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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제로 히어로](1-2)에이치투 한신 "왕대박 실패가 흐름전지 대박기술 낳았다"

이경숙 기자 ks.lee@businesspost.co.kr 2023-01-26 16:4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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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제로 히어로](1-2)에이치투 한신 "왕대박 실패가 흐름전지 대박기술 낳았다"
▲ 글로벌 장주기(Long-duration) 에너지저장장치 분야 선도 기업으로 꼽히는 에이치투의 한신 대표는 ‘기후 문제에 정면 승부하는 비즈니스’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일하다 보면, 사람이 드러누워 버릴 것 같아 보이는 때가 온다고 했다. 한신 에이치투(H2) 대표의 눈에 개발총책임자인 허지향 기술연구소 이사가 딱 그렇게 보였다.

때는 2017년. KAIST 기계공학과의 같은 실험실에 있던 허 이사와 의기투합해 회사를 창업한지 7년이 지난 상황이었다. 거의 다 된 것 같은데 아무리 해도 결과물이 나오지 않고 있었다.

한 대표는 허 이사에게 ‘이제 내려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마운드에 선 투수가 딱 보기에도 지쳐 보일 때 감독이 구원투수를 넣겠다고 손짓하듯.

“허 박사(이사)가 너무 지쳐 보였어요. 제가 두 번 내려오라 했는데, 두 번 다 버티더라구요. 자기는 끝까지 해보고 싶다고, 울면서 계속하겠다는 거예요. 그러더니 결국….”

자, 보통 이쯤에서 성공담이 나온다. 한 대표가 잠깐 숨을 돌리더니 “왕대박”이라는 말로 입을 열었다. 기대감이 고조됐다.

“왕대박, 실패했어요. 재료값만 15억 원을 날렸어요. 그걸 고철로 팔면서 몇 백만 원 받았던가.”

그런데도 허 이사는 다시 개발에 달려들었다. 한 대표는 투자기관, 발주처로 찾아가 6개월만 더 달라 설득했다.

에이치투 앞에 ‘국내 최초’니, ‘선도’니 하는 수식어를 붙여준 바나듐 레독스 흐름전지(VRFB)는 그 후 탄생했다.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로 다시 만든 것이 상용화에 성공했다.

투자자들은 ‘자체 연구 개발을 통해 VRFB를 상용화한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기업’, ’글로벌 장주기(Long-duration) 에너지저장장치 분야 선도 기업’이라며 에이치투 투자에 참여했다. 2022년 말까지 총 562억 원의 투자가 성사됐다. ‘왕대박 실패’가 대박기술을 낳은 셈이다.

한 대표는 “엄청난 돈을 까먹고 지금의 우리 제품이 나왔다”며 “대기업에선 개발책임자가 300억 원을 쓰고도 제품을 못 내놨다면 잘렸을(해고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실패와 실패를 거듭해도 버텼다.

“실패를 얼마나 해야 성공하는지 알고 있어서 버틸 수 있었던 겁니다. 오너(대표)가 엔지니어니까요. 그래서 괜찮아, 돈 날려도 상관 없어, 그 대신 공부한 거야, 라고 할 수 있었죠.”

그는 “대표가 연구개발 과정에 관여하면서 옆에서 봤으니까 그게 어떻게 실패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며 “대표가 개발과정을 모르는 다른 회사였다면 그걸 용인하지 못하고 인력을 바꾸라고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말하는 그 역시 창업할 때만 해도 3~4년이면 해낼 줄 알았다고 했다. 그게 10년 걸릴 줄은 몰랐다.

이들이 만드는 바나듐 레독스 흐름전지는 한 대표의 아내가 “우주선 만드는 것 같다”고 할 정도로 크고 복잡하다. 또, 기술적으로도 어려운 점이 많다.

이 전지는 ‘바나듐’이라는 금속을 전지의 양극과 음극에 사용해 환원(reduction)과 산화(oxidation) 즉 레독스(redox) 반응을 일으킨다. 저장용기의 전해액을 전지 내 스택(Stack) 즉 발전장치로 흘려 넣어 전기를 충전한다고 해서 ‘흐름전지’라고 불린다.
 
[넷제로 히어로](1-2)에이치투 한신 "왕대박 실패가 흐름전지 대박기술 낳았다"
▲ 한신 대표는 전해액에 전기를 저장하는 기술이 개발하기 특히 어려웠다고 말했다. 사진은 에이치투 실험실에서 바나듐 레독스 흐름전지의 원리를 설명하고 있는 한 대표. <비즈니스포스트> 

한 대표는 이 중 전해액에 전기를 저장하는 기술이 개발하기 특히 어려웠다고 말했다. 왜 하필 이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제품을 창업 아이템으로 잡은 걸까.

“제가 공학을 전공했지만 부품만 만들면 재미가 없거든요. 직원들도 마찬가지고요. 내가 이걸 만들었더니 화석연료가 없어졌어, 지구온난화를 1.5도 상승에서 막았어, 이렇게 직접 효과를 느껴야 재미가 있죠.”

