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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일 오전(한국시간) 2014브라질월드컵에 출전하는 축구국가대표팀 홍명보 감독이 벨기에와 경기를 앞두고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
홍명보 감독이 유임됐다. 이번 유임으로 대한축구협회의 무능함이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홍 감독은 브라질 월드컵에서 그의 선수기용 방식이 월드컵 실패의 원인으로 지목되며 국민적 질타를 받았다. 내년 아시안컵까지 남은 기간은 6개월이다.
대한축구협회는 3일 기자회견을 열어 홍명보 국가대표팀 감독을 유임한다고 밝혔다. 홍 감독은 월드컵 조별예선 이후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과 만난 자리에서 사퇴의사를 밝혔지만 정 회장의 만류로 2015년 1월 열리는 호주 아시안컵까지 감독직을 수행하게 됐다.
◆ 대한축구협회, 대안없어 홍명보 유임했나
홍 감독의 유임은 월드컵 조별예선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탈락한 나라들의 행보와 비교하면 다소 의외다. 일본은 조별예선이 탈락 후 1주일도 채 되기 전에 새로운 감독을 발표했다. 이탈리아는 예선탈락에 대한 책임을 지고 축구협회 회장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홍 감독은 월드컵에 실패하면서 '의리 리더십'으로 질타를 받았다. 그런데 이번 유임으로 축구협회도 의리 논란에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축구협회는 표면적으로 홍 감독을 감싸안고 책임을 나누며 유임을 결정했다. 홍 감독에게 1년 전 감독직을 맡긴 데 대한 미안함을 표현한 것이다. 당시 홍 감독은 대표팀 감독직 제의에 고사하다 마지못해 수락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또 그동안 보여온 축구협회의 행보에 비춰 보면 차기 대표팀 감독 선임에 대한 준비가 부족했던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허정무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대안이 없었던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안이 없어서 홍명보 감독을 재신임했다고 말하기 어렵다”고 밝히면서도 “인재풀을 찾아봐야 하는데 미리 준비하고 대비해 나가는 정책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대답해 사실상 대안이 없음을 인정했다.
대한축구협회는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조광래 감독의 경질과정에서도 뚜렷한 대안이 없었다. 이후 선임된 최강희 감독 역시 월드컵 최종예선까지만 시한부로 맡기는 등 미봉적 해결에 급급했다.
이웃 나라 일본이 4년 뒤 월드컵에 초점을 맞추고 새로운 감독을 맞이한 것과 대조적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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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정무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이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신문로2가 축구회관에서 홍명보 감독 거취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 홍명보는 실패에서 배울 수 있을까
홍명보 감독은 취임할 때부터 일성으로 '원팀(One Team)-원스피릿(One Spirit)-원골(One Goal)'이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꾸준히 소속팀에서 활약하는 선수를 뽑겠다는 원칙도 세웠다.
그러나 그의 원칙은 월드컵 대표팀 선수 선발과정에서 깨졌다. 박주영의 선발이 대표적이다. 이에 대해 홍 감독은 결과로 평가 받겠다며 자신의 선수선발에 대한 논란을 일축했다. 홍 감독의 자신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라는 말도 들었다.
홍 감독의 이런 자신감은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축구인생에서 그 배경을 찾을 수 있다. 홍 감독은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을 시작으로 1994년 미국 월드컵, 1998년 프랑스 월드컵, 2002년 한일월드컵까지 4개 월드컵에 출전하며 화려한 선수시절을 보냈다.
홍 감독은 40살의 젊은 나이에 17세 이하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으며 감독으로서도 성공가도를 달렸다. 특히 2010년 런던 올림픽 동메달은 국가대표팀 지휘봉을 잡게 해줬다.
그러나 홍명보 감독은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실패했다.
홍 감독은 마이웨이를 외치며 자신의 길을 걸었지만 이점이 곧 실패의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홍 감독은 이른바 ‘홍명보의 아이들’로 불리는 2010년 런던 올림픽 멤버들을 무한대로 신뢰했고 그 결과는 축구인생에서 겪는 첫 번째 참담한 실패로 돌아왔다.
이번 월드컵 직후 곽태휘 선수는 인터뷰를 통해 홍명보의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선수들 사이에 위화감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곽태휘 선수는 “런던올림픽에 참가하지 않고 월드컵 대표팀에 뽑힌 선수들은 조금 다른 느낌을 가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 감독은 스스로 강하게 밝힌 ‘원팀’을 만드는 데 실패한 것이다. 이에 따라 홍 감독이 이제 아집을 꺾고 주변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도 강하게 나온다. 그럴 때 홍 감독이 실패를 딛고 일어나 성공의 리더십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유임을 반기는 시각도 있다. 섣부른 사퇴보다 한국 축구에 홍 감독의 색을 입힐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축구전문가 폴 윌리엄스는 지난달 30일 칼럼에서 “한국이 브라질 월드컵에서 조별예선에서 탈락했지만 홍명보 감독은 남아야한다”고 주장했다. 윌리엄스가 지적한 한국 축구의 가장 큰 문제는 정체성 부족이다. 그는 “한국축구는 선수들과 한국인의 정서에 부합하는 정체성을 찾는 게 급선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