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아시아나그룹 가문의 형제간 갈등이 또다시 불거졌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의 운전기사를 경찰에 고소하면서 형제 갈등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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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삼구(왼쪽)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
이들 형제의 불화가 시작된 것은 지난 2006년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대우건설을 인수할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10년 가까이 펼쳐지고 있는 형제간 갈등의 뿌리는 무엇일까?
박삼구 회장과 박찬구 회장은 박인천 금호아시아나그룹 창업주의 3남과 4남이다. 장남인 박성용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명예회장은 지난 2005년 세상을 떠났다. 차남인 박정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경우 이에 앞서 지난 2002년 세상을 버렸다. 형제의 막내인 5남 박종구씨는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으로 재직중이다.
◆ 경찰 고소에 이어 수사 의뢰한 연유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지난 3일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의 운전기사인 부장 A씨와 보안용역 직원 B씨를 경찰에 고소하고 수사를 의뢰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이에 앞서 박삼구 회장 비서실 자료가 외부에 유출된 정황을 확인하고 자체 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그룹 회장실 보안용역 직원 B씨가 금호석유화학 부장 A씨의 사주를 받아 비서실 자료를 몰래 빼낸 정황을 파악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불법 유출된 자료가 그룹을 공격하는데 활용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따라 보안용역 직원 B씨와 이를 부추긴 금호석유화학 부장 A씨를 방실 침입 및 배임 수재 및 증재죄 등의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또 어떤 문건을 빼돌렸는지, 범행을 부추긴 최종 배후는 누구인지, 이 과정에서 금품수수 등 금전 거래가 있었는지를 밝혀달라고 경찰에 요청했다.
보안용역 직원 B씨가 그룹에 제출한 자술서에 따르면 그는 지난 2011년부터 80차례에 걸쳐 비서실에 잠입해 문서를 촬영해 빼돌렸다. 또 이를 사주한 사람으로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의 운전기사로 재직중인 부장 A씨를 지목했다.
금호석유화학은 일단 사실 관계를 파악중이며 금호아시아나그룹이 경찰에 제출한 고소장의 내용을 알아본 뒤 대응 방침을 결정할 것이라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다.
이 사건은 양측 모두의 도덕성에 타격을 입힐 것으로 보인다. 박찬구 회장의 경우 측근이 연루됐다는 점에서 사태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박삼구 회장 역시 동생과 관련해 경찰 고소와 수사 의뢰라는 강수를 둔 만큼 또 다시 집안싸움을 일으켰다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 오는 3월 아시아나항공 주총 영향 미치나
박찬구 회장은 지난 1월 재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주식거래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배임 혐의를 벗었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형제 사이의 갈등으로 촉발된 재판이 끝나자 관계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라는 관측이 그룹 안팎에서 제기됐다. 하지만 이번 고소 사건으로 형제 사이의 간격은 더욱 멀어질 것으로 보인다.
박찬구 회장이 오랫동안 재판에 시달린 이유는 대우건설 매각과 관련해서다. 박찬구 회장은 대우건설 매각과 관련해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100억원대 주식거래 손실 회피, 납품가 부풀리기 등을 통한 횡령 등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무죄 선고를 받으며 혐의를 벗었다.
경찰 고소로 다시 불거진 형제 사이의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도 있다. 이 때문에 오는 3월로 예정된 아시아나항공의 주주총회가 어떻게 진행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박찬구 회장이 이끌고 있는 금호석유화학은 12.61%의 지분율로 아시아나항공의 2대 주주에 해당한다. 금호석유화학은 그러나 ‘상호출자에 따른 의결권 제한’ 규정을 근거해 지분율 30%로 1대 주주인 금호산업의 의결권 제한을 주장할 수 있는 카드를 쥐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금호산업의 지분 13%를 보유중이다. 그야말로 상호출자의 관계다. 현행법에 따르면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은 상호출자율이 10%를 넘어서기 때문에 상호간 의결권이 제한된다. 주총 현장에서 의결권 제한이 전격적으로 이뤄질 경우 금호석유화학은 금호산업 대신 아시아나항공의 1대 주주에 등극하는 상황도 연출될 수 있다.
◆ 형제갈등의 시작은 대우건설 인수 때부터
박삼구, 박찬구 형제의 불화가 시작된 것은 지난 2006년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대우건설을 인수할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그룹을 이끌던 박삼구 회장은 박찬구 회장의 반대를 물리치고 6조6,000억원의 자금을 투입해 대우건설을 인수했다. 하지만 과도한 차입 탓에 대우건설의 인수 이후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유동성 위기에 봉착하는 시련을 겪었다.
형제 사이 갈등이 본격적으로 전개된 것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지주회사인 금호석유화학의 지분에 대한 약속이 깨지면서다. 형제는 금호석유화학의 지분을 각각 10%로 동등하게 보유한다는 약속을 통해 경영에 참여해왔다. 그러나 박찬구 회장이 2009년 6월 이런 약속을 깨고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매입하기 시작했다.
박찬구 회장은 금호석유화학의 지분율을 10.01%에서 18.47%까지 높였다. 박삼구 회장이 발끈했다. 박찬구 회장을 금호석유화학 대표에서 해임하고 스스로도 경영에서 물러나는 초강수를 둔 것이었다. 그룹은 워크아웃에 돌입하고 형제의 경영권 분쟁은 일단락된 듯했다.
채권단은 이후 그룹 계열사를 박삼구 회장의 금호아시아나그룹과 박찬구 회장의 금호석유화학으로 나누고 계열분리 작업에 매진했다. 워크아웃을 졸업한 지난 2010년 3월 박삼구, 박찬구 형제는 각각 그룹과 금호석유화학의 회장 자리에 복귀했다.
형제 사이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 것은 지난 2011년 3월 무렵이었다. 금호석유화학은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를 금호아시아나그룹에서 제외해달라고 공정거래위원회에 신청서를 제출했다. 당연히 형제 사이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파국은 1개월 후였다. 박찬구 회장과 금호석유화학은 비자금 조성 등 의혹으로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박찬구 회장은 검찰 수사 도중 박삼구 회장을 포함한 금호아시아나그룹 임직원 4명을 사기 및 위증 혐의로 고소하는 맞불 작전을 감행했다.
결국 박찬구 회장은 같은해 12월 검찰에 기소돼 재판을 받게 됐다. 박찬구 회장은 지리한 재판 끝에 횡령,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는 무죄를 선고받고, 34억원에 달하는 배임 혐의만 인정돼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