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재계 1, 2위 기업인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이 흔들리면서 재벌기업 중심의 한국 경제 성장모델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들어 중국 저가폰 공세에 흔들리고 있고 현대자동차도 엔저를 등에 업은 일본차와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
한국에서 재벌 중심의 성장모델이 한계에 도달했다고 19일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한국은 단기적 위기극복에 능숙하지만 제조업 부문에서 중국과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장기적 도전에 직면한 것으로 파이낸셜타임스는 진단했다.
한국의 재벌은 지난 50년 동안 급속한 산업화를 주도하면서 정부의 경제적 지원과 정책적 보호를 받았고 한국을 세계 10위의 교역국가로 성장시켰다.
◆ 한국 제조업, 중국 추격 막아낼 수 있나
한국은 현재 조선, 디스플레이, 모바일 폰, 메모리칩 시장 등에서 선도국으로 성장했지만 중국이 여러 산업 부문에서 한국을 뒤쫓고 있어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 등 한국 재벌기업들이 앞으로도 지속적 성장세를 보여줄 수 있을지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는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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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
이종화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중국이 기술 격차를 줄이고 있어 한국의 제조 수출품이 경쟁력을 잃고 있다”며 “중국의 제조산업은 점차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중심을 옮기는 중”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여전히 메모리칩, 자동차 등 첨단기술산업 부문에서 한국에 비해 뒤쳐져 있다. 하지만 철강 조선 석유화학 가전 등 상당수 산업에서 한국의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른 상태다.
이근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일본과 미국을 따라잡는데 집중했던 한국의 수출업체들은 중국의 도전을 막아낼 전략을 수립하지 못한 상태”라고 말했다.
한국경제를 지배하고 있는 대기업들은 올해 상당한 압박을 받았다고 파이낸셜타임스는 전했다.
삼성전자는 4분기 연속 저조한 실적을 냈다. 특히 올해 3분기 영업이익은 지난해 3분기와 비교해 60%나 떨어져 3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삼성전자의 이런 실적부진에 대해 파이낸셜타임스는 화웨이와 샤오미 등 중국 저가폰회사에 점유율을 빼앗긴 탓이라고 지적했다.
현대자동차도 미국시장에서 일본 완성차기업에 밀리면서 올해 3분기 순이익이 지난해 3분기보다 30%나 줄었다. 반면 일본 완성차기업들은 엔저 효과 덕에 파격적 인센티브를 소비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었다.
현대차는 또 한국전력 본사부지 고가인수 논란으로 투자자들을 불쾌하게 만들면서 기업 지배구조와 자본운용에 의구심을 키웠다고 파이낸셜타임스는 지적했다.
◆ 글로벌 경쟁력 갖춘 서비스산업 육성해야
재벌 중심의 경제모델에 대한 의문이 확산되면서 재벌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중소중견기업을 키워야 한다는 요구가 늘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는 보도했다.
서동혁 산업연구원(KIET) 연구원은 “몇몇 수출 대기업이 이끌고 있는 성장모델은 한계에 봉착했다”며 “더욱 균형있고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을 위해서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의 혁신을 촉진하고 서비스산업을 키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는 벤처와 중소기업이 동반성장할 수 있는 ‘창조경제’ 생태계를 구축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하지만 대기업 규제를 통해 중소기업을 활성화하겠다는 박근혜 정부의 계획은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는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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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
서동혁 연구원은 “정치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이 하청업체의 희생으로 이윤을 창출하는 기업환경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의료관광, IT서비스 등 세계적으로 경쟁력이 있는 서비스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마이클 나 노무라 연구원은 “자본집약적 산업 비중을 무제한 늘리는 시대는 지났다”며 “경쟁력있는 플랫폼과 서비스로 돈을 벌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서비스산업은 다른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쉬운 것은 아니다”라며 “그러나 많은 기업들이 이 점을 간과하고 글로벌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는 노하우를 갖고 있지 못하다”고 덧붙였다. [비즈니스포스트 임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