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자체개발하는 AP(모바일프로세서) ‘엑시노스’ 시리즈의 라인업을 늘려 외부 고객사에 공급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퀄컴이 전 세계에서 규제강화 여파로 고전하는 사이 삼성전자가 글로벌 AP시장에서 퀄컴에 정면승부를 노릴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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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남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사장(왼쪽)과 스티븐 몰렌코프 퀄컴 CEO. |
12일 외신을 종합하면 삼성전자는 올해 하반기에 중저가 스마트폰에 탑재하는 엑시노스 AP 신제품 출시를 앞두고 있다. 성능과 가격대를 다양화한 여러 제품을 선보일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삼성전자는 갤럭시S8 등 주력스마트폰에 탑재하는 고성능AP 개발에 집중하며 대부분의 중저가 스마트폰에 퀄컴의 AP를 공급받아 탑재해왔다. 주력제품도 절반 정도는 퀄컴의 AP를 적용했다.
또 엑시노스 AP를 외부 고객사에도 거의 공급하지 못해 시장지배력도 미미한 수준에 그쳤다. 조사기관 SA에 따르면 지난해 퀄컴의 AP 시장점유율은 약 40%, 삼성전자는 10% 정도로 나타났다.
엑시노스 AP의 성능이 이미 퀄컴을 뛰어넘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발전했지만 퀄컴이 삼성전자의 반도체 위탁생산 최대 고객사인 만큼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적극적으로 중저가 AP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는 것은 중국업체 등 외부 고객사에 본격적으로 엑시노스를 공급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최근 퀄컴과 법정공방을 벌이는 미국 연방무역위원회(FTC)에 “퀄컴은 통신칩 라이선스계약을 이유로 엑시노스 시리즈를 외부업체에 공급하지 못하도록 방해했다”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퀄컴은 FTC에 이어 EU, 한국 공정거래위원회 등 전 세계 당국에서 일제히 불공정행위를 겨냥한 집중포화를 받으며 불안한 입장에 놓였다. 중국 등 일부 국가에서는 이미 퀄컴이 라이선스비 인하와 계약조건 재협상을 받아들여 불리한 판례도 만들어졌다.
퀄컴이 삼성전자와도 재협상을 벌일 경우 엑시노스의 외부공급을 방해하는 조항은 삼성전자에 유리한 쪽으로 수정될 가능성이 높다. 글로벌 AP시장에 본격 진입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리는 셈이다.
삼성전자가 퀄컴의 통신칩(모뎀)을 대체할 수 있는 자체 통신반도체 개발에 속도를 내며 위탁생산사업의 경쟁력도 빠르게 높아져 퀄컴에 의존을 낮출 수 있게 된 점도 중요한 배경으로 꼽힌다.
김기남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사장은 이전부터 AP와 통신칩, 그래픽반도체(GPU)와 메모리 등을 모두 자체개발해 탑재하는 ‘통합칩’ 반도체 개발목표를 꾸준히 강조해왔는데 이런 노력의 성과가 점차 나타나고 있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엑시노스 AP에 영국 ARM의 설계기반을 활용한 그래픽반도체를 적용해왔는데 내년부터는 ‘S-GPU’로 이름붙인 자체개발 제품을 탑재해 그래픽성능을 개선할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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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전자가 자체개발한 AP '엑시노스'와 통신칩. |
또 퀄컴 출신의 통신칩 전문가인 강인엽 부사장이 최근 시스템LSI사업부장에 오르며 통신반도체 개발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미 LTE규격을 지원하는 통신칩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그동안 퀄컴에 크게 의존하던 반도체 위탁생산에서 삼성전자가 빠른 공정기술 발전으로 경쟁력을 높이며 외부고객사를 점점 확대하고 있는 점도 퀄컴에 맞대결을 노릴 수 있는 이유로 자리잡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조직개편으로 분리한 반도체 위탁생산사업에 대규모 생산투자를 벌여 생산량도 대폭 확대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그동안 약점으로 꼽히던 AP 공급능력과 생산원가가 대폭 개선돼 경쟁력을 확보할 것으로 전망된다.
퀄컴은 글로벌 AP시장에서 장기간 독점체제를 유지했다. 통신칩기술 독점으로 고객사들과 협상에 우위를 점한데다 애플을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AP 기술력에서 맞설 경쟁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시스템반도체 설계와 생산, 자체 메모리반도체까지 이르는 수직계열화 구조를 갖춰낸데다 공정과 설계기술력이 최근 빠르게 발전하고 있어 퀄컴으로서는 부담을 안게 됐다.
퀄컴은 최근 프리미엄 스마트폰의 수요둔화로 실적부진을 겪자 중저가 AP의 성능을 대폭 끌어을리고 라인업을 늘리며 점유율 방어에 나서고 있다. 삼성전자의 시장진출로 하반기부터 치열한 맞경쟁이 벌어질 가능성에 대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삼성전자와 퀄컴은 모두 자동차 인포테인먼트용 AP 시장진출도 노리고 있다. 스마트폰시장에서 우위를 확보할 경우 성장성이 높은 자동차용 반도체사업의 확대에도 유리한 위치에 놓일 수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