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섭 NH농협은행장이 조선회사의 대출을 놓고 딜레마에 빠졌다.
NH농협은 조선회사에 내준 대출에 발목이 잡혀 손실을 크게 보면서 구조조정으로 손실을 만회해야 하는 처지에 몰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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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섭 NH농협은행장. |
이 때문에 이 행장은 정치권의 입김으로 부실기업에 대출을 내주는 관행과 단절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조선회사의 돈줄이 마를 것을 염려해 계속 거래를 유지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NH농협은행은 올해 조선사에 신규 대출이나 지급보증을 자제하고 기존 여신도 조금씩 줄인다는 방침을 세웠으나 이를 고수하기가 만만치 않다.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은 9일 열린 시중은행장 간담회에서 “조선업을 둘러싼 시장의 불안심리가 완화되도록 협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조선업의 여신 한도를 줄이지 말고 거래를 유지해 줄 것을 요청한 셈이다.
이런 진 원장의 주문은 특히 이경섭 NH농협은행장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농협은행은 산업은행이나 수출입은행을 제외하고 시중은행 가운데 조선사 및 해운사의 부실에 가장 타격을 받을 것으로 꼽히고 있다. 이 때문에 농협은행을 비롯한 NH농협금융 계열사의 간부급 직원들이 기본급의 10%를 반납하고 은행 홍보팀을 지주사에 통폐합하기로 하는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도 진행하고 있다.
농협은행은 1분기 기준으로 전체 부실채권과 충당금 금액을 비교한 부실채권 커버리지비율 81.34%에 머물렀다. 신한은행·KB국민은행·KEB하나은행·우리은행은 모두 100%를 넘어섰다.
농협은행이 현재 보유한 조선·해운업종 위험노출액(익스포저)도 5조1465억 원에 이른다. 이 위험노출액 가운데 대부분이 선수금환급보증이다.
선수금환급보증은 조선사에서 선박을 제때 발주하지 못하면 선주에게 받은 선수금을 은행에서 대신 물어주는 지급보증을 뜻한다. 이렇게 되면 은행은 선수금과 같은 금액의 손실을 떠안게 된다.
이에 따라 이경섭은 행장은 조선사에 대한 대출을 줄여 농협은행이 부실 대기업의 덫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경섭 행장은 5월 초 인터뷰에서 “농협은행은 앞으로 조선사에 신규 자금지원을 많이 하지 않을 것”이고 밝혔다.
김용환 NH농협금융지주 회장도 비슷한 시기에 농협은행의 여신 담당 부서들을 찾아 조선사 여신의 규모를 줄여야 한다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뒤 농협은행은 연말까지 현대중공업과 계열 조선사(현대삼호중공업, 현대미포조선)에 내준 선수금환급보증 한도 5조 원을 3조 원으로 줄이기로 결정했다. 삼성중공업에 대해서도 선수금환급보증 한도를 3조 원에서 2조 원으로 축소한다.
그러나 금융당국에서 조선사에 대한 여신한도를 줄이지 말 것을 강력하게 주문하면서 이 행장이 이런 의지를 계속 지켜나갈 수 있을지 미지수가 된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농협은행은 특수은행으로서 시중은행보다 정부의 입김을 강하게 받는다”며 “금감원이 조선사들에 대한 금융지원을 계속해 달라고 당부하는 상황에서 조선·해운사에 대한 신규 거래를 자제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농협은행은 대우조선해양의 여신등급을 ‘정상’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이도 농협은행이 정부와 보조를 맞출 수밖에 없는 농협은행의 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은 대우조선해양 여신등급을 ‘요주의’로 내렸다.
이에 대해 농협은행 관계자는 “이 행장은 농협은행에 출자한 농민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취약업종에 대한 신규 대출과 여신을 자제하겠다고 말한 것”이라며 “조선사에 내준 여신을 빠르게 회수하거나 신규 거래를 아예 하지 않겠다는 뜻은 처음부터 아니었다”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