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부정청탁금지법(김영란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청탁금지법이 우리경제에 미치는 타격이 적지 않다는 지적에 따른 것인데 그동안 개정에 반대하던 국가권익위원회도 의견수렴에 나서겠다는 뜻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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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
9일 정치권에 따르면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5일 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부처 업무보고에서 “청탁금지법이 경제에 미치는 타격이 너무 크다”며 “시행령을 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황 권한대행은 “법의 취지가 훼손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경제부처와 국가권익위원회에 합리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안을 검토해 달라고 지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주훈 한국개발연구원(KDI)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서민경제 활성화를 위해 청탁금지법 완화를 건의하며 “설·추석 선물의 상한을 올려달라”고 요청했다.
청탁금지법은 2016년 9월28일 시행돼 이제 100일을 막 넘겼는데 개정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부정부패 근절과 접대문화 개선에 일조하는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소비를 위축시켜 경제에 악영향을 끼지고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특히 설을 20여 일 앞두고 수입품이 설날 선물세트 구성품으로 유통매장의 가판대를 가득 메우고 있어 농축어민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마트는 같은 가격이면 국산과 비슷한 질에 양이 많은 수입산으로 설 대목을 잡겠다고 나섰다.
수원축협 관계자는 “한우 선물세트는 가격이 대개 20만 원대를 상회하는데 선물 상한액을 5만 원으로 규정하면 수입고기를 선물하라는 말 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신세계백화점은 아예 수입산 위주로 설 선물세트를 꾸렸다. 굴비를 기니산 침조기·러시아산 명란·뉴질랜드산 갈치·인도산 새우로 대신하고 한우는 호주산 소고기로 대체하는 등 수입산 품목을 지난해 설보다 57.1%나 늘렸다. 롯데백화점도 호주산 소고기 선물세트를 4만8천 원으로 구성해 내놨다.
정치권도 청탁금지법의 부작용을 걱정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학용 바른정당 의원은 6일 창당준비회의에서 “청탁금지법이 수입촉진법이 됐다”며 “국산 농수산물은 설 선물시장에서 퇴출되고 청탁금지법으로 인해 서민들이 골탕을 먹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황 권한대행이가 청탁금지법 100일을 맞아 시행령의 합리적인 조정방안 검토를 지시한 만큼 현실과 동떨어진 조항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정치권의 청탁금지법 개정논의를 두고 “청탁금지법이 전반적인 소비위축 사태를 불러와 내수 경제를 떠받치는 소상공인들이 가장 직접적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며 “이제라도 소상공인들의 어려움에 눈을 돌려 개정논의에 나서는 게 만시지탄이지만 분명히 나아가야할 길”이라고 주장했다.
연합회에 따르면 전국 3천 개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한 ‘2016년 소상공인 비즈니스 실태 조사’에서 2015년 대비 2016년 매출액이 감소한 소상공인이 절반이 넘는 55.2%를 차지했다.
연합회는 “매출이 감소한 응답자의 절대 다수가 매출감소의 주요 원인이 ‘청탁금지법 시행 때문’이라고 지적했다”고 말했다.
청탁금지법의 주무기관인 권익위의 기조도 달라지고 있다.
권익위 관계자는 이날 “제도를 조정하려면 검토 과정에서 각계로부터 의견을 들어야 한다”며 “부정적 업계의견과 긍정적 국민여론 등을 다각도로 살펴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권익위는 그동안 청탁금지법이 안정되게 자리매김하고 있다며 법과 시행령 개정을 검토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하지만 황 권한대행의 지시사항이 전달된 데다 농축산업계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는 만큼 청탁금지법 완화의 가능성을 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청탁금지법 완화 개정과 관련해 “화훼업계 타격이 크고 요식업 매출 감소가 있다”고 말했다.
유 부총리는 “시행령 자체를 고치는 건 권익위원회가 판단을 내려야 할 문제”라며 “현재 진행하고 있는 실태조사가 끝나면 권익위 등 관계부처와 협력해서 보완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덧붙였다. [비즈니스포스트 김현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