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를 비롯한 정부에서 기업 지배구조 규제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에 기업들의 대응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하지만 국회에서 지배구조 규제 입법은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주주총회 기간을 맞아 기업 지배구조 개편이 최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16일 현대자동차 주주총회에서 순환출자 해소와 관련한 질문이 나왔고 23일 열리는 삼성전자, 롯데쇼핑 등의 주주총회에서도 지배구조와 관련한 내용이 나올지 벌써부터 시선이 몰리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 기업 지배구조 개편 압력이 강해지고 있어 관련 규제안이 마련되기 전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려는 기업이 적지 않다.
공정거래위원회가 2월5일 발표한 대기업 소유지배구조 개편사례에 따르면 대기업집단 가운데 이미 10곳이 구조개편안을 발표하고 추진했다.
하지만 정작 국회에서 기업 지배구조 규제 입법 처리는 더디다. 20대 국회가 출범한 뒤 상법, 세법, 공정거래법 등 다양한 지배구조 관련 법안이 발의되면서 기업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냈으나 대부분은 여전히 상임위원회의 법안심사소위 문턱도 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지주회사의 자회사 지분보유 요건을 강화하는 안, 기존 상호출자를 해소하도록 의무화하는 안, 회사를 분할할 때 자사주 활용을 제한하는 안 등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법안심사소위에서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대기업 계열사끼리 합병할 때 금융계열사가 보유한 주식 의결권을 제한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2017년 1월 발의됐으나 법안심사소위에 아직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
인적분할 자사주에 분할신주를 배정할 때 세금을 부과하는 법인세법 개정안 역시 조세소위에서 논의하지 않았다.
보험사가 보유한 계열사 주식을 취득원가가 아닌 시가로 평가하는 내용의 보험업법 개정안은 정무위 법안심사소위에서 한 차례 논의가 이뤄졌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논의가 중단됐다.
상법 개정안은 그나마 상황이 낫다.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집중투표제·전자투표제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선임 등의 내용을 담아 더불어민주당이 당론으로 발의한 상법 개정안은 지난해 정기국회에서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가 논의를 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에서 경영권 방어 조치 도입을 요구하고 있어 의견이 팽팽하게 맞선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이런 쟁점법안의 통과는 쉽지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더욱이 최근 국회는 헌법 개정과 일자리 추경 등을 놓고 여당과 야당이 첨예한 대립을 하고 있어 법안 처리는 갈수록 어려워진다. 2월 임시국회도 정쟁 속에 빈손으로 끝날 뻔하다가 가까스로 긴급한 현안들만 처리했을 뿐이다.
김한이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2016년 하반기부터 지배구조 규제를 강화하는 입법 발의가 지속됐지만 정기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발의안은 전무하다”며 “법안이 개정되지 않았음에도 기업들이 선제적 지배구조 재편을 추진하고 있어 규제 강화 방향성은 유지될 것이지만 어떤 발의안이 통과될 수 있을지 가늠하기 쉽지 않다”고 파악했다.
공정위가 기업 지배구조를 다루는 공정거래법의 전면 개편을 추진하고 있는 점은 현안이 가장 많은 공정거래법의 의원 개별 입법이 속도를 내는데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
김상조 위원장은 이날 공정거래법제 개선 특별위원회 출범브리핑에서 “의원 개정안은 하나하나가 중요하고 의미있는 내용”이라면서도 “공정거래법 전체를 봤을 때 의도치 않은 결과가 나올 수 있어 전체의 완결성과 체계성을 높이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상반기에 지방선거와 개헌 논의가 있어 공정거래법의 중요한 사항들을 당장 개정하기 쉽지 않다”며 “하반기 중 정기국회에서 정무위 의원들에게 정부 법안을 제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