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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첸 블랙베리 CEO <뉴시스> |
“우리는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지만 아직 죽지 않았다.”
존 첸 블랙베리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5월 IT전문매체 리코드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한 코드 컨퍼런스에 참석해 이렇게 말했다. 첸 CEO는 “우리가 블랙베리라는 환자를 살릴 수 있다는 데 확신한다”며 “회생가능성은 80%나 된다”고 장담했다.
하지만 첸 CEO의 말과 달리 스마트폰시장에서 블랙베리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한 때 기업용 스마트폰 시장의 절대강자로 군림했던 블랙베리는 이제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초라한 점유율을 기록중이다.
◆ 삼성과 애플에 안방 내준 블랙베리
블룸버그통신은 미국 자동차회사 포드가 직원들에게 지급했던 블랙베리 스마트폰을 애플의 아이폰으로 교체할 예정이라고 30일 보도했다. 포드는 올해 안에 직원 약 3300명에게 지급했던 블랙베리를 아이폰으로 교체한다. 나머지 6천명의 직원들도 앞으로 2년에 걸쳐 블랙베리 대신 아이폰을 받게 된다.
사라 타치오 포드 대변인은 “아이폰은 회사의 비즈니스 요구조건은 물론 직원 개인의 요구까지도 만족시키는 기기”라며 “모든 직원들이 같은 스마트폰을 쓰게 됨으로써 보안이 높아지고 정보기술 관리도 한결 단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포드의 결정은 그동안 기업용 스마트폰시장을 지배해왔던 블랙베리의 위상이 점차 추락하고 있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시장조사기관 IDC에 따르면 블랙베리의 전 세계 기업시장 점유율은 2010년 31%에서 지난해 8%대로 떨어졌다. 북미 기업시장 점유율의 경우 약 70%에서 5%로 급감했다.
블랙베리의 급격한 몰락에 미국 경제 전문지 월스트리트저널은 블랙베리를 ‘2015년 사라질 가능성이 높은 브랜드 10’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블랙베리가 추락한 까닭은 애플과 삼성전자 등 경쟁업체에 안방과 같은 기업시장을 내주고 있기 때문이다.
블랙베리를 제치고 포드의 고객이 된 애플은 지난 15일 오랜 앙숙관계에 있던 IBM과 손을 잡고 본격적으로 기업시장 공략에 나섰다. 애플은 최근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는 개인고객 시장과 달리 기업시장의 경우 아직 성장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시장조사기관 IDC에 따르면 기업용 스마트기기 시장은 연 평균 11%가 넘는 성장률을 기록하며 2013년 6140만 대에서 2017년 8800만 대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도 개인용 스마트폰시장의 포화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시장에 집중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2월 미 육군과 갤럭시노트2 7천대를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하면서 첫 실적을 거뒀다.
삼성전자는 기업시장에서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구글과 동맹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지난달 열린 구글 개발자 컨퍼런스(I/O)에서 구글은 삼성전자가 자체 개발한 기업용 모바일 보안 솔루션인 ‘녹스’를 차기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에 기본 탑재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본격적으로 기업시장을 공략할 수 있게 됐다.
◆ 첸 CEO, 블랙베리 살리기에 고군분투
첸 CEO는 지난해 11월 침몰하는 블랙베리를 살리라는 임무를 띠고 새로운 선장에 임명됐다. 그는 “기업 고객에게 블랙베리는 대체될 수 없는 제품”이라며 “앞으로 빠르고 효과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첸 CEO는 우선 블랙베리 판매확대를 위해 그동안 단점으로 지적받았던 폐쇄적 운영방식을 포기했다. 그는 블랙베리 스마트폰에서만 작동되던 블랙베리 메신저(BBM)를 애플과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운영체제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완전 개방했다. 지난 5월엔 블랙베리 운영체제를 기업시장에서 경쟁관계에 있던 IBM과 VM웨어 등에 공개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지난해 말부터 이어진 강도높은 구조조정도 계속된다. 블랙베리는 올해 3월까지 직원 정리해고와 마케팅비 절약 등으로 운영비를 30% 줄였다. 지난 9일 독일에 있는 연구개발(R&D) 연구소를 독일 자동차업체인 폭스바겐에 매각하겠다고 발표했다.
첸 CEO는 경쟁사보다 부족한 콘텐츠도 강화하고 있다. 블랙베리는 지난 16일 공식블로그를 통해 차세대 운영체제에 ‘블랙베리 어시스턴트’라는 음성인식 서비스를 탑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애플의 ‘시리’, 구글의 ‘구글나우’와 정면 대결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애플-IBM과 삼성전자-구글 연합에 맞서기 위해 독자생존 전략도 포기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블랙베리가 최근 경쟁사와 파트너십을 체결하기 위한 협상을 진행중이라고 지난 24일 보도했다.
첸 CEO는 “독자생존은 옳은 전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IT업계의 다른 회사와 보안과 계정관리에 중점을 두고 협력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