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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윤진숙 전 해양수산부 장관, 오른쪽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 |
박근혜 대통령이 선택한 두 여성장관의 운명이 10개월만에 극과 극으로 엇갈렸다.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이 6일 전격 해임됐다. 반면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은 탁월한 감각으로 위안부 문제를 국제적으로 알리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첫 내각을 짜면서 17명의 장관 가운데 두 자리에 여성장관을 앉혔는데, 결과적으로 절반만 성공한 셈이다.
윤 장관과 조 장관의 출발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가 내세우는 정부의 '여성 중시 정책'의 아이콘으로 화려하게 등장했다. 차이라면 윤 장관이 무명으로 깜짝발탁이라는 것이었다.
윤 장관은 박 대통령에게 ‘모래알 속 진주’라는 극찬을 받으며 극적으로 등장했다. 하지만 윤 장관은 박 대통령의 거듭된 '비호'에도 불구하고 잇따른 실언 파문으로 295일만에 다시 모래알로 돌아가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윤 장관은 장관 청문회때부터 기이한 언행과 무책임한 행동으로 수많은 잡음을 일으켰다. 이른바 ‘윤진숙 어록’이 만들어질 정도로 잇따른 실언을 쏟아냈다. 가령 청문회 당시 여야 국회의원들이 건넨 ‘해양 수도’, ‘어업 GDP’ 등의 기초 질문에 모르쇠로 일관하는 모습을 보여 국민적 공분마저 일으켰다.
윤 장관은 급기야 여수 기름 유출 사고 현장에서 주무부처 장관이 보여서는 안되는 태도를 보였다. 그는 피해 주민들과 대화하면서 현장에 코를 막는 사진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부적절한 처신'이라는 공격을 받았다. 곧이어 열린 새누리당과 당정협의에서 “1차 피해는 GS칼텍스, 2차 피해는 어민”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발언을 했고 여당 내부에서조차 물러나게 해야 한다는 발언이 쏟아졌다. 결국 자진사퇴라 아니라 해임이라는 불명예로 퇴진했다.
조 장관은 예나 지금이나 박 대통령의 ‘여성 동지’로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조 장관은 2012년 4월 19대 총선 때부터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공동대변인을 지냈고, 같은 해 대선 때는 박근혜 후보 경선 캠프 대변인을 역임하며 박 대통령과 인연을 만들어왔다.
조 장관의 임명 당시 여의도 정가 일각에서는 “왜 금융이나 문화계와 같은 요직이 아닐까”라는 반응도 나왔다. 박 대통령에게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데다 신임도 두터웠기 때문이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조 장관은 김관진 국방부 장관에 이어 박근혜 정부에서 2번째로 ‘잘하고 있는’ 장관으로 뽑혔다. 덕택에 여성가족부의 위상도 높아졌다는 평가가 잇따르고 있다. 실제 초임 사무관이 여성가족부를 지원하는 비율마저 늘었다. 지난해 10월 정원이 3명인 여성가족부 초임 사무관 자리에 13명이나 지원하는 진풍경이 벌어진 것이다.
여성가족부의 예산은 정부 부처 가운데 가장 적다. 하지만 모든 부처에서 여성 문제에 대해 코디네이터 역할을 하는 여성가족부의 존재감은 묵직하다. 또 2014년 국정과제 140개 가운데 10%인 14개가 맡겨지는 중책이 부여됐다. 윤 장관에 대한 신임이 반영됐다는 평가다
조 장관은 올해 들어 위안부 문제를 세계에 알린 일등 공신으로 꼽히기도 한다. 프랑스에서 개최된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발에서 위안부 문제를 세계적 관심사로 만든 것이다. 모두에게 친숙한 만화 형식을 이용해 위안부 문제를 세계에 알리자고 처음 착안했다는 후문이다.
조 장관은 실제 국회의원 재직 당시 만화진흥법을 제정하며 관련 경험도 쌓았다. 조 장관은 위안부 피해자 기록물을 201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는 작업도 추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