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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완 스무디킹 대표는 한국에 스무디킹을 들여온지 9년만에 미국 본사를 인수했다. <뉴시스> |
외국에서 유명 브랜드만 들여오면 성공의 보증수표라고 여기던 때는 지났다. 하디스, 코코스, 스카이락, 피자인, 카후나빌 등등. 한 때 크게 주목을 받았지만 이제 주변에서 찾아볼 수 없는 브랜드들이다.
대기업이 유명 브랜드를 들여와 막대한 자금을 쏟아넣어도 마찬가지다.
GS리테일은 지난 3월 미스터도넛 영업권을 포기했다. 미스터도넛은 세계에 1만 개 이상의 매장을 보유하고 있는 글로벌 도넛 체인 가운데 하나다.
GS리테일은 2007년 미스터도넛을 국내에 들여와 한 때 100곳 이상의 점포를 운영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미스터도넛의 운영에서 손을 뗐다.
이처럼 대기업도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시장에서 개인이 뛰어들어 성공한 사례가 적지 않다.
대만에서 공차를 들여온 김여진 공차코리아 대표는 1호점 개설 2년 만에 200개가 넘는 매장을 열 정도로 성공을 거뒀다.
또 스무디킹의 해외 첫 라이센스를 받아 국내에서 운영하다 본사까지 인수한 김성완(43) 스무디킹 대표도 성공사례로 꼽힌다. 대만에서 공차와 1위 다툼을 하는 이지웨이를 들여온 이진수 대표도 빼놓을 수 없다.
시간을 좀더 거슬러 올라가면 현재 국내 피자시장에서 1, 2위를 하고 있는 미스터피자와 피자헛의 경우도 국내에 브랜드를 처음 들여온 것은 개인이었다.
이들은 고객의 마음을 읽은 눈과 도전정신으로 대기업도 버텨내지 못하는 시장에서 브랜드를 들여와 성공을 거뒀다.
◆ 스무디킹, 9년 만에 본사를 인수하다
스무디킹은 지난 2일 브랜드 리뉴얼을 기념해 서울어린이대공원 와팝홀에서 ‘가끔은 그래도 괜찮아’ 토크콘서트를 열었다. 이번 콘서트는 청춘들의 풀리지 않는 고민을 들어주는 컨셉트로 진행됐다.
스무디킹은 “지친 청춘들에게 휴식의 시간과 자기애를 전해주기 위해 토크콘서트를 기획했다”며 “앞으로도 고객들과 교감할 수 있는 다양한 행사를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완 스무디킹 대표는 올해 새로운 기업 브랜드 이미지(BI)를 선보였다. 김 대표는 지난 4월 “스무디킹 미국 본사 인수 후 1년6월 동안 진행해 온 사업확장 구상을 마쳤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한국기업 스무디킹으로 글로벌 공략에 나선다는 비전을 발표했다.
스무디킹은 1973년 미국에서 스티브 쿠너 창업자가 만든 건강음료 브랜드다. 김 대표는 2003년 스무디킹을 한국에 소개했다.
김 대표는 1993년 미국 보스턴대학교 유학시절 스무디킹을 처음 접했다. 그는 건강을 위해 매일 비타민과 무기질을 넣은 스무디를 마시다 건강에 관심이 많은 한국에서 이 사업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김 대표는 2002년 쿠너 창업자를 찾아가 판권을 사들였다. 당시 국내 대기업 두 곳과 치열하게 경쟁했다. 김 대표는 자금력 대신 스무디킹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는데 주력했다.
김 대표는 쿠너 창업자에게 “난 스무디를 스무 살부터 매일 한 잔 씩 마셨고 방금도 한 잔 마시고 왔다”고 강조했다. 쿠너는 결국 대기업 대신 김 대표의 열정을 선택했다. 김 대표 덕분에 한국이 스무디킹의 첫 해외진출 국가가 됐다.
김 대표는 초반 스무디라는 낯선 음료를 한국시장에 알리는 데 고전했다. 그는 그러나 스무디를 한국화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그는 한국 스무디킹의 독자적 메뉴를 개발하고 1억 원 규모의 시음행사를 펼쳤다. 2년 동안 적자를 냈지만 2005년부터 2007년까지 명동1호점은 전 세계 매장 가운데 매출 1위에 올랐다.
김 대표는 스무디킹코리아가 한국에 진출한 뒤 연평균 64%의 급성장을 이뤘다. 이런 성장을 발판으로 2012년 미국 본사 지분 100%를 5천만 달러에 인수했다.
