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에코프로 주식에 대한 매도의견 때문에 증권사 애널리스트(연구원) 신변이 위협받는 일이 벌어지면서 금융당국 차원의 대응책 마련이 요구되고 있다.

증권사 매도의견 보고서 비중을 높이라는 일방적인 주문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소신있는 분석'이 위축되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실효성 있는 대책을 조속히 마련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에코프로 매도의견' 봉변에 증권가 뒤숭숭, 금감원 애널리스트 보호장치 시급

▲ 에코프로에 대해 소신발언을 이어오던 애널리스트가 물리적 위협까지 받으면서 애널리스트들이 더더욱 매도의견을 내기 힘든 환경이 조성될 것으로 보인다.


13일 금융투자업계의 말을 종합하면 하나증권의 A 애널리스트가 9일 출근길에 일부 개인투자자들의 항의에 봉변을 당한 것을 놓고 증권가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A 애널리스트는 올해 기록적인 상승세를 보였던 코스닥 종목 ‘에코프로’에 대해 지속해서 '과열'을 지적해왔다. 지난 4월11일 증권업계 최초로 에코프로에 대해 매도의견을 낸 뒤 같은 의견을 유지해오고 있다.

A 애널리스트는 7일 에코프로 리포트를 갱신하면서 목표주가를 하향했으며 주가 과열이 여전하며 매도의견을 유지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주가 하락을 우려한 일부 개인투자자들이 이틀 뒤 항의에 나선 것이다. 다만 이전에는 온라인 항의가 주를 이뤘던 반면 이번에는 최초로 물리적 위협이 가해졌다는 점에서 우려를 자아낸다.

이들 투자자들은 A 애널리스트의 가방을 붙잡고 출근을 저지했으며 ‘길 막아라’, ‘얼마 받았냐’, ‘매국노다’ 등 발언을 했다.

당분간 애널리스트들의 두려움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꿋꿋이 소신발언을 이어오던 애널리스트에 개인투자자들이 본격적인 실력 행사에 나선 만큼 애널리스트 사이에선 공포심이 확산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한 애널리스트는 “투자자들의 행동이 지나쳤다고 생각되며 애널리스트들의 신변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애널리스트들의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면서 매도의견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금융투자업계에서 매도의견의 중요성은 부정할 수 없다.

1929년 10월 미국 주식시장이 폭락하면서 대공황이 시작됐다. 이에 앞서 미국증시는 과열상태에서 고공행진했는데 로저 밥슨(Roger Babson) 등이 “조만간 대폭락이 올 것이다”고 경고했으나 어빙 피셔(Irving Fisher) 등의 낙관론이 우세하면서 버블이 꺼지지 않았다.

2007년 시작된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에서도 이에 앞서 마이클 버리(Michael Burry) 등이 부동산 거품에 대해 소신발언을 낸 바 있다. 그러나 그가 이끌던 사이언 캐피탈(Scion Capital)의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항의가 빗발쳤다.

금융감독원의 이중적 행태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금감원은 올해 들어 금융투자회사의 ‘매수의견 일변도’ 현상을 지적하며 매도의견의 비중을 늘리라고 주문한 바 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3월 증권사 대표와 간담회에서 “국내 증권사 리포트의 객관성 및 신뢰도 제고 문제가 그간 오랜 과제였던 만큼 이번에는 제대로 개선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주시길 당부 드린다”고 발언했다. 이 자리에서 ‘매도 리포트 증가’ 등의 해결방안이 제시됐다.

7월 간담회에서도 함용일 금감원 부원장이 매수의견 일변도 관행 개선을 요구했다. 

그런데 이달 6일 금감원은 공매도를 전면 금지했다. 공매도와 매도의견은 밀접한 상관관계란 점에서 지금까지 발언과는 상반되는 행보다.

이미 애널리스트들이 매도의견을 내기 어려운 환경에서 공매도가 사라져 버리면 매도의견의 비중은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다. 금감원이 요청한 ‘매도 비중 증가’가 공염불에 그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이사 사장도 7월 간담회 이후 "공매도 없는 환경에서 매도 리포트를 내기 어렵다"고 발언했다.

결론적으로 일부 개인투자자들의 극단적인 매도 반발 심리에 금감원이 기름을 부은 격이란 평가가 나온다. 공매도 금지 조치로 이들 사이에서 ‘승리감’이 강해졌는데 7일 A 애널리스트가 다시 한 번 매도의견을 내자 항의 시위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에코프로 매도의견' 봉변에 증권가 뒤숭숭, 금감원 애널리스트 보호장치 시급

▲ 금융감독원은 올해 들어 증권업계에 매도의견의 비중을 늘리라고 주문했으나 정작 공매도를 금지시킴으로써 매도의견이 더더욱 나오기 힘든 환경을 만들었다.


따라서 금감원이 애널리스트들에게 기계적으로 매도의견 확대를 주문할 게 아니라 애널리스트들이 소신껏 매도의견을 낼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장치를 마련해줘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우선 애널리스트들에 물리적 위해를 가하는 등 소위 '선 넘는' 행동을 하는 개인에 대해선 민형사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도가 지나친 일부 개인투자자들에 대해선 금융당국이 수사당국과 협력해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양한 매도의견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줘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위 관계자는 이어서 "매도의견이 자연스레 나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며 "매도의견이 한 곳에서가 아니라 여러 곳에서 나온다면 소신 애널리스트 한 명에게 집단 린치가 가해지는 일이 줄어들 것"이라 말했다.

앞으로도 애널리스트들을 향한 물리적 항의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A 애널리스트를 위협했던 위 항의자들은 올해 6월 또 다른 애널리스트를 찾아가 항의를 시도한 적이 있다.

하나증권을 제외하면 에코프로에 대한 리포트는 거의 전무한 수준이다. 에코프로의 코스닥 시가총액 비중과 국내증시에서의 위상을 생각하면 기형적인 모습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또 다른 애널리스트는 “두려움에 빠진 애널리스트들이 에코프로에 대한 리포트 자체를 못 내고 있다”고 말했다. 김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