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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인공지능의 시대가 '디스토피아'인 이유

김수정 기자 hallow21@businesspost.co.kr 2016-03-11 18:4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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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속 인공지능의 시대가 '디스토피아'인 이유  
▲ 왕자웨이 감독 영화 '2046' 스틸 이미지.

지구 생명체의 최정점에 있는(혹은 있다고 믿어온) ‘호모 사피엔스’가 인공지능(AI)의 출현에 위협을 받는 시대가 정말 오고 있는 것일까?

이세돌 9단이 구글의 인공지능‘알파고’와 바둑 대결에서 내리 두 판을 내줬다.

이 9단은 승패를 떠나 국가대표를 넘어 인류대표라는 상징성까지 부여받으면서 마치 인공지능에 맞서는 히어로를 연상하게 만들기도 한다.

대국 2회 만에 “설마 알파고가 이길까”에서 “이 9단이 한판이라도 이길까”로 질문이 바뀌었다. 외신들은 ‘인공지능 시대가 도래했다’고 선언했다.

인공지능은 사실 실체가 없는 존재다. 그런데 바로 그 실체가 없는 존재라는 점 때문에 오히려 두려움을 더욱 키운다.

이 9단의 충격적인 패배에 알파고가 어느 정도 수준의 지능과 직관능력을 갖춘 '바둑 고수‘인지 미리 알 길이 없었던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인공지능의 출현이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이유는 실체가 없는데도, 언제 어디에서나 출현이 가능하다는 점 때문일 듯하다. 공포와 불안은 ‘불가지(不可知)’, 즉 알 수 없음에서 비롯된다. 신적 존재나 유령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까지 인공지능(혹은 컴퓨터 프로그램, 로봇, 안드로이드 등 다수의 변종)을 소재로 한 수많은 영화들에서 대개 인공지능이 인간을 위협하는 공포의 대상으로, 또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세상이 디스토피아로 그려진 이유이기도 하다.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가상의 세계를 다룬 터미네이터 속 스카이넷이 대표적인 경우다. 스카이넷은 인공지능 전략방어 네트워크로 개발됐지만 인간처럼 자아각성을 거쳐 인류를 핵전쟁의 위기로 몰아가는 악의 표상으로 등장한다.

영화사에서 SF영화의 원조격으로 불리는 스탠리 큐브릭의 1968년 작 ‘2011:스페이스 오딧세이’에 나오는 HAL 9000부터 ‘매트릭스 3부작’, ‘트랜센던스’, 또 지난해 개봉된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도 같은 계보에 있다.

물론 인간과 인공지능을 선악의 대결구도에 놓은 영화만 있는 것은 아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2001년 작 ‘A.I.’, 애니메이션 ‘월-E’, 로빈 윌리엄스가 나온 ‘바이센테니얼맨’, 윌 스미스 주연의 ‘아이로봇’ 등은 인공지능을 인간의 감성을 닮은 소통 가능한 존재로 다룬다.

최근작인 ‘허(HER)’나 ‘엑스마키나’ 같은 영화는 한술 더 떠 AI에 여성성을 부여해 남자인 인간과 정신적·육체적 사랑을 나누는 성적 대상으로 그리기도 한다.

영화 속에서 지금까지 다뤄진 인공지능은 그 속성이 선이든, 악이든 대체로 전제는 하나다.

인간이 인공지능에 우월적 위치에 있으며 과정이야 어떻든 최종적으로 지배력을 잃지 않는다는 것, 다시 말해 인간이 ‘영웅’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것이 해피엔드를 추구하는 헐리우드식 문법이기도 하다.

이번 ‘세기의 바둑’ 대결에서 이 9단을 응원하는 심정도 비슷한 것이 아닐까? 그런데 이 9단이 알파고에게 5판 모두 진다면?

만약 그렇게 되면 이런 말이 인간을 위한 위로나 변명이 될지도 모르겠다. ‘인간이 지닌 최고의 능력은 기억이 아니라 망각에 있다.’

왕자웨이 감독의 영화 ‘2046’에서 가상현실 2046년에 사는 안드로이드가 인간에게만 고유한 기억과 망각의 회로,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숙명만큼은 절대 갖지 못 했듯이 말이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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