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4·10 총선에서 과반 이상의 의석을 확보하면서 `여소야대 2막`이 펼쳐지게 됐다. ‘규제완화’와 ‘세금감면’을 앞세워 경제활성화를 도모하려는 윤석열 정부의 입법과정이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경기침체 장기화 우려 속에 소비와 기업투자 촉진을 유도할 수 있는 장치들이 거대 야당의 반대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아서다. 21대 국회에서 계류되고 있는 민생법안들도 사실상 폐기 수순에 접어들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비즈니스포스트가 22대 국회 출범에 즈음해 경제 이슈를 중심으로 주요 쟁점들을 살펴봤다. <편집자 주>
[비즈니스포스트] 여당과 야당 모두 지난 22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반도체 산업을 국가 핵심산업으로 육성하고, 경기남부 반도체 클러스터 건설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반도체 클러스터에 필요한 대규모 전력시설 공급 방식을 두고 여야 입장이 엇갈리고 있는데, 앞으로 여야 정치권의 소모적 논쟁이 지속될 경우 반도체 산업 지원의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반도체 클러스터에 필요한 대규모 전력을 공급하려며 원자력발전소를 추가로 건설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비해 야당은 원전 대신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로 대부분의 전력을 충당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맞서고 있다.
▲ 경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세울 전력 인프라를 두고 여야가 대립하고 있다. 사진은 용인 클러스터 조감도. <경기도>
15일 반도체 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반도체 벨트로 꼽히는 수원, 용인, 화성 지역에서 민주당이 13개 지역구 가운데 12곳을 차지하면서 정부와 여당의 반도체 클러스터 전력 공급 계획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반도체 클러스터 가운데 가장 큰 용인은 10기가와트(GW) 이상의 전력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현재 수도권 전체 전력 사용량의 4분의1에 해당하는 규모다. 현재 1.4GW 규모의 원전으로 계산하면 7개의 추가 원전이 건설돼야 공급할 수 있는 전력량이다.
정부는 용인 반도체 산업단지에 3GW급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를 건설하고, 나머지 7GW의 전력은 송전망 확충을 통해 호남권의 태양광발전소와 동해안 원전에서 전기를 끌어온다는 계획이다.
이 방식을 채택하면 기업이 제품 생산에 필요한 전기 에너지 100%를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대체하자는 세계 캠페인인 'RE100'(재생에너지 100%)에서 멀어지게 된다. RE100에서 말하는 재생에너지에는 원전이 포함되지 않는다.
다만 현실적으로 정부는 단기간 내 'RE100' 달성이 어렵고, 재생에너지만으론 전력 공급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들어 원전 추가 건설에 무게를 두고 있다.
정부 측은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은 날씨 영향을 많이 받는 데다, 전력 흐름이 불규칙적이어서 안정적 전력공급이 필요한 반도체 산업용으론 적절치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반해 더불어민주당은 'RE100'을 염두에 두지 않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전력공급 계획은 재검토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앞서 양이원영 의원 등 민주당 탄소중립위원회는 지난해 9월 반도체 클러스터 LNG 발전소 신설 계획을 취소하고, 'RE100'을 고려해 재생에너지 공급 계획을 재수립하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탄소중립위 측은 당시 “재생에너지 사용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한국의 반도체 기업들은 가격경쟁력을 잃고 거래처를 잃거나 생산기지를 해외로 이전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한국 반도체 기업이 RE100에 참여하지 않으면 반도체 제품의 수출액이 31% 감소할 것이라는 분석도 보고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 SK하이닉스 건물. < SK하이닉스 >
현재 세계적으로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380여 개 주요 기업이 RE100에 참여하고 있다. 이 기업들은 부품을 납품하는 공급망 업체에게도 RE100 달성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유럽 완성차업체인 BMW, 볼보 등이 RE100 달성이 미흡하다는 이유로 국내 부품업체와 계약을 취소하는 경우도 있었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전략공급 방안을 둘러싸고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 적기에 공급 방식을 확정하지 못하면 클러스터 조성 사업 자체가 난항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SK하이닉스는 내년 3월부터 경기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서 생산공장 건설에 들어갈 예정이다.
당초 반도체 클러스터는 내년까지 완공하기로 했지만, 그동안 전력과 공업용수 등 각종 인허가 절차 논의에 시간이 걸리면서 안그래도 완공 시일이 지연되고 있는 상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반도체 클러스터에 필요한 전력·용수 등 기반시설 설치에 속도를 높이기 위해 '첨단산업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전력 공급 방식을 놓고 여야가 국회에서 팽팽하게 대립할 것으로 보여 클러스터 조성이 더욱 늦어질 수 있을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에 대해 반도체 업계 전문가는 "일본, 미국 등 주요국은 자국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단지 조성과 공장 착공부터 완공까지 행정적 지원을 일사천리로 하고 있고, 막대한 보조금까지 지급하고 있다"며 "촌각을 다투는 세계 반도체 시장 주도권 경쟁에서 여야 정치적 논쟁 때문에 뒤로 밀리는 상황이 벌어져선 안된다"고 말했다.
앞서 TSMC의 일본 구마모토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은 2021년 10월 건설 계획이 발표된 후, 2년 4개월인 2024년 2월에 완공됐다. 반면 SK하이닉스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2019년 용지 선정을 마친 지 5년째인 지금도 착공하지 못하고 있다. 김바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