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금융당국과 은행권이 부실 채무조정을 위한 새출발기금을 둘러싸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새출발기금 제도가 기존에 운영해 오던 회생 제도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은행권에서는 채무 감면율이 과도하다고 바라보고 있다.
▲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새출발기금을 놓고 은행권을 설득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
김 위원장은 새출발기금 제도가 윤석열정부의 첫 금융부문 민생안정 대책인 만큼 새출발기금의 성공적 시행을 위해 은행권의 협조를 끌어내는 데 공을 들일 것으로 보인다.
14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8월 안에 새출발기금 제도의 세부운영방안을 발표한 뒤 9월 말부터 시행에 들어간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새출발기금 제도는 코로나19 확산 상황에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지원하기 위해 대출 만기연장 및 상환유예 조치를 진행하던 것이 9월 말 종료를 앞두게 되자 30조 원을 들여 이들의 채무를 매입해 조정하는 프로그램이다.
새출발기금 제도는 기존 대출의 금리를 낮춰주고 거치기간도 늘려 분할상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한다. 특히 90일 이상 연체한 부실 대출자의 원금을 60~90%까지 과감하게 감면하는 것도 담고 있다.
새출발기금 제도는 윤석열정부가 민생안정책의 하나로 공을 들여 준비하고 있는 정책으로 김 위원장이 취임한 뒤 처음으로 내놓은 정책이기도 하다.
반면 은행권은 새출발기금 제도의 채무 감면율이 지나치다고 보고 있다.
은행권은 최대 90%까지 원금을 감면해주는 것에 대해 도덕적 해이를 불러와 부실 대출자를 양산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부실채권을 새출발기금의 운용기관인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헐값에 넘겨 손실을 보게 될 가능성도 우려한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어려운 사람을 돕자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금융위원회가 제시하는 채무 감면율은 은행에게는 안 좋은 영향을 줄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새출발기금의 채무조정 수준이 기존 제도들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고 보고 있다.
김 위원장은 8일 기자간담회에서 “법원에도 채무탕감제도가 있고 신용회복위원회에서도 채무탕감제도가 있다”며 “이러한 회생제도에서 인정해주는 탕감률의 범위 내에서 새출발기금을 운영하겠다는 것이 기본적인 정신이다”고 설명했다.
금융위원회도 최대 90%까지 원금을 감면받는 대상자는 기초생활수급자, 중증장애인, 만 70세 이상의 고령자 등 사실상 원금을 상환할 능력이 없는 취약계층이라고 강조했다.
금융위원회는 은행으로부터 부실채권을 매입할 때 헐값에 따른 은행 손실의 우려가 없도록 복수의 기관이 평가한 공정가치를 통해 채권을 매입하겠다는 방침도 세워뒀다.
김 위원장과 은행권이 새출발기금의 채무 감면율을 놓고 평행선을 달리고 있지만 서로 이견을 좁힐 가능성이 있다는 시선도 나오고 있다.
김 위원장은 새출발기금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서는 은행권의 협조가 절실하고 은행권에서도 정부의 역점사업에 대해 마냥 반대하는 의견을 내놓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는 은행권과 지속적으로 협의를 진행해 새출발기금의 지원대상 부실차주 기준, 채무조정 방법 및 매입가격 등 세부사항을 조율해 나가겠다는 방침을 마련해 놓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결국은 새출발기금의 세부사항을 논의하는 협의 과정에서 금융위원회와 은행권이 서로 양보하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조승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