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엔숍 창시자, 일본 다이소 회장의 괴짜 경영  
▲ 야노 히로타케 일본 다이소산업 회장

“21세기에 이렇게 하면 된다, 저렇게 하면 된다는 것이 없다. 판매자가 머리를 굴려 계획을 짜고 예상을 해도 그대로 되는 일은 거의 없다. 우리는 오직 손님의 눈치를 보며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할 뿐이다.”

일본 주요 도시에 가면 어디에서나 쉽게 ‘100엔숍’을 만날 수 있다. 창업자 야노 히로다케 일본 다이소산업 회장은 일본 유통업계에서 ‘괴짜’ 경영인으로 통한다.

그는 1987년 100엔숍을 창업해 일본에 2680개 매장을 비롯해 아시아는 물론 북미, 중동, 아프리카 등에 3천여 곳의 매장을 운영한다.

다이소산업은 일본 100엔숍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판매 아이템도 8만여 개가 넘는다.

야노 회장은 일본의 장기불황을 뚫고 100엔짜리 물건을 팔아 3천억 엔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성공신화를 써냈다.

야노 회장의 경영철학이나 전략은 경영학 교재나 흔한 자기계발서 같은 데서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숱한 경제이론이나 성공지침들을 뒤집기 일쑤다.

◆ ‘3년 안에 망한다’던 일본 다이소의 30년 성공비결

일본에서 2012년 ‘야노 어록’이 화제를 모았다. 한 네티즌이 야노 회장의 발언을 묶어 개인 블로그에 올렸다.

야노 어록은 트위터 등 SNS를 통해 퍼져 일본 열도를 들끓게 만들었다. 그의 발언은 성공한 기업인의 말이라고 믿기지 않았다.

경영전략을 묻는 질문에 야노 회장은 이렇게 말한다. “경영계획, 전략, 그런 거 없다. 목표 없다.”

그는 다이소의 비전에 대해서 “6년 전까지 다이소는 망할 거다라는 확신이 있었다”고 했다.

고객을 위한 전략에 대해서 “손님은 뭘 잘 모른다”거나 “해 온 일들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다이소가 망할 때가 되어봐야 안다”고 대답하기도 했다.

야노 회장은 “타사의 회장에게 다이소의 상품을 보여줬더니 이런 거 만들면 3년 만에 망한다고 했다”는 ‘자폭’ 발언도 했다.

그는 자신의 삶을 놓고도 “인간에게 앞을 내다보는 능력 따윈 없다”거나 “산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즐거운 일이 아니다”라는 식으로 부정적 발언을 가감없이 했다.

그의 어록에 “좋은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사는 것에 감사하는 수밖에 없지”, “나는 별 수없는 아저씨일 뿐이다”, “나는 열등하다. 어쩔 수가 없다”는 등 성공한 기업인의 말이라고 믿기 어려운 발언들이 이어졌다.

이런 ‘삐딱한’ 발언은 ‘이렇게 해야 성공한다’ 류의 자기계발지침에 짓눌려온 일본인들에게 오히려 위로의 메시지가 됐다.

“뭔가 마음이 편안해졌다”거나 “글을 보니 어깨에 힘이 빠져서 좋다”는 등의 트윗이 뒤따르는 등 큰 반향을 일으켰다.

야노 회장이 직원들을 독려하는 방식도 상식을 뛰어넘는다. 그는 직원들에게 “다이소 같은 기업은 3년 혹은 5년이면 망할 테니 그때까지 열심히 100엔짜리 물건을 팔자”고 말했다.

그는 경영계획이나 목표 같은 것을 세우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회의도 잘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차라리 그 시간에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하겠다는 것이 그의 경영방침이다.

야노 회장은 “소비자 취향과 요구에 따라 언제든지 변화할 수 있는 준비태세를 갖추는 것이 유통업의 기본”이라며 “스스로 환경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기업, 진화하지 않는 기업은 살아남을 수 없다”고 강조한다.

야노 회장이 100엔숍을 키운 비결은 ‘빨리빨리’ 달려가 이득이 안 남더라도 100엔짜리 물건을 사서 100엔에 판다는 것뿐이다.

