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정부에서 추진하는 대미 투자가 가시화되는 가운데 두산에너빌리티의 미국 원전시장 진출 가능성도 한층 커지고 있다.

박지원 두산에너빌리티 대표이사 회장은 미국형·한국형 원전 노형을 둘러싼 두 나라 사이에 추가 협상이라는 불확실성에도 원전 주기기 제작 역량을 바탕으로 핵심 공급사 입지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박지원 두산에너빌리티 대표이사 회장이 미국 원전시장 진출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


22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총회에 참석한 이재명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나 전략 투자 사업과 관련해 논의했다.

대미투자 협상에도 어느 정도 진전이 이뤄지는 모양새다. 전날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대미투자 진행 상황을 보고했다.

정부는 대미투자 1호 프로젝트로 텍사스 엔시날 지역에 가스복합화력발전소를 짓는 사업을 확정했다. 미국 내 대형 원전 8기를 건설하는 2호와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를 개발하는 3호 프로젝트를 놓고도 추가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특히 원전은 웨스팅하우스 지분 5~10% 확보 문제로 협상이 길어지는 것으로 전해진다. 전체 8기 가운데 6기를 미국 웨스팅하우스 모델인 AP1000으로, 2기를 한국이 개발한 APR1400으로 구성하는 방안도 논의의 핵심 쟁점으로 꼽힌다.

다만 두산에너빌리티는 AP1000과 APR1400 모두에 핵심 기자재를 공급한 경험을 갖추고 있어 어느 노형이 채택되더라도 수혜를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AP1000 사업에서는 원자로 압력용기와 증기발생기 등 주요 기기를 공급할 수 있으며, APR1400이 적용될 경우 원전 주기기에 더해 터빈과 발전기 등으로 공급 범위를 넓힐 수 있다.

미국에서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를 중심으로 전력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는 점도 두산에너빌리티의 미국 원전시장 진출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꼽힌다.

블룸버그뉴에너지파이낸스에 따르면 미국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량은 지난해 180테라와트시(TWh)에서 2030년 391TWh로 2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형 원전 1기의 연간 발전량이 약 7~8TWh 수준인 점을 고려하면 늘어나는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를 충당하는 데만 원전 25기 이상의 추가 발전량이 필요한 셈이다.

전력 수요 증가에 대응해 트럼프 대통령도 2025년 5월 미국의 원자력 발전 설비용량을 2050년까지 현재의 4배 이상인 400GW로 확대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현재 미국에서는 원전 94기가 총 97GW 규모로 가동되고 있다.

▲ 미국에서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를 중심으로 전력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는 점은 두산에너빌리티의 미국 원전시장 진출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사진은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지난 22일 국회 산업통상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대한민국과 미합중국 간 전략적투자의 운영 및 관리를 위한 특별법'에 따른 대미투자 사전보고를 하기 위해 회의장에 입장하는 모습. <연합뉴스>


문제는 공격적 확대 목표와 달리 실제 건설 역량이 이를 뒷받침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미국은 1979년 스리마일섬 원전에서 원자로 일부가 녹아내리는 사고를 겪은 뒤 새로운 원전 착공에 소극적 태도를 보여 왔다.

이상헌 iM증권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미국은 지난 30년간 신규 원전 건설이 전무해 기자재 제조, 원전 시공 역량을 상실한 상태”라고 짚었다.

이에 미국과 한국 정부도 대미투자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두산에너빌리티의 주기기 공급 역량을 충분히 살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미국이 에너지부(DOE)와 상무부(DOC)를 중심으로 원전 산업을 지원하는 구조를 구축하면서 그동안 미국시장 진출의 걸림돌로 작용하던 위험 분산과 자금 조달 문제도 점차 해소돼 사업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시각도 나온다.

정혜정 KB증권 연구원 “이전까지 대미투자에 원전 포함 여부가 불분명했지만 지금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질지가 관건인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박지원 회장도 꾸준히 원전과 관련해 미국시장 진출 노력을 이어왔다.

박 회장은 2023년 미국에서 열린 한미 첨단산업·청정에너지 파트너십 행사에서 한국 에너지 기업으로는 유일하게 대표 발언을 맡았다. 2025년 8월 이재명 대통령의 첫 미국 순방 때도 동행해 미국 에너지 개발사업자인 페르미 아메리카와 원전·소형모듈원자로(SMR)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지난해 말에는 페르미 아메리카와 대형 원전 4기의 주요 기자재에 필요한 주단품 준비 계약을 맺어 원전 건설이 본격화되면 핵심 기자재를 공급하게 됐다.

다만 두산에너빌리티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대미투자가 아직 논의 과정에 있는 만큼 원전 주기기 공급 참여 여부는 결과가 나와봐야 알 수 있다”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조경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