김 대표의 스무디에 대한 열정과 한국시장의 성공을 눈여겨 본 쿠너가 김 대표에게 “본사를 맡아 중국과 동남아로 사업을 확장해 달라”는 제안했던 것이다. 김 대표는 이제 스무디킹 글로벌 총괄대표로 전 세계 매장 700개를 이끌고 있다.
국내 음료시장에 김 대표처럼 해외 브랜드를 개인이 들여와 성공을 거둔 사례가 몇 있다. 스타벅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글로벌 커피브랜드인 커피빈도 2001년 박상배 대표가 들여왔다. 이진수 대표는 지난해 대만에서 공차에 버금가는 버블티 브랜드 이지웨이를 국내에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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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우현 MPK 사장 <뉴시스> |
◆ 국내 피자시장을 장악한 미스터피자와 피자헛
많은 사람들이 국내 브랜드로 알고 있는 미스터피자는 2010년 일본 본사 상표권까지 정우현 미스터피자 회장이 확보하면서 한국브랜드가 됐다.
정우현 미스터피자 회장은 80년대 섬유도매업을 하다가 외식업 진출을 시도했다. 미국과 유럽, 일본을 돌아다니며 외식사업을 공부하다 1989년 호소카와 요시키 미스터피자 창업주를 만났다.
정 회장은 호소카와 창업주를 만나기 전 처음으로 피자를 맛본 뒤 유행을 타지 않고 영원히 살아남을 수 있는 아이템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정 회장은 “이 보물을 한국에 가져가서 성공시켜야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정 회장은 호소카와 창업주를 처음 만나고 나서 출국할 때까지 3일 동안 그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이 만남에서 미스터피자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직감했다.
정 회장은 1990년 이대1호점을 시작으로 국내에만 400개가 넘는 매장을 만들었다. 2000년 진출한 중국에서도 40개가 넘는 매장을 냈다.
미스터피자는 1996년 일본을 제외한 세계 판권을 사들여 로열티를 지불하지 않게 됐다. 정 회장의 미스터피자가 승승장구 하는 동안 일본 본사는 쇠락의 길을 걸었다.
정 회장은 창업주가 사업을 완전히 접으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일본 상표권 말소소송을 하고 새로운 상표권 등록을 신청해 마침내 일본 상표권까지 얻어냈다.
정 회장은 일본 상표권 등록 후 “순수 토종 브랜드로 세계에 나설 수 있어 기쁘다”며 “한국식 피자로 전세계에서 로열티를 벌어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미스터피자에 1위 자리를 내주기는 했지만 한 때 국내 최고의 브랜드로 군림했던 피자헛도 시작은 개인이었다. 피자헛은 본사가 국내판권을 다시 사들여 직접 관리하면서부터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성신제 전 피자헛 대표는 원래 미국 피자헛에 주방용품을 수출하는 무역상이었다. 성 전 대표는 1984년 피자헛이 대기업과 손잡고 한국시장 진출을 타진하자 사장을 직접 만나 판권을 따냈다.
성 전 대표는 “나는 팔을 걷어붙이고 직접 주방에 들어가겠다”며 “매장을 매일 둘러보고 재벌 사장들이 할 수 없는 걸 하겠다”면서 담판을 지었다.
성 전 대표는 그 자리에서 계약서를 작성했고 1985년 이태원에 첫 피자헛 매장을 냈다. 제대로 된 피자전문점이 없는 국내시장에서 피자헛은 고급화전략을 취했고 이런 전략은 통했다. 1993년 피자헛 가맹점이 50개를 넘어서는 등 승승장구했다.
그러자 피자헛 본사가 사업권을 회수했다. 피자헛 본사는 1984년 계약에 문제가 있다며 성 전 대표에게 지분을 넘길 것을 요구했다. 결국 소송까지 갔지만 성 전 대표는 지분을 모두 본사에 넘겨줘야 했다.
피자헛은 그뒤 도미노피자와 미스터피자 등 다른 브랜드와 경쟁에서 밀리기 시작했다. 브랜드가 많이 약화하면서 독보적 지위를 잃고 평범한 피자체인의 하나로 전락하고 말았다.
피자헛의 사례는 열정과 애정을 가진 개인보다 자본을 갖춘 대형 프랜차이즈 본사가 꼭 낫지는 않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