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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희 유한양행 이사회 의장은 2015년 대표이사에 선임될 때부터 시작해 12년째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다. 사진은 서울 동작구 대방동 유한양행 본사에 있는 윌로우하우스. <비즈니스포스트>
대표적인 문제 사례로 거론되는 인물은 바로 이정희 유한양행 이사회 의장이다.
이 의장은 2015년부터 현재까지 유한양행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다. 현재 임기까지 채우면 약 12년 동안 이사회를 이끌게 되는 셈인데 CEO의 임기를 최대 6년으로 제한한 취지를 무색하게 만든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사회 의장에게 과도하게 힘이 쏠릴 수 있다는 것이다.
유한양행 이사회가 대표이사 선임을 총괄한다는 점에서 이 의장의 장기 재임은 더욱 주목받고 있다.
◆ CEO 최대 6년, 전문경영인 장기 재임 막는 승계 체계
유한양행은 전문경영인인 대표이사가 장기간 경영을 독점하지 못하도록 재임 기간에 제한을 두고 있다.
유한양행의 2026년 기업지배구조보고서를 보면 회사는 '임원의 처우에 관한 규정'에 따라 대표이사가 6년을 초과해 연임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기본 임기 3년에 한 차례 연임할 수 있어 최대 재임 기간은 6년이다.
창업주 유일한 박사가 가족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은 뒤 유한양행은 1969년부터 전문경영인 체제를 이어오고 있다. 유 박사는 당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자녀가 아닌 공채 출신 임원에게 경영권을 넘겨 전문경영인 승계의 틀을 만들었다.
현재도 공익법인인 유한재단이 최대주주로 있고 특정 개인 오너가 경영권을 행사하지 않는 구조로 운영된다.
이런 기업에서는 특정 경영자의 장기 재임을 막는 것뿐 아니라 다음 경영자를 어떤 절차로 선정하느냐도 중요한 문제다.
유한양행은 CEO 선임 약 2~4년 전부터 후보군을 육성하는 승계 절차를 운영하고 있다. 회사가 공개한 승계정책에 따르면 사업가적 역량 등을 고려한 후보군을 부사장으로 선임해 경험과 역량을 쌓도록 하는 것이 기본적인 육성 방식이다.
이후 이사회가 추천받은 CEO 후보군의 적정성을 심의·의결해 정기주주총회 약 6개월 전 최종 대표이사 후보 1명을 확정한다. 해당 후보가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로 선임되면 다시 이사회 결의를 통해 대표이사가 된다.
현재 회사를 이끌고 있는 조욱제 대표이사 사장은 2027년 3월 임기를 마친다. 기존 승계정책에 따르면 9월에는 후보자의 윤곽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차기 대표로는 김열홍 R&D총괄사장과 이병만 경영관리본부장 부사장, 유재천 약품사업본부장 부사장 등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특정 오너가 전문경영인을 결정하는 구조가 아니라는 점에서 최종 후보를 판단하는 이사회의 구성과 운영은 유한양행 전문경영인 승계 체계의 중요한 축이라 할 수 있다.
▲ 서울 동작구 유한양행 본사에 있는 '윌로우하우스'에 전시된 유일한 박사의 친필 유언장 모습. 이 유언장이 유한양행의 전문경영인 체제의 뼈대가 됐다. <비즈니스포스트>
현재 이사회 구성만 놓고 보면 유한양행은 경영진을 견제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상당 부분 갖추고 있다.
유한양행 이사회는 조욱제 사장과 김열홍 R&D총괄사장 등 사내이사 2명, 이정희 기타비상무이사 1명, 사외이사 4명 등 모두 7명으로 구성돼 있다. 사외이사가 전체 이사의 과반을 차지한다.
이사회 내 주요 위원회 역시 사외이사를 중심으로 구성하고 있다.
감사위원회와 보상위원회는 위원 전원이 사외이사다.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와 ESG위원회도 각각 사외이사가 과반을 차지하고 있다.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도 분리돼 있다. 현재 조욱제 대표가 경영을 총괄하고 이정희 기타비상무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는다.
다만 이 같은 외형적 장치와 별개로 이사회 의장의 독립성에서는 개선할 부분이 남아 있다.
유한양행이 한국거래소 기업지배구조 핵심지표 가운데 충족하지 못하고 있는 항목 가운데 하나가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는지 여부'다.
