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우리만 구석기 시대로" vs "경 단위 적자 공포마케팅", 뜨거운 연금개혁 논의
김홍준 기자 hjkim@businesspost.co.kr2024-05-23 16: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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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동철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이 23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바람직한 국민연금 개혁방향’ 정책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지금 다른 나라는 전부 다 다른 쪽으로 이미 가고 있는데 우리만 구석기 시대로 돌아가려고 하고 있다.”
“국민연금의 누적적자가 몇 경 규모에 이를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거는 정말 공포마케팅이라는 말씀드린다.”
국민연금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중시하는 의견과 제도의 근본 목표인 노후 보장을 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이 치열하게 대립했다.
공적연금에 국고를 투입하는 문제를 놓고는 양측의 의견이 일치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만 국고를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투입해야 하는지를 놓고는 시각 차이가 커 이른 시일 안으로 연금개혁 합의안을 찾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점을 다시금 엿볼 수 있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와 한국경제학회는 23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바람직한 국민연금 개혁방향’ 정책토론회를 진행했다.
▲ 신승룡 한국개발연구원(KDI) 재정·사회정책연구부 부연구위원이 23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바람직한 국민연금 개혁방향’ 정책토론회에서 발제를 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발제를 맡은 신승룡 KDI 재정·사회정책연구부 부연구위원은 국민연금 계정을 이원화해 완전 적립식의 새로운 연금제도를 도입해야한다고 주장했다. 현재의 부과방식 국민연금을 벗어나지 않으면 ‘폰지 사기’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폰지 사기는 별다른 이윤 창출이 없어 먼저 가입한 사람만 이익을 보고 나중에 가입한 사람이 그만큼 손해를 보는 다단계 사기 수법을 뜻한다.
그는 “국민연금 계정을 이원화하고 완전 적립식 신 연금을 도입하는 것이야말로 미래세대의 권익을 지켜줄 수 있는 결정적 수단”이라며 “신 연금 계정에 완전 적립 변수를 설정하는 순간 신 연금의 자산이 구 연금 자산으로 전달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완전 적립식에서는 자신이 내는 보험료가 그대로 자신의 연금 수급액이 된다. 부과방식은 현재 노동인구가 지출하는 보험료로 기성세대가 받아야 하는 연금액을 대신 내주는 것이다.
신 부연구위원은 저성장과 저출산을 피할 수 없는 우리나라의 상황을 고려하면 결국 장기적으로는 기대수익비 1을 추구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강조했다.
기대수익비 1은 가입자가 받는 연금 급여의 전체규모와 가입자가 납부한 보험료와 이를 적립한 기금 운용수익의 합이 같다는 뜻이다. 기대수익비 1은 국민연금 방식을 완전 적립식으로 전환하면 달성할 수 있다.
신 부연구위원은 완전 적립식 전환이 필요한 이유로 1966년에 발표된 아론(Aaron)의 조건을 들었다.
아론(Aaron)의 조건에 따르면 기금 운용수익률이 경상성장률(임금 상승률+인구증가율)보다 높으면 기대수익비의 최대치는 1이 될 수밖에 없다.
기대수익비가 1보다 높아지려면 기금 운용수익률이 경상성장률보다 낮아야만 하는데 제5차 재정추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기금 운용수익률은 4.5%였다. 임금 상승률은 3.7%, 인구증가율은 –1.3%로 경상성장률은 2.4%였다.
신 부연구위원은 “결국 기대수익비 1을 추진하는 것이 맞다”라며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앞세대의 기대수익비가 1보다 높다는 것은 뒷세대 누군가의 기대수익비가 1보다 낮다는 것을 뜻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신 연금과 구 연금의 이원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구연금의 재정부족분을 해결하는 방안도 준비했다.
구 연금 재정부족분은 기금 운용수익률 4.5% 기준으로 609조 원이다. 점진적 보험료율 인상(매년 0.5%포인트)으로 발생하는 부족분을 더하면 220조 원이 추가된다.
