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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1987년 12월1일 취임했다. 당시 나이 46세였다.
이 회장은 국내 일류기업에 머물던 삼성그룹을 글로벌기업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마차를 잘 만드는 인재도 중요하지만 마차를 보며 자동차를 만들 생각을 실현해 줄 수 있는 인재를 등용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그룹 경영의 전면에 등장한지 2년 차를 맞아 사장단 인사에 이어 부사장급 이하 임원인사를 실시했다. 이 부회장은 올해 48세다.
삼성그룹 올해 임원인사에 지난해보다 찬바람이 더욱 매섭게 불었다. 임원 승진자가 대폭 줄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수준까지 떨어졌다.
이재용시대에 접어들면서 삼성그룹 인력운용에서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는 긴축경영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잔치는 열렸지만 초대받은 손님은 많지 않았다.
◆ 주력 계열사 실적부진에 보상도 '미미‘
삼성그룹이 4일 발표한 임원 승진자는 모두 294명이다. 부사장 29명, 전무 68명, 상무 197명이다.
승진자 가운데 44명은 승진연한을 깨고 발탁됐다. 발탁인사 가운데 부사장은 5명, 전무 15명, 상무 24명이다. 김학래 심상필 상무, 배광진 김강태 김후성 정연재 김정욱 부장 등 모두 7명이 연차를 2년 이상 앞당겨 승진했다.
삼성그룹은 “모두 294명이 승진해 전년보다 승진자는 줄었으나 44명의 발탁인사로 조직 내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노력을 지속했다”고 밝혔다.
임원 승진규모 자체만 보면 지난해 승진자 353명에서 17%에 해당하는 59명이 줄었다. 발탁 승진자 44명도 지난해 56명과 비교하면 12명이 감소한 것이다.
삼성그룹은 인사에서 ‘성과 있는 곳에 보상이 있다’는 원칙을 지켜왔는데 올해 임원 승진자 규모만 놓고 보면 보상은 후하지 않다. 주력 계열사들이 올해 실적부진에 시달렸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규모 자체가 줄면서 발탁승진뿐 아니라 부문별 승진자도 대폭 줄었다.
여성임원의 경우 개발분야에서 처음으로 삼성SDI의 김유미 전무가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그러나 전체 여성 승진자는 9명으로 재작년 15명, 지난해 14명에서 갈수록 줄고 있다.
외국인 임원 승진자 역시 지난해 9명에서 절반 수준에 못 미치는 4명에 불과했다.
◆ 이재용, 기술 전문인력 우대 재확인
삼성그룹 사장단 인사에 이어 임원인사에서도 이재용 부회장의 기술과 전문성을 갖춘 인재 중용의 기조가 확인됐다. 특히 갤럭시S6과 반도체 전문가들이 후한 보상을 받았다.
모바일분야에서 휴대폰 메탈 케이스 공정개선을 이끈 김학래 상무와 세계 최초 14나노 핀펫 공정개발에 나선 심상필 삼성전자 상무가 2년 만에 각각 전무로 발탁승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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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
이밖에 갤럭시S6엣지 개발을 주도한 배광진 부장, 타이젠 플랫폼 구축에 기여한 김강태 부장, 낸드 플래시 제품 전문가인 김후성 부장 등도 2년 만에 상무로 승진했다.
김유미 삼성SDI 부사장도 전지개발 전문가이며 해외법인 외국인 승진자 4명 가운데 3명도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 전문가들이다.
전체 승진자 가운데 절반 가까운 135명이 삼성전자에서 배출됐다. 특히 삼성전자가 3분기 거둔 영업이익 7조4천억 원에서 약 4조6500억 원을 책임진 반도체사업부에서 임원 승진자가 다수 나왔다.
부사장으로 승진한 14명 가운데 DS부문 임원이 최철 삼성전자 DS부문 중국총괄 전무를 포함해 강호규, 경계현, 소병세, 정재헌 등 5명이나 됐다.
반면 실적이 부진했던 삼성전자 스마트폰, TV사업 등에서 임원 승진자가 많지 않았다.
올해 임원급 인사에서 삼성SDS가 부사장 1명, 전무 2명, 상무 8명 등 승진자를 다수 배출한 점도 주목된다.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SDS를 성장동력의 근거지로 키우려는 의지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금융계열사에서 임원 승진자는 부사장 3명, 전무 8명, 상무 24명이다.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삼성증권에서 각각 1명씩 부사장 승진자가 배출됐다. 금융계열사의 경우 ‘영업맨’들이 승진자의 다수를 차지했다. 매각설에 휘말린 삼성카드는 전무 1명, 상무 1명 승진에 그쳤다.
◆ 삼성 임원 갈수록 '하늘의 별따기', 수시 물갈이 인사 전망
올해 삼성그룹 임원 승진자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2008년 223명, 이듬해인 2009년 247명을 기록한 이후 가장 적은 수준이다.
삼성그룹은 2012년 501명의 임원 승진자를 낸 뒤 2013년 485명, 2014년 476명, 2015년 353명으로 임원 승진자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2013년과 비교하면 올해 임원 승진자는 40% 가까이 줄어든 것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올해 신임 임원은 91명이지만 전체의 20%에 이르는 250명이 옷을 벗을 것으로 알려졌다.이렇게 되면 삼성전자 전체 임원은 현재 1187명에서 내년에 많게 15% 가까이 줄어들 것으로 관측된다.
삼성그룹이 임원규모를 크게 줄일 것이라는 예상은 벌써부터 예견됐던 일이다.
삼성전자 등 계열사들이 몰려있는 서초사옥 일대 부동산업계에 하반기 들어 사무실 임대료가 오르고 있다는 말까지 나돌았다.
삼성그룹은 임원 퇴직자들에게 상당기간 사무실을 제공하는데 올해 퇴직자가 워낙 많아 사무실을 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삼성그룹은 이재용 부회장체제가 본격화하면서 실용주의에 기반한 '선택과 집중‘을 강화하고 있다. 불필요한 조직과 인력을 최소화해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이 부회장은 올해 임원인사에서도 이런 경영방침을 재확인했다.
재계 관계자는 "이재용 부회장시대에 삼성그룹에서 임원 달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며 "사업부문 재편에 따라 정기인사가 아니더라도 수시인사가 잇따를 가능성도 높다"고 내다봤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