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주요 반도체소재 기업들이 일제히 제품 가격 인상에 나서면서 삼성전자 등 국내 반도체기업의 비용부담이 하반기에는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글로벌 웨이퍼업계 2위인 일본 섬코는 올해 2024년까지 3년 장기 계약 조건으로 웨이퍼 가격을 약 30% 인상하기로 했다.
웨이퍼는 반도체를 만드는 토대가 되는 얇은 판으로 삼성전자는 섬코와 SK실트론으로부터 웨이퍼를 매입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2022년 1분기 웨이퍼 구입에만 7123억 원을 사용했는데 이는 DS부문의 전체 원재료 매입액 가운데 16% 수준이다.
웨이퍼 가격은 주요 원료인 폴리실리콘 값이 오르고 있고 2026년까지는 공급보다 수요가 많아 당분간 상승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 생산용 가스도 가격이 오르고 있다. 일본 쇼와덴코는 최근 반도체 회로 제작과 청소에 필요한 고순도 가스 가격을 20% 이상 올렸다.
이처럼 원재료 가격이 오르자 대만 TSMC는 공격적으로 파운드리 가격을 인상하고 있다.
메모리반도체 가격은 소품종 대량생산이어서 원가보다 시장 수요에 더 큰 영향을 받지만 파운드리는 개별 계약인데다 생산시설이 수요에 비해 부족해 원가 부담을 고객사에 전가하는 일이 상대적으로 수월할 수 있다.
TSMC는 2021년 첨단공정의 파운드리 가격을 7~9% 인상한 데 이어 2023년 1월부터 최소 6% 이상 추가로 올리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올해 3분기에는 구형 반도체 파운드리 가격을 10~20% 인상한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도 지난해 15% 가격을 인상한 데 이어 추가 인상을 단행할 공산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블룸버그는 삼성전자가 최대 20%까지 파운드리 가격을 올릴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기도 했다.
컨설팅기업 베인세미컨덕터의 피터 핸버리 연구원은 5월 CNBC와 인터뷰에서 “반도체 제조에 사용되는 화학 물질의 가격이 10~20% 높아졌으며 기업들이 새로운 반도체 시설을 건설하는 데 필요한 노동력이 부족해 임금도 인상됐다”며 “파운드리 기업은 이미 지난 2년 동안 제조 가격을 10~20% 올렸지만 추가 인상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 삼성전자의 텍사스주 오스틴 반도체 파운드리공장.
하지만 일각에서는 삼성전자의 사업구조상 최 사장이 파운드리 가격을 큰 폭으로 올리기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TSMC의 최대 고객이 애플인 것과 달리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의 가장 큰 고객은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다.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의 내부 고객사 매출 기여도는 약 50%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스마트폰을 담당하는 삼성전자 MX사업부가 시스템LSI사업부에 모바일프로세서(AP) 개발을 맡기고 시스템LSI사업부가 파운드리사업부에 AP 생산을 맡기는 구조인 셈이다.
따라서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가 반도체 제조 가격을 인상하면 결과적으로 MX사업부는 스마트폰 원가부담이 커지게 된다. AP는 스마트폰의 두뇌 역할을 담당하는 부품으로 디스플레이 다음으로 스마트폰 가격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파운드리 가격 인상은 원가절감 등을 통해 인도 등 신흥국 시장에서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는 삼성전자 MX사업부와 엑시노스 등 자체 AP 확대를 통해 시스템반도체를 키우려는 삼성전자의 미래 전략에도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이미 삼성전자 MX사업부가 2022년 1분기에 구입한 AP 가격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41%나 상승하는 등 원가부담이 급격하게 커지고 있다.
게다가 삼성전자는 TSMC와 파운드리 시장을 두고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가격 측면에서도 우위를 유지해야 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TSMC보다는 가격 인상 폭을 제한해 고객을 더 확보하는 전략을 세울 가능성도 있다.
최 사장도 고객사 중심의 사업전략을 강조하고 있다.
최 사장은 올해 3월 임직원들과 소통 채널인 위톡을 진행해 “사업부 내부적으로 변화가 필요한 시기”라며 “ 회사 중심이 아니라 고객 중심 사고와 조직문화로 성장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가격 인상 여부와 관련해 공식적 언급을 자제하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파운드리는 메모리반도체와 달리 고객사마다 장기 계약을 체결하는 구조여서 일률적으로 향후 가격 인상률을 밝히기 어렵다”며 “반도체 원재료 가격이 오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원가 인상분을 모두 고객에게 전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