재정부족분 해결 방안을 놓고 신 부연구위원은 10년 동안 GDP 4~5% 규모의 국채 발행으로 재정부족분을 충당한 뒤 매년 GDP 대비 1% 이내의 국고를 투입한다면 2070년대까지 전부 상환이 가능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 정세은 충남대학교 교수가 23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바람직한 국민연금 개혁방향’ 정책토론회에서 발제를 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반면 정세은 충남대학교 교수는 국민연금 제도의 정책적 목표인 보장성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소한의 생활 수준을 노후 세대에게 보장해 주지 않는다면 사회가 결국 다른 돈을 마련해서 이를 해결해야 한다”며 “미래세대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연금을 못 받는 것이 아니라 오래 사시는 부모님을 별다른 노후 대책 없이 부양해야 하는 상황일 것”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국민연금 고갈 가능성, 미래세대 착취론을 경고한 제5차 국민연금 재정추계와 관련해서도 불확실성 아래 수치를 너무 보수적으로 추정했다는 비판을 남겼다.
그는 “재정추계를 보면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을 매우 낮게 설정했는데 일본을 살펴보면 고령화 이후로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매우 높아졌다”라며 “최근 연구를 보면 고령화가 지속되면 자동화, 로봇화 투자로 생산성이 높아진다는 이야기가 있음에도 예상 성장률이 너무 낮게 설정됐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정 교수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인상할 수 있는 보험료율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국민이 보험료율 인상을 수용할 수 있도록 보장성을 함께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공론화위원회에서 13% 방안을 결정한 것은 경영계조차도 15%, 18% 방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할 정도로 우리 상황에서 올릴 수 있는 보험료율의 한계가 13%이기 때문”이라며 “보험료율을 13%까지 올리는데도 보장성은 나아지지 않는다면 국민이 어떤 희망을 품겠느냐”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국민연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단기적으로 국고를 투입해 지급 안정성을 높인 뒤 장기적 관점에서 제도와 우리나라 사회 자체를 개혁해야 한다고 바라봤다.
그는 “현재의 재정 불안정의 문제가 발생한 원인은 국민연금 제도의 책임이 아니고 사회구조가 변화했기 때문”이라며 “단기적으로는 보험료를 올리고 국고를 투입해 안정성을 보장해 주면서 장기적으로는 구조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발제 뒤에 진행된 토론에서도 국민연금 제도의 사회보장 기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참석자와 국민연금 제도가 붕괴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는 참석자 사이의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이 23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바람직한 국민연금 개혁방향’ 정책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완전 적립식으로 전환해 재정안정을 추구하는 것이 옳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는 “선진국 대부분이 연금제도를 자신이 낸 만큼 받는 것으로 제도를 바꾸고 있는데 우리만 이를 못 한다고 하고 있다”라며 “공론화위원회에서 발표한 개혁 방안들은 모두 희망 고문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어 “유럽에서 공적연금 제도에 국고를 투입하는 문제를 갖고 호도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세상 어디에도 보험료 적게 내겠다고 국고 투입하는 나라는 없다”라며 “독일이 연금 지출의 약 30%를 국고로 충당하나 이는 과거 방만한 제도 운용에 따른 지급 부족액, 저소득층 기초연금, 각종 크레딧 사적 적립 소요액이다"고 설명했다.
반면 조영철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초빙전문위원은 공론화위원회에서 발표한 점진적 국민연금 개혁 방안이 전혀 의미가 없는 것처럼 발언하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을 무시하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오늘 토론을 보면 굉장히 급진적이고 과격한 발언이 나오는데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이 아무리 형편없다고 하더라도 재정이 고갈이 되고 있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몇십 년 동안 이것을 가만히 둘 리가 없다”라며 “적당한 시점에서 점진적으로 올리고 앞으로 20년, 30년에 걸쳐서 보험료를 인상해 장기 균형을 맞추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단 한 번의 보험료 인상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은 없다”라며 “그런 방안이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공포를 조장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고 부연했다. 김홍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