  100엔숍 창시자, 일본 다이소 회장의 괴짜 경영  
▲ 야노 히로타케 일본 다이소산업 회장

◆ ‘100엔숍’의 창시자 야노 히로다케는 누구


야노 회장은 1943년생으로 일본 추오대학을 졸업한 공학도였다. 그는 직장생활을 시작한 뒤 회사를 9번이나 옮기며 밑바닥 생활을 전전했다. 세일즈부터 폐지 판매, 운전기사, 볼링장 아르바이트, 양식업까지 안 해본 일이 거의 없다.

야노 회장은 장인에게 물려받은 회사가 망하면서 빚더미에 오르자 아내와 함께 트럭을 타고 돌아다니며 저가의 물건들을 팔러 다녔다. 당시 나이 29세 때였다. 부부는 하루 일과가 끝나면 다음날 팔 물건에 가격표를 붙이곤 했다.

아내가 둘째 아이를 임심하면서 가격표 붙일 시간이 부족해지자 그는 모든 물건값을 100엔으로 정해버렸다. 100엔숍의 비즈니스모델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그 뒤 물건은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고 빚도 모두 갚았다. 야노 회장은 ‘야노 상회’라는 버젓한 점포도 낼 수 있게 됐다.

야노 회장은 어느 날 매장을 찾은 한 손님이 “싸구려라 오래 못쓴다”고 속삭이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이 때부터 그는 이익률을 최대한 낮추고 품질을 높이기로 전략을 바꿨다.

야노 회장은 70엔에 물건을 들여와 100엔에 파는 대신 고객이 만족할 수 있는 품질이면 무조건 100엔에 맞춰 팔기로 했다. 구매가격의 한계를 없애 때로 100엔에 사와 100엔에 팔기도 했다.

야노 회장의 가격결정 기준은 '원가'가 아닌 '고객'이었다.

그는 초년 시절 수차례에 걸쳐 실패를 맛봤기 때문인지 “회사는 언젠가 반드시 망한다”고 믿는다. 대신 망하기 전까지 살아남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 ‘임기응변만이 살 길’이라고 강조한다.

야노 회장은 성공 비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능력이나 운이 있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않고 다른 길을 택했을 것이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노력했을 따름이다.”

품질에 대한 그의 고집은 대단한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거래처에서 가져온 물건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상대방이 보는 앞에서 집어던지기 일쑤다.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해 직원들에게 친절교육도 혹독하게 시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00엔짜리 물건도 고객 요구라면 사후서비스뿐 아니라 리콜을 하는 등 서비스 질을 높여야 한다고 본다.

그는 “단골만 믿다간 낭패를 당할 수 있다”며 “단골은 정말 중요한 알짜 고객이지만 항상 새 손님을 끌어와야 비즈니스는 커진다”고 말한다.

  100엔숍 창시자, 일본 다이소 회장의 괴짜 경영  
▲ 일본의 다이소 매장

◆ 1엔도 남기기 어려워진 100엔숍, 어떻게 살아남을까


야노 회장은 100엔숍을 차린 이후 20년 이상 승승장구해 왔지만 2000년대 들어 일본 유통업계 안팎의 상황이 달라지면서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 하고 있다.

그는 2004년 도쿄에 연 1400여 평의 매장을 고급 인테리어로 단장했다. 100엔숍의 저가 이미지를 벗어나려 한 것이다. 하지만 실내가 너무 말끔해지자 100엔숍 느낌이 들지 않게 되면서 오히려 손님이 줄었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야노 회장은 “고객들은 100엔짜리도 백화점처럼 깨끗한 곳에서 사고 싶어지는 건 당연한 만큼 다시 손님들이 몰려올 것”이라고 자신만만했다.

야노 회장은 세계시장에도 진출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 시장뿐 아니라 아랍에미리트연합, 프랑스 등에 100엔숍을 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양적 완화 정책에 따른 엔화가치 약세도 야노 회장에게 시련을 안겨주고 있다.

엔화 가치가 높을 때 중국이나 동남아에서 질 좋고 값싼 제품을 들여올 수 있었지만 엔화가치가 떨어지면서 1엔의 이윤도 남기기 어려운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야노 회장은 일단 포장단위나 물건 크기를 줄이는 식으로 엔저 위기에 맞서고 있다. 또 해외생산 비중을 줄이고 일본산 제품도 늘려가고 있다.

야노 회장은 70대에도 ‘전투’를 멈추지 않는다. 그는 “20세기는 물건을 만들어 내놓으면 저절로 팔렸던 시대였다면 지금은 필사적으로 싸우지 않으면 고객을 끌 수가 없는 시대”라고 말한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