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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분당구 서현동 분당제생병원이 4일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확진 환자발생 병원이라는 허위사실이 유포된 뒤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뉴시스> |
소문(rumour)이란 사전적 의미에서 세상의 떠도는 온갖 이야기를 말한다. 사실인 경우도 있지만 대개 진위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심리학자 니콜라스 디폰조와 프라산트 보르디아는 소문을 다르게 규정한다. “소문은 어떤 집단이 모호한 상황에 빠졌을 때 그 상황을 설명하려는 집단적 노력이다.”
국내에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감염자가 늘어나면서 소문이 난무하고 있다.
특정인을 지칭해 주소와 직장, 가족관계까지 까발려지는 ‘마녀사냥’이 이뤄지는 것은 물론이고 메르스에 효과가 있다는 온갖 비법들도 SNS 등을 통해 양산되고 있다. 때로 그럴 듯한 사진과 제법 권위있는 대학병원 교수 이름까지도 덧붙여진다.
디폰조와 보르디아식으로 말하면 온 국민이 메르스라는 모호한 상황 앞에서 집단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 셈이다.
G. W. 알포트와 L. 포스트만이란 심리학자는 소문의 강도를 수식으로 이렇게 표현하기도 한다.
R = I x A.
I는 중요성(impotance)이며 A는 불확실성(ambiguity)의 앞글자다. 중요한 사안이면서 불확실성이 클수록 소문의 강도도 높아진다는 흥미로운 설명이다.
메르스와 관련한 온갖 소문이 나도는 상황을 설명하는 데 꽤나 적절하다. 이미 메르스에 감염돼 사망자가 나온 데다 불과 2주 만에 확진자와 격리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건강에 관한 국민적 관심과 중요성은 최근 불거진 ‘가짜 백수오’ 사태에서도 충분히 확인된다. 몸에 해롭다거나 좋지 않다고 해도 시장의 반응이 이 정도인데 치사율이 40%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문제는 불확실성이다. 중요성만으로 소문이 이처럼 증폭되지 않는다. 불확실성의 진원지는 모든 정보를 움켜쥔 채 공개하지 않는 정부다. 알고 숨기는 것이든, 몰라서 밝히지 않는 것이든 결과는 같다.
정부가 메르스 확진자나 감염자가 나온 병원을 공개하지 않으니 SNS나 인터넷 게시판 등에 확인되지 않은 병원명이 난무하고 그에 따른 피해도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SNS에 '메르스로부터 내 몸 지키기'란 글이 급속도로 퍼져 바이러스를 피하려면 콧속에 바세린을 바르라는 그럴듯한 정보가 퍼졌다.
이밖에도 껍질을 벗긴 양파를 집안에 놓아두면 메르스 감염을 차단할 수 있다거나 김칫국을 코로 들이켜라는 등 과학적 근거가 없는 자가 예방법도 나돌고 있다.
이번 메르스 사태로 소문의 강도에 또 하나의 변수를 덧붙일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중요성과 불확실성에 더해 모바일기기의 위력이다. 스마트폰을 이용한 메신저 서비스 가입자가 급증하면서 메르스를 둘러싼 불안과 공포의 전염도 광속 수준이 됐다.
피해사례가 잇따르면서 고소와 고발도 현실화하고 있다.
부산 사상경찰서는 3일 SNS에 메르스 관련 유언비어를 퍼뜨려 병원의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김모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김씨는 부산의 한 병원 이름을 지칭해 메르스 의심환자가 들어왔으며 병원 본관 5층을 통제중이라는 글을 올린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사례가 전국적으로 잇따르고 있다. 파주지역의 한 인터넷 카페에도 최근 ‘대기업 직원 3명이 격리된 상태로 앓고 있다’는 글이 올라와 경찰이 조사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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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4일 국회에서 열린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MERS) 비상대책 특위 및 전문가 합동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뉴시스> |
가톨릭대학교 부천성모병원도 메르스 관련 허위사실 유포에 법적 대응 방침을 밝혔다. 의료기관뿐 아니라 강남 소재 대형 수학학원도 메르스 환자가 있다는 소문을 퍼뜨린 네티즌을 처벌해 달라며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인터넷과 SNS는 괴담꾼들의 놀이터가 되고 있다”며 정부가 괴담 공포 확산 차단에 나서줄 것을 강하게 촉구했다.
김 대표는 “지금 우리는 메르스 확산방지에 총력을 기울이되 지나친 공포심은 자제해야 된다”며 “불안감과 공포심을 틈타 전국으로 퍼지는 각종 괴담이 국민을 더욱 불안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보건당국이 나서 메르스와 관련한 모든 정보를 국민에게 신속하고 정확하게 공개하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한다.
니콜라스 디폰조는 저서 ‘루머사회’에서 루머가 생기고 퍼지는 것을 막을 도리는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루머를 어느 정도 통제하는 일은 가능하다. 그가 제시하는 방법은 딱 한가지다. “불확실한 상황을 통제하라”는 것이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