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이 주요 계열사인 밥캣의 사업조정에 힘을 쏟고 있다. 유럽 법인 실적이 부진하자 직속 전략팀을 현장에 파견해 실무를 맡겼다. 지난해 좋은 매출 성적을 올리며 이전의 부진을 털어내려는 밥캣에 힘을 실어주려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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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 |
박 회장은 최근 밥캣의 주력제품인 ‘스키드 스티어 로더’의 유럽지역 판매량이 크게 떨어지자 직속 경영컨설팅 조직 ‘트라이씨’를 체코 도브리스 생산공장에 보냈다고 지난 12일 두산 관계자가 전했다.
밥캣은 박 회장의 진두지휘 아래 2007년 두산인프라코어가 49억 달러에 인수한 건설용 중소형장비 기업이다. 현재 미국 사업부를 맡은 두산인프라코어인터내셔널(DII)과 유럽을 담당하는 두산홀딩스유럽(DHEL)으로 나뉘어 운영되고 있다.
‘스키드 스티어 로더’는 건설현장 등에 주로 쓰이는 사륜구동 소형중장비다. 밥캣은 이 제품의 전 세계 시장점유율 45%를 보유한 1위 회사다.
유럽 ‘스키드 스티어 로더’ 시장에서도 밥캣은 그동안 독보적 위치에 올라 있었다. 그러나 불황이 지속되고 동종제품 경쟁이 심해지면서 판매량이 떨어진 뒤 제대로 회복되지 않고 있다. 북미시장에서 같은 제품의 지난해 4분기 시장점유율이 44.9%까지 높아진 것과 비교된다.
업계 전문가들은 박 회장이 밥캣의 유럽사업 개편에 큰 관심을 쏟는다고 보고 있다. 현지에 파견된 트라이씨는 1996년 그가 직접 만든 두산 내 인수합병 총괄조직이다. 박 회장은 두산그룹이 식품과 소비재에서 중공업으로 주력분야를 바꾸는 작업을 트라이씨에 맡겼다. 현재 재무 전문가인 이종대 부사장이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체코에 파견된 트라이씨 직원들은 3개월 동안 현지 시장조사에 들어간 상태다. 박 회장은 수시로 이들의 보고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결과가 나오는대로 박 회장은 밥캣의 유럽사업 중 일부를 매각하는 등 사업개편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박 회장은 이번 일을 통해 밥캣의 수익성을 더욱 높이려 하고 있다. 밥캣은 인수 이후 6년간 적자를 내며 두산그룹 유동성 위기의 원인으로 꼽히기도 했다. 박 회장이 ‘승자의 저주’에 빠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밥캣은 미국 주택시장 경기회복과 발맞춰 지난해 매출이 크게 증가했다. 그해 4분기 영업이익 967억 원을 찍으며 전년동기보다 이익이 2배 이상 늘었다. 지난해 기준 밥캣이 거둔 실적이 두산인프라코어 전체 매출의 46%, 영업이익 77%를 차지할 정도다.
다만 유럽사업은 여전히 적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국법인은 2012년 이미 흑자전환을 했지만 유럽의 실적은 계속 부진했다. 유럽 주택시장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제대로 회복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박 회장은 지난해 유럽사업 구조조정에 돌입해 재무건전성을 끌어올렸다. 현재의 움직임은 그때 시작한 사업개편을 본격 시행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밥캣의 유럽실적은 두산의 고민거리”라며 “밥캣에 그동안 들어간 돈이 만만치 않아 기업을 살리려는 노력의 한 방법으로 트라이씨 소속 직원들을 급파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지난해 전체 차입금 관련 금융비로 약 3천억 원을 썼다. 지난해 영업이익 3695억 원을 올렸는데도 당기순손실을 낸 이유다. 전문가들은 두산인프라코어가 사용한 금융비용의 대부분이 밥캣과 관련된 것으로 보고 있다. 박 회장이 밥캣 정상화에 상당한 비용을 투자한 것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박 회장은 밥캣의 자체신용을 이용해 차입금 만기를 연장하는 리파이낸싱 작업에 들어간 상태다. 이것이 성공할 경우 2015년 돌아오는 밥캣 차입금 17억2천만 달러의 만기는 2020년 후로 미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