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롯데그룹 지배구조에서 베일에 싸여있던 ‘L투자회사’의 정체를 공개했지만 절반의 해명에 그쳤다.

신 회장은 L투자회사의 지분구조 등 핵심적 사안에 대해서 입을 다물었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일본에서 L투자회사의 경영권을 되찾기 위해 법적 대응에 나서면서 롯데그룹의 경영권 분쟁은 여전히 승자를 점치기 어려운 상황이다.

◆ “L투자회사는 일본 롯데그룹의 호텔롯데 투자창구‘

신 회장은 11일 대국민 사과를 발표한 기자회견에서 “L투자회사는 호텔롯데 설립에 참여한 주주로 일본 롯데그룹 계열사들이 한국에 투자하기 위한 투자창구 역할을 맡았다”고 밝혔다.

신 회장에 따르면 신격호 총괄회장은 1972년 호텔롯데를 설립할 때 약 10억 달러를 투자했다. 신 총괄회장은 이 투자자금을 대기 위해 일본 롯데제과를 포함한 여러 일본 롯데그룹 계열사의 공동투자를 이끌어냈다.

신 회장은 “호텔롯데에 투자했던 일본 롯데그룹 계열사들은 2000년대 들어 사업부문과 투자부문을 분할했다”며 “이때 투자부문에 남은 법인들이 현재의 L투자회사”라고 밝혔다.

신 회장의 말을 감안하면 현재의 L투자회사 12곳은 일본 롯데그룹의 지주회사 전환 과정에서 이름을 바꾼 기존 계열사들인 셈이다.

일본 롯데그룹의 지주회사 전환계획인 ‘플랜두2008’에 따르면 L투자회사들은 본래 부동산 신탁사 역할을 담당했다. L투자회사들은 2008년 일본 롯데그룹의 지주회사 전환작업이 진행되면서 증자와 합병을 거쳐 대부분 사업부문과 투자부문 자회사들로 바뀐 것으로 알려졌다.

L투자회사는 한국 롯데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호텔롯데의 대주주다. L투자회사 가운데 L3투자회사를 제외한 11곳이 호텔롯데의 지분 72.65%를 나눠 보유하고 있다. 이 때문에 L투자회사를 장악한 쪽이 한국 롯데그룹의 경영권도 사실상 잡게 된다.

신 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L투자회사의 지분구조에 대해서 밝히지 않았다. 신 회장은 지난달 31일 L투자회자 12곳의 대표이사로 취임한 경위에 대해서도 대답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은 롯데그룹에 L투자회사 등의 지분구조와 실질적 소유주를 밝히라는 압박을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국세청은 최근 일본 국세청에 롯데그룹 오너 일가의 한국-일본 거주 현황과 일본 내 세금 신고납부 내역 등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신 총괄회장 등이 일본에 낸 세금 상세내역을 확보하면 L투자회사의 지분구조를 알아낼 가능성이 높아진다. 롯데그룹 오너 일가가 L투자회사에서 얻은 배당소득 규모를 파악해 지분율을 추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롯데그룹에 일본 롯데홀딩스와 L투자회사 등 대주주들의 연결재무제표를 제출할 것을 통보했다.

공정거래위원회도 롯데그룹에 L투자회사를 포함한 전체 해외계열사의 주주와 주식보유 현황자료를 20일까지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 신동빈 신동주, L투자회사 경영권 놓고 법정 공방 가능성

롯데그룹 총수일가는 L투자회사의 대표이사 자리를 놓고 일본에서 법적분쟁에 들어갈 조짐을 보이고 있다.

11일 일본 법무성에 따르면 10일 L투자회사 12곳 가운데 L4투자회사, L5투자회사, L6투자회사를 제외한 9곳에 대해 이의신청 성격의 신규 변경등기 신청이 들어왔다.

변경등기 신청이 접수된 L투자회사 9곳은 지난달 30일까지 신격호 총괄회장이 단독대표이사로 있었다. 신 회장은 7월31일부터 신 총괄회장과 함께 이 회사들의 공동대표이사로 등재됐다.

이번 변경등기 신청은 신 총괄회장과 신 회장이 공동대표이사로 등기된 L투자회사들에 대해 신 총괄회장을 단독 대표이사로 복권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 회장이 단독대표이사를 맡은 L투자회사 3곳은 변경등기 신청이 접수되지 않았다. 이 회사들은 쓰쿠다 다카유키 일본 롯데홀딩스 사장의 대표이사 체제로 운영됐다가 7월31일 신 회장으로 대표이사가 바뀌었다.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은 신 총괄회장의 위임을 받아 이번 변경등기 신청을 진행한 것으로 추측된다. 신 전 부회장은 지난 8일 일본으로 출국해 롯데홀딩스 주주총회를 준비하고 있다.

신 전 부회장은 출국할 때 “신 총괄회장은 신 회장이 L투자회사 대표이사에 멋대로 취임해 화를 냈다”며 “신 회장을 상대로 일본에서 법적대응을 하겠다”고 밝혔다.

일본 법무성은 등기변경 신청서에 대표이사의 직인과 위임장이 첨부되어야 한다고 규정했다. 신 회장이 신 총괄회장의 동의 없이 직인과 위임장을 냈을 경우 문서위조죄에 해당된다. 신 전 부회장은 이 점에 주목해 법적대응에 나서려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 법무성은 변경등기 신청이 들어온 L투자회사 9곳에 대해 등기사건을 처리하고 있다. 법무성은 15일 안에 등기변경을 결정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 법무성이 L투자회사에 대한 변경등기 신청을 받아들일 경우 롯데그룹의 경영권 분쟁은 장기간의 법정공방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비즈니스포스트 이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