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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
“마취도 안하고 수술하는 심정이다.”
김승연 회장은 15년 전 정유사업에서 손을 떼면서 이렇게 아쉬워했다.
한화그룹은 이번에 삼성토탈을 인수하면 15년 만에 다시 정유사업에 진출하게 된다. 김 회장이 15년 전의 아쉬움을 이번에 털어낼 수 있을까?
한화그룹은 1970년 정유사업에 발을 들였다. 미국 유니언오일과 합작해 경인에너지를 설립한 뒤 한화에너지로 이름을 변경했다. 당시 한화에너지는 전국에 주유소 1100여 개를 운영해 왔다.
하지만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한화그룹은 구조조정에 나서 1999년 당시 현대정유에 한화그룹의 정유사업을 넘겼다. 현대정유가 지금의 현대오일뱅크다. 현대오일뱅크는 현대중공업그룹으로 넘어가 국내 정유4사 가운데 유일하게 9분기 연속 흑자를 이어가고 있다.
한화그룹은 삼성종합화학 지분 57.6%를 1조600억 원에 인수하기로 하면서 자회사인 삼성토탈도 넘겨받기로 했다.
한화그룹은 앞으로 한화에너지를 중간 지주회사 역할로 세워 에너지와 정유사업을 총괄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삼성토탈은 삼성종합화학과 프랑스 정유업체 토탈이 5대5로 합작한 회사다. 알뜰주유소 등으로 공급권을 확보하면서 생산량을 늘리고 있다.
삼성토탈은 대산공장의 콘덴세이트 분해설비(CFU)를 통해 경유를 얻고 있다. 삼성토탈의 휘발유와 경유 생산량은 각각 50만 톤, 100만 톤이고 항공유 생산량은 200만 톤에 이른다.
삼성토탈은 특히 국내에서 부생연료유를 14만 톤 가량을 독점적으로 생산하고 있다. 정부가 지난 7월 부생연료유 세율을 등유와 같은 수준으로 낮추면서 가격이 떨어져 탄력적 공급이 가능해졌다.
한화그룹은 삼성토탈을 인수하면 석유화학 제품군도 확장할 수 있게 된다. 삼성토탈은 폴리에틸렌, 폴리프로필렌, 스티렌모노머, 파라자일렌 등 다양한 석유화학 제품을 만들고 있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삼성토탈을 인수하게 되면 석유화학 분야에서 글로벌 수준의 규모와 경쟁력을 확보하게 된다”며 “기존 주력 석유화학제품의 경쟁력과 수익성 악화에 따른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시장상황은 그렇게 녹록치 않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60달러 선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등 사업전망은 매우 불투명하다. 이 때문에 연속 흑자행진을 달리던 현대오일뱅크도 4분기에 적자로 돌아설 수 있다는 어두운 전망이 나온다.
국내 1위 정유업체인 SK이노베이션과 GS칼텍스도 3분기에 정유부문에서만 각각 4060억 원, 4015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에쓰오일도 3분기 1867억 원 영업손실을 내며 지난해 2분기 이후 6분기 연속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삼성토탈은 지난해 매출 7조8573억 원과 영업이익 5506억 원을 올렸다. 삼성토탈은 정유와 석유화학 매출 비중이 각각 23%, 47%이다.
삼성토탈은 정유부문 매출이 크지 않고 원유가 아닌 부산물을 활용하는 사업을 추진해 다른 정유업체와 달리 적자 수렁에 빠지지 않았다. 삼성토탈을 품에 안고 다시 정유업에 진출할 한화그룹으로서 다행스런 대목이다.
그동안 국내 정유4사는 삼성토탈을 경계했다. 삼성토탈은 그동안 정유4사의 반대로 석유협회 가입도 하지 못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유업황이 침체된 상황에서 정유4사는 삼성토탈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한화그룹이 앞으로 업계의 이해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갈 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계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