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금융지주에 가시 돋친 발언을 서슴없이 쏟아내던 최 원장이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돼 퇴장하게 됐지만 하필 그 불미스러운 일의 배경이 하나금융지주이기 때문이다.
최 원장이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퇴장이라는 카드를 건내며 금감원에 설욕의 기회를 마련해 준 셈이라는 말도 나온다.
금감원은 최근 몇 개월 동안 '관치 우려'라는 여론을 의식하며 조심스럽게 하나금융지주에 검사를 진행했지만 최 원장의 퇴진이라는 사건을 계기로 고강도 검사를 펼칠 수 있는 명분이 생겼다.
특히 최 원장이 자리에 있었다면 금감원이 하나금융지주의 채용비리를 밝혀내는 것이 곧 최 원장의 혐의 입증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거리낌이 있었을 테지만 이제 금감원은 그 부분에서 자유롭게 됐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이날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한 자리에서 “최 원장이 사임한 기본적 뜻은 제기된 사안을 면밀하게 조사하는 과정에서 본인이 걸림돌이 되지 않아야겠다는 의미”라며 “금감원이 더욱 공정하고 철저하게 조사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만큼 문제가 제기된 2013년을 중심으로 하나은행 채용 전반을 빈틈없이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 원장도 전날 발표문에서 금감원 직원들에게 채용비리 일소에 계속 힘써줄 것을 당부했다.
하나금융지주와 KEB하나은행에 이날부터 금감원의 특별검사가 시작됐다. 검찰의 2차 압수수색이 있은 지 6일 만이다. 금감원은 검사기간을 제한하지 않기로 했다.
김 회장은 조만간 열릴 주주총회에서 두 번째 연임을 확정해야 하는데 하나금융지주와 금융당국의 대결이라는 구도가 부담스러울 것으로 보인다.
민간금융회사 최고경영자는 금융감독기관과 우호적 관계를 만들어 영업환경을 정비해야 한다고 요구받는다. 그러나 김 회장은 회장 선임절차 과정에서 갈등의 골을 깊게 만들었다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최 원장의 사임을 놓고 ‘민간금융회사와 싸움에서 패배한 금융당국’으로 보는 시선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하나금융지주에서 최 원장을 밀어내기 위해 정보를 흘린 것 아니냐는 말도 나돌고 있다.
하나금융지주 노동조합은 하나금융지주가 금감원과 진흙탕 싸움판을 만든 것이라며 “이미 1월 초부터 최 원장이 채용비리 의혹으로 옷을 벗을 수 있다는 말이 나돌았다”고 주장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도 “최 원장을 둘러싼 의혹은 KEB하나은행 내부가 아니면 확인하기 어려운 것들”이라며 “KEB하나은행 경영진들도 이런 제보들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일반적 추론이 나온다”고 말하기도 했다.
만약 이런 점들이 조금이라도 사실로 드러난다면 김 회장이 안게 될 부담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가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 속에서 민감한 이슈인 채용비리를 근절의 대상으로 삼은 점도 이번 사태에 심각성을 더할 수 있어 김 회장의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다. [비즈니스포스트 김현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