그는 ‘기후 문제에 정면 승부하는 비즈니스’를 하고 싶었다. ‘기후위기=화석연료’라면 화석연료를 안 쓰게 하고 싶었다.

화석연료발전소는 주로 언제 돌릴까. 너무 덥거나 너무 추워서 전기수요가 평소보다 많아질 때, 즉 전력 피크가 올 때다.

그는 “전기가 남을 때 전력을 대용량으로 저장할 수 있으면 화석연료발전소를 켜지 않고 무탄소 전력만 가동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무탄소 발전기, 친환경 발전기만 100% 돌아가게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남는 전기는 에너지저장장치에 모아뒀다가 필요할 때 꺼내 쓰고요. 화석연료를 태울 필요가 없어지겠죠?”

그러려면 전기를 많이, 오래 저장하는 대용량 장주기(Long-duration) 전지가 필요하다.

흐름전지는 전력을 저장하는 물질 전해액을 전지 바깥의 용기에 저장할 수 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은 지난 12월 발간한 ‘탄소중립’이라는 도서에서 “대용량 전력 저장에 적합하다”는 이유로 흐름전지를 재생에너지 저장 유망기술 중 하나로 꼽았다.

2017년 말 제품 개발에 성공했지만 시장은 곧바로 커지지 않았다. 특히 한국엔 민간시장이 없었다. 한때 에너지저장장치로 전기료가 싼 밤 시간대에 전기를 저장했다가 낮에 쓰도록 해주는 요금제가 있었지만 그 제도도 사라졌다.

에이치투는 수요를 찾아 6개국에 진출했다. 폴란드 신재생에너지 국책연구소, 몰디브 리조트, 독일 송배전망, 미국 북부 캘리포니아 천연가스(LNG)발전소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러다 큰 시장이 열리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 2022년 8월 발효되면서 에너지저장장치에 가격 경쟁력이 생긴 것이다.

인플레이션감축법은 새로운 태양광 제조시설을 건설하고 이와 연결된 에너지저장장치를 설치하면 세액을 공제해준다. 재생에너지 관련 생산 세액 공제 규모는 300억 달러에 이른다.

한 대표는 “한국에선 10억 원에 파는 제품을 미국에선 7억 원에 팔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캘리포니아 프로젝트를 완료하는 2024년쯤 미국 중남부에서 또 다른 프로젝트를 딸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한국 시장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었다. 정부가 정책적으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정하고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저장장치는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뿐 아니라 송배전사업자한테도 필요하다. 여러 지역 간 송전 혼잡을 해소하기 위해 대용량 에너지저장장치가 쓰이기 때문이다.
[넷제로 히어로](1-2)에이치투 한신 "왕대박 실패가 흐름전지 대박기술 낳았다"
▲ 에너지저장장치는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뿐 아니라 송배전사업자한테도 필요하다. 사진은 에이치투의 바나듐 레독스 흐름전지. <에이치투>


대비를 하지 않고 재생에너지를 늘리면 출력 제한 등 전력계통 문제가 생긴다. 전력 공급을 위해선 전압과 주파수가 안정적으로 유지되어야 하는데, 재생에너지는 날씨나 기후에 발전량이 크게 좌우된다.

실제로 재생에너지 보급률이 18.2%를 돌파한 제주에선 지난해 출력 제한으로 풍력발전소 가동이 100회 이상 중단되기도 했다.

한 대표는 “제주는 육지의 미래”라고 말했다. 정부 계획대로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21.6%로 늘어나면 같은 문제가 육지에서도 발생할 것이라는 뜻이다.

문제가 생기면 해법에 대한 수요도 생긴다. 그는 재생에너지의 문제 속에서 미래 시장을 보고 있었다.

“한국에 기존에는 없던, 새로운 시장이 생길 겁니다. 예비 전력 시장, 급전 가능 재생에너지 시장, 남는 전기를 어쩔 수 없이 돈 주고 버리는 시장 등등.”

그는 에이치투의 목표가 세 가지라고 말했다. 첫째 자아성취, 둘째 국가발전, 셋째 인류행복. 내게 재밌는 일을 하면서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되고 기후위기 극복으로 인류행복까지 지키는 회사. 그런 회사를 만드는 사람들은 기후우울증 따위 걸릴 틈이 없겠다.대전=이경숙 기자
 
[편집자주] 유사 이래 처음으로 인류가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2050넷제로’. 2050년까지 전 인류가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제로 ’0’로 만들겠다는 뜻이다. 더 큰 기후재앙을 불러오지 않기 위해 인류는 달성해야 하는 최소한의 목표다.
하지만 유엔환경계획은 각 국가가 약속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로는 2030년에 1%도 줄이지 못할 것이며 이대로면 세기말 지구 평균 기온이 2.6도까지 높아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기술로 뛰어넘는 기업들이 있다. 30년 전 IT기업들이 전 세계 산업의 디지털 전환을 이끌어냈듯, 이들은 기후위기 시대에 ‘넷제로 전환’을 이끌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는 이들을 탄소중립을 이끄는 영웅들, 즉 ‘넷제로 히어로’라 이름 붙이고 2023년 연중 기획으로 발굴해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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