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지주들이 북한사업과 관련해 한국과 미국 정부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대훈 NH농협은행장은 11월 중순 미국 뉴욕을 방문해 감독당국인 연방준비제도(Fed)와 뉴욕 금융감독청(DFS)를 만난다.
▲ KB국민은행(위부터)과 우리은행, 신한은행, KEB하나은행, NH농협은행의 기업로고. |
준법감시 인력 등 시스템과 관련한 개선조치를 설명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기는 하다.
그러나 최근 미국 재무부가 한국 주요 시중은행들에게 대북 금융 제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진행 상황을 점검했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이에 대응하기 위한 일정도 포함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김선동 자유한국당 의원은 최근 KDB산업은행의 내부 보고서를 인용해 9월20일 산업은행과 NH농협 관계자가 참석한 컨퍼런스콜(전화) 회의에서 미국 재무부가 대북 금융 제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공개했다.
이와 관련해 NH농협은행은 금강산지점 재개와 관련해 국제연합(UN)과 미국의 대북 제재를 준수하면서 추진하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다른 국내 주요 금융지주들도 그동안 추진하던 대북 사업과 관련해 둘다리도 두드리는 식으로 관련 규정을 면밀히 확인하고 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북한과 관련해 국내 은행들의 사소한 움직임이라도 제재 규정을 어긴 것으로 해석하고 압박하게 되면 벌금 부과 등 만만치 않은 타격을 입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은행 관계자는 "북한과 관련해 정치적 분위기가 발전적으로 전개된다고 하더라도 분위기만 보고 섣불리 움직였다가 의도하지 않게 제재 규정을 어기면 큰 낭패를 볼 수도 있으니 정확히 확인하려고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2014년 프랑스 BNP파리바은행은 미국의 제재 대상인 이란과 1900억 달러 규모의 거래를 했다는 이유로 벌금 90억 달러를 물었다. 한국 돈으로 10조 원 가까이에 이른다. HSBC 역시 동일한 이유로 19억2천만 달러(한국 돈 2조1754억 원)의 벌금을 냈다.
NH농협은행은 지난해 말 뉴욕 금융감독청(DFS)으로부터 자금세탁 방지 시스템이 미흡하다는 이유로 과태료를 받았으며 올해 상반기에 신한, 하나, 국민 등 주요 은행들의 미국 지점들도 미국 금융당국으로부터 강도 높은 정기 검사를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자칫 국내 은행들이 미국 금융당국의 밉보이게 되면 상황이 더욱 악화될 수도 있는 셈이다.
그동안 은행장들과 주요 금융지주 회장들은 북한 관련 전담팀을 신설하는 등 북한 연구 및 관련 사업을 준비해 왔다.
문재인 정부가 대북사업에 속도를 높이자 국내 금융회사들도 여기에 발걸음을 맞추고자 관련 사업 준비와 홍보에 주력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 금융회사들이 단순히 북한 관련 연구만 아니라 구체적 상품이나 지점 개설 등 적극적 사업도 고려하고 있었던 만큼 미국 정부의 대북 제재 조치에 더욱 촉각을 기울일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KB국민은행은 최근 ‘KB북녘가족애(愛)신탁’ 상품을 내놓고 이산가족의 만남을 지원하고 남북 교류에 힘을 보태기로 했다. 이 상품은 북한에 가족을 두고 온 고객들이 은행에 자금을 미리 맡겨두면 사후 북한 가족이 상속받을 수 있도록 한다.
NH농협은행과 우리은행은 북한에 지점을 개설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두 은행이 각각 금강산지점과 개성공단지점을 운영했던 만큼 이를 재가동하겠다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국내 금융회사들이 남북 경제협력에 힘을 쏟는 정부와 발걸음을 같이 하고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이례적 대응을 맞닥뜨리게 됐다”며 “두 정부 사이에서 곤란한 처지”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윤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