이 의장은 1978년 유한양행에 입사해 부사장 등을 거쳐 2015년 제21대 대표이사 사장에 올라 2021년까지 6년 동안 회사를 이끌었다. 대표이사 재임 기간에는 이사회 의장도 겸직했다.
2021년 3월 대표이사 임기를 마친 뒤에는 기타비상무이사로 선임돼 이사회에 남았고 기존에 맡고 있던 의장직도 이어갔다. 유한양행은 이때부터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서로 다른 인물이 맡는 체제로 전환했다.
이 의장은 2024년 정기주주총회에서 기타비상무이사로 재선임됐으며 현재 임기는 2027년까지다. 현 임기를 채우면 대표이사 시절을 포함해 2015년부터 약 12년 동안 이사회 의장을 맡게 된다.
CEO는 특정 경영인의 장기 재임을 막기 위해 최대 6년으로 재임 기간을 제한하고 있지만 이사회 의장에는 이와 같은 별도의 재임 제한이 없다.
물론 전임 CEO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 이사회 의장을 맡는 구조 자체가 유한양행만의 사례는 아니다.
풀무원도 2024년까지 총괄CEO를 지낸 이효율 기타비상무이사가 현재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다. 이효율 의장은 2025년부터 대표이사와 분리된 이사회 의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풀무원은 이런 구조에서도 2025년 KCGS 평가에서 지배구조 부문 최우수 기업으로 선정됐고 ESG 통합 A+등급을 받았다. 전임 CEO가 의장을 맡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기업의 이사회 독립성 수준을 판단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다만 풀무원은 이를 보완하는 별도의 견제장치도 마련해 놓고 있다.
독립이사들이 별도로 선임한 선임독립이사를 두고 있으며 이사회 안에 총괄CEO후보추천위원회를 설치해 차기 CEO 후보의 추천과 심사, 검증을 맡기고 있다. 실제 이우봉 현 총괄CEO도 해당 위원회가 약 1년에 걸친 후보 검증 절차를 거쳐 선정했다.
결국 전임 CEO가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다는 형식 자체보다는 의장을 비롯한 경영진의 영향력을 견제하고 CEO 승계 과정의 독립성을 보완할 장치가 함께 작동하는지가 중요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유한양행도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함으로써 이사회 독립성을 확보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정희 의장이 오랜 이사회 운영 경험을 갖추고 있어 원활한 의사진행에도 도움이 된다는 입장이다.
다만 대표이사와 의장을 서로 다른 사람이 맡고 있다는 사실과 의장이 경영진으로부터 얼마나 독립적인지는 별개의 문제라고 보는 시선도 적지 않다. 이정희 의장은 현직 CEO는 아니지만 직전 대표이사를 지낸 인물이라는 점에서 독립적인 사외이사가 의장을 맡는 구조와는 차이가 있다.
▲ 역대 유한양행 대표이사 모습. <비즈니스포스트>
이정희 의장의 장기 재임이 이번에 더욱 주목되는 이유는 유한양행의 CEO 승계에서 이사회가 갖는 역할 때문이다.
유한양행에는 사외이사 후보를 검증하는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가 있지만 CEO 선정을 전담하는 별도의 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를 두고 있지는 않다.
최종 CEO 후보를 결정하는 역할은 이사회가 직접 맡는다.
이에 따라 이정희 의장 역시 다른 이사들과 함께 차기 대표 선정 과정에 참여하게 된다. 다만 의장이라고 해서 단독으로 후보를 결정할 수 있는 구조는 아니다. 최종 후보 확정에는 이사회 결의가 필요하고 현재 이사회 7명 가운데 사외이사가 4명으로 과반을 차지한다.
전임 CEO가 장기간 의장을 맡고 있는 상황에서 사외이사 과반으로 구성된 이사회가 후보 검증과 최종 결정 과정에서 얼마나 독립적인 판단을 내리느냐가 중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CEO 장기 재임은 최대 6년으로 제한하면서 전임 CEO가 12년째 이사회를 이끌고 있는 상황에서 이사회가 어떤 논의와 판단을 거쳐 새로운 대표를 선택하느냐는 유한양행이 50년 넘게 이어온 전문경영인 체제의 견제와 균형이 실제로 작동하는지를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유한양행 스스로는 이사회 의장의 독립성과 관련한 제도 개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유한양행은 2026년 기업지배구조보고서에서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지 않고 있다는 점을 핵심지표 미준수 사항으로 표시하고 향후 사외이사를 의장으로 선임하거나 선임사외이사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장은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