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글 알파벳을 비롯한 5개 빅테크 기업이 메모리반도체 물량 선점을 비롯해 모두 2조7천억 달러의 장기 계약을 체결했다는 집계가 나왔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투자 열풍이 장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신호로 분석된다. 미국 텍사스주에 위치한 구글 데이터센터. <연합뉴스>
이를 놓고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가 단기간에 위축되며 관련 기업들에 큰 타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시장의 우려와 반대되는 신호라는 평가가 나온다.
5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 계열 투자전문지 배런스는 “빅테크 기업들이 2분기 실적 발표 시즌을 마치면서 천문학적 수치를 남겼다”고 보도했다.
구글 지주사 알파벳과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메타와 오라클이 2026년에 계획하고 있는 시설 투자 규모는 8천억 달러(약 1136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배런스는 인공지능 데이터센터에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빅테크 기업들의 자본 지출이 앞으로 더 폭넓고 오랜 기간에 걸쳐 이어질 공산이 크다고 내다봤다.
반도체와 에너지를 비롯한 주요 공급망에 앞으로 수 년 동안 상당한 비용이 들어갈 것으로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배런스는 위 5개 기업의 분기 보고서에 포함된 AI를 중심으로 한 장기 계약 규모가 모두 2조7천억 달러(약 3823조 원)에 이른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알파벳은 주요 기술 인프라 및 부품 재고 확보를 위해 8110억 달러(약 1149조 원) 상당의 장기 공급 계약 및 주문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약 3개월 전까지만 해도 3320억 달러(약 470조 원)에 그쳤던 예산 규모가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난 셈이다.
알파벳은 해당 금액 가운데 대부분이 확정된 계약이며 전체 비용의 약 4분의1은 12개월 이내에 집행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나머지 공급 계약은 대부분 2030년까지로 계획되어 있다.
배런스는 알파벳이 지출 계획을 대폭 늘린 배경으로 메모리반도체 제조사들과 장기 공급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일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기업들은 D램과 낸드플래시, 고대역폭 메모리(HBM) 등 메모리반도체 물량 부족 사태가 장기화될 가능성을 우려해 장기 계약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 SK하이닉스의 서버용 메모리반도체 전시장 홍보용 사진. < SK하이닉스 >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주요 제조사들이 이러한 과정에서 유리한 위치에 놓이면서 향후 업황이 악화해도 실적을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빅테크 기업들과 장기 계약은 공급 물량이 상당하고 가격도 높은 수준으로 책정할 수 있어 메모리반도체 제조사들의 중장기 성장 동력에 힘을 보탤 수 있다.
배런스는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 등 기업이 시장 지배력과 가격 결정력을 앞세워 고객사들에 더 높은 가격으로 장기 계약 체결을 요구하는 사례도 파악된다고 전했다.
따라서 빅테크 업체들의 장기 계약 금액이 앞으로 계속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결국 배런스는 2027년부터 빅테크의 인공지능 설비 투자가 위축될 수 있다고 바라보던 투자자들의 예측이 빗나갈 수 있다고 진단했다.
대부분의 빅테크 기업들은 2분기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설비 투자 금액을 상향했다.
알파벳의 2026년 투자 지출 계획은 2천억 달러(약 283조 원)로 이전보다 150억 달러(약 21조 원) 늘었다. 메타는 2026년에 1400억 달러(약 198조 원)를 들일 계획을 두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026년 1750억 달러(약 248조 원), 아마존은 2200억 달러(약 312조 원)를 각각 집행할 방침을 세웠다.
다만 아마존이 현재까지 체결한 장기 계약 규모는 2670억 달러(약 378조 원)에 그친 것으로 파악됐다.
배런스는 아마존이 메모리반도체 가격 하락을 비롯한 시장 변화를 기대하고 장기 계약에 다소 소극적으로 나선 것이라는 분석을 제시했다.
다만 다른 빅테크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장기 공급 계약을 체결하며 물량을 선점하고 있는 만큼 메모리반도체 가격이 떨어지는 시기가 늦춰질 수 있다는 전망도 고개를 든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겸 스페이스X CEO는 4일(현지시각) 스페이스X 2분기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메모리반도체 공급량은 연간 20% 정도 늘어나는 반면 수요는 200% 이상 증가하고 있다”며 공급 부족 사태가 훨씬 심각해질 가능성을 시사했다.
빅테크들이 투자를 지속할 바탕이 되는 미래 매출에 대한 전망도 밝다.
금융정보 플랫폼 시킹알파에 따르면 글로벌 투자은행 제프리스는 알파벳,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오라클의 '잔여 이행 의무(RPO)' 합산 규모가 2026년 1분기 말 기준 약 2조1천억 달러(약 2973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184% 증가한 수치다. 이 분석에 메타는 포함되지 않았다.
잔여 이행 의무란 빅테크들이 고객사와 계약을 맺었으나 아직 매출로 인식되지 않은 금액을 말한다. 즉 미래에 발생할 매출로 AI 투자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여겨진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