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
“정작 책임져야 할 사람은 징계대상에서 빠지고 현장에서 죽도록 일한 사람들만 중징계 대상이 됐다.”
감사원이 14일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예방 및 대응실태’ 감사결과를 접한 한 보건복지부 공무원의 푸념이다.
감사원은 이날 양병국 전 질병관리본부장에 대해 해임, 다른 질병관리본부 관련자 7명에게 각각 강등과 정직, 복지부 관련자 1명에 대해 정직 처분을 요구하는 등 모두 9명을 중징계 대상자로 발표했다.
하지만 메르스 사태 당시 주무장관이자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장을 맡았던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정작 징계대상자 명단에서 빠졌다.
감사원은 “실무자들이 장관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해 문 전 장관에게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실상 문 전 장관에게 ‘면죄부’를 준 셈이다.
야당과 시민단체들은 감사원의 이런 결정에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김춘진 국회 보건복지위원장 등 더불어민주당 의원 8명은 15일 공동으로 성명을 내어 “질병관리본부장이 해임이고 국장과 직원들이 정직 등 중징계라면 최고 책임자인 장관은 파면이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감사원은 ‘장관에게 보고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는 이유로 문 전 장관을 징계대상에서 제외시켰다”며 “직원의 잘못으로 장관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인데 말도 안 되는 이유”라고 성토했다.
김 위원장은 “메르스에 따른 국민의 고통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사람이 어떻게 500조 원의 국민 노후자금을 책임질 수 있겠는가”라며 “문 전 장관은 낯이 있다면 고통당한 국민들과 전 복지부 직원들에게 미안한 마음에서라도 지금 당장 국민연금 이사장직에서 자진 사퇴하는 게 인간의 도리”라고 비판했다.
시사평론가 김성완씨는 감사원의 감사결과를 두고 “전쟁에서 졌는데 죽도록 싸운 병사들만 처형하는 꼴”이라며 “적의 공격을 받고 허둥지둥대다 제대로 지시도 내리지 못한 장군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은 채 오히려 잘했다고 국민연금 이사장으로 금의환향했으니 이게 말이 되느냐”고 꼬집었다.
문 전 장관에 대해 감사원은 잘못을 물을 수 없다고 했지만 문 전 장관은 메르스 사태를 확산시킨 장본인 가운데 한명으로 꼽힌다.
문 전 장관은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지 6일이 지나서야 대통령에게 첫 대면보고를 했다. 메르스 확산을 막기 위해 병원명을 공개해야 한다는 여론이 빗발쳤을 때 “병원이 피해를 입기 때문에 공개하지 않았다”는 황당한 이유를 댔다.
메르스 사태 책임을 지고 지난해 8월 27일 장관직에서 물러날 때는 “철저한 방역망을 구축해 사태해결에 터닝포인트를 마련한 것은 큰 다행”이라는 자화자찬성 발언을 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이번 감사원의 발표에도 수확은 있었다.
메르스 사태 당시 국회와 언론이 방역당국에 제기했던 각종 부실 대응 의혹이 감사결과 모두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질병관리본부는 최초 환자가 병실 밖에서 여러 사람과 접촉한 사실을 폐쇄회로(CC)TV 등을 통해 확인하고도 메르스의 전염력을 과소 평가해 최초 환자의 같은 병실의 접촉자만 격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때문에 최초 환자와 같은 병동에 있었던 14번째 환자 등이 관리 대상에서 누락된 채 삼성서울병원 등으로 이동해 대규모 3차 감염자가 발생하게 됐다.
감사원은 당시 역학조사에 비협조적이었던 삼성서울병원에도 적정한 제재조치를 내려야 한다고 밝혔다.
삼성서울병원은 최초 환자가 평택성모병원을 경유한 사실을 알면서도 병원 의료진과 이를 공유하지 않았다. 그 결과 병원 의료진은 평택성모병원을 다녀온 14번째 환자를 응급실에서 진료했고 이는 대규모 감염자 발생으로 이어졌다.[비즈니스포스트 김재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