를 내놓으며 '온디바이스(On-device) 환경'을 강조했다. 통화내용 처리와 보관 모두 단말기에서 이뤄진다는 뜻이다. 가입자들이 통화내용의 서버(컴퓨터) 처리와 보관에 민감해할 것을 알고 있어서다.

하지만 익시오를 이용하는 LG유플러스 가입자 통화내용 노출로, 통화내용이 이동통신사 서버에서 처리되고 6개월 자동 보관되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게 다른 가입자들에게 노출된 사실로 보아 암호화 상태도 부실했다고 볼 수 있다.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소지가 다분하다. 실제로 SK텔레콤의 에이닷 출시 때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논란이 일었고, 이는 지금까지도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이동통신사들이 가입자들의 통화내용을 서버에 6개월 보관한다는 사실이 알려진만큼, 국가정보원이 국가안보를 위한 정보 수집, 검찰·경찰은 수사 목적으로 열람하려고 할 수도 있다. 

SK텔레콤 역시 에이닷 이용 가입자들의 통화내용을 보관하고 있다고 추정해볼 수 있다. 한 통신사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에 "에이닷과 익스오 모두 비슷한 모델 서비스"라고 설명했다.

쿠팡 사례는, 이용자가 편리함 중독에 빠지는 순간 '눈 뜬 상태에서도 코 베어가는' 상태로 몰릴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새해 비즈니스포스트 독자 여러분 모두 기업의 편리함 마케팅에 빠져 주머니를 털리면서도 소비자 대접은 받지 못하는 호갱 처지로 몰리지 않도록 조심하시길. 김재섭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