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하이텍이 정부여당의 반도체 지원에 힘입어 증설 등 사업 확대를 결단할까?
최근 정부와 여당은 힘을 합쳐 반도체 지원에 나서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 자국주의’에 맞서 국내 반도체 생태계를 더욱 확대하겠다는 의지가 강한 만큼 DB하이텍과 같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기업에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21일 집권당인 민주당은 ‘반도체기술 특별위원회(반도체특위)’를 공식 출범했다. 삼성전자 출신 반도체 전문가 양향자 의원이 위원장을 맡았다.
반도체특위는 상반기 안에 ‘K-반도체 벨트 전략’을 세워 재정과 세제지원, 인력 양성을 포함한 종합 지원정책을 발표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미국처럼 국가 차원에서 반도체산업을 밀어주겠다는 것이다.
미국 의회는 지난해 6월 반도체 생산지원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에는 2024년까지 미국 내 반도체 시설투자에 관해 최대 40%의 세액공제를 지원하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영국 로이터에 따르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법안 시행에 370억 달러가 필요하다고 보고 예산 확보를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에서도 미국과 비슷한 지원책이 마련된다고 가정하면 국내 최대 반도체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가장 먼저 수혜를 볼 것으로 전망된다. 두 기업은 매해 조 단위의 대규모 투자를 단행해 반도체 생산능력을 확대하고 있다.
다만 시장에서는 정부여당의 지원 의지가 DB하이텍처럼 시설투자에 적극 나서지 못하는 반도체기업의 증설을 촉진할 수 있을지도 주목한다.
DB하이텍은 최근 8인치(200mm) 파운드리 수요 급증에 힘입어 지속해서 실적이 좋아지고 있다. DB하이텍의 연결기준 매출은 2018년 6692억 원, 2019년 8074억 원, 2020년 9359억 원 등 해마다 큰 폭으로 늘어났다.
DB하이텍은 올해는 역대 처음으로 연간 매출 1조 원을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2021년 생산할 반도체 수주물량을 이미 대부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DB하이텍은 이런 실적 호조세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증설계획을 내놓지 않고 기존 생산설비를 효율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 생산능력을 보완하는 데 911억 원을 투자했고 올해는 818억 원 규모의 투자계획을 세워뒀다.
반도체 생산라인 자체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이 정도 투자와 비교도 되지 않는 막대한 자본이 필요하다. DB하이텍이 증설을 망설이는 가장 큰 이유다.
최창식 DB하이텍 대표이사 부회장은 2월 전자신문과 인터뷰에서 “새 파운드리 라인을 증설하려면 1조 원 넘는 투자를 해야 한다”며 “내부 실력을 축적한 뒤 진행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반도체 육성을 추진하는 정부여당 쪽에서 보면 DB하이텍은 현재보다 덩치가 더 커질 필요가 있다.
DB하이텍은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를 제외한 순수 파운드리기업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다만 현재 가동률은 100%에 가까워 더 많은 반도체 일감을 받기 어렵다.
정부는 최근 세계적 자동차반도체 공급부족, 미국과 중국의 무역갈등 등을 계기로 시스템반도체 생태계 확대를 모색하고 있다.
자동차반도체처럼 그동안 해외에 대부분을 의존하던 시스템반도체 품목들을 국내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기업)에서도 개발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DB하이텍과 같은 파운드리기업의 도움이 필요하다. 팹리스는 자체 반도체 생산설비를 두지 않아 파운드리기업을 통해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실제로 DB하이텍은 3월 초 산업통상자원부 주도로 발족한 ‘미래차-반도체 연대·협력 협의체’에 참여해 자동차반도체 수급 개선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 DB하이텍 충북 상우 파운드리공장 직원들이 생산라인을 점검하고 있다. < DB그룹 > |
올해 유독 많았던 해외 반도체기업 관련 사건사고도 국내 파운드리기업의 역할에 힘을 싣고 있다.
미국 텍사스에 있는 삼성전자와 NXP, 인피니언 등의 반도체공장이 2월 한파로 가동 중단됐고 3월에는 일본 르네사스 반도체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기업 대만 TSMC는 14일 정전사고를 겪기도 했다.
물론 DB하이텍에게 증설은 쉽게 결단하기 어려운 문제다. 지금과 같은 반도체 호황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진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DB하이텍은 흑자 전환에 성공한 2014년 이전에는 경영난을 겪었던 적이 있어 증설 같은 대규모 투자에 더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DB하이텍은 시장규모가 작은 아날로그반도체 분야에서 강점을 가지고 있고 아날로그반도체는 다품종소량생산 위주로 생산되기 때문에 대규모 투자에 신중한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증권업계에서는 미국의 중국 반도체산업 제재 등 불안정한 국제정세가 단기간에 해소되지 않은 만큼 반도체 공급부족이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DB하이텍이 생산능력을 확대해도 일감 걱정을 할 우려가 적다는 뜻이다.
최도연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2022년까지 비메모리반도체 공급부족이 해소되기 어렵다”며 “이자·세금·감가상각비·무형자산상각비 차감전이익(EBITDA) 흐름을 고려하면 DB하이텍은 2022~2023년 중에 단계적으로 12인치(300mm) 파운드리 라인을 신규 증설할 가능성이 높다”고 바라봤다.
정부여당의 반도체산업 지원방안도 DB하이텍을 비롯한 반도체기업들의 투자부담을 상당히 덜어줄 만한 규모로 계획될 공산이 크다.
양향자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반도체 전쟁은 미국과 중국 갈등을 넘어서 유럽, 대만, 일본 등 거의 모든 선진국이 참전하는 세계대전 양상으로 확대되고 있다”며 “한국전쟁 이후 치르게 된 가장 큰 전쟁이다”고 말했다.
그는 “당·정·청·산·학·연을 하나로 묶어 전쟁을 승리로 마무리하겠다”며 “국민이 부여한 입법과 예산 권한을 최대한 활용하겠다”고 덧붙였다. [비즈니스포스트 임한솔 기자]
▲ 민주당이 21일 '반도체기술 특별위원회'를 발족했다. 삼성전자 출신 반도체 전문가 양향자 의원이 위원장을 맡았다. <양향자 의원 페이스북 갈무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