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법정 메뉴얼 '기후변화 섹션' 삭제 놓고 논란, 학계·정치권 대립 격화

▲ 미국 연방사법센터가 발간한 '과학적 증거 참고 메뉴얼' 개정판을 두고 논란이 심해지고 있다. 사진은 미국 워싱턴 D.C에 위치한 연방대법원.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미국 판사들이 사용하는 메뉴얼에서 기후변화 관련 부분만 삭제된 일이 학계의 비판을 받고 있다.

2일(현지시각) 뉴욕타임스는 과학, 기술, 법률 분야 전문가 28명이 공동서명을 통해 미국 연방사법센터(FJC)에 올해 1월에 발간한 '과학적 증거 참고 메뉴얼' 개정판을 원판으로 되돌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과학적 증거 참고 메뉴얼은 과학에 관련된 소송을 다룰 일이 많은 미국의 특성상 판사들의 판단을 돕기 위해 발간되는 문서다.

이번 메뉴얼은 기후변화와 관련된 섹션을 따로 둔 탓에 보수 언론과 정치권의 공격 대상이 됐다.

팍스뉴스는 메뉴얼이 발표된 직후 기후변화 관련 부분이 지나치게 좌편향된 내용을 담고 있다며 사법부의 판단을 저해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공화당주 소속 법무 장관들은 연방사법센터가 기후변화 섹션을 삭제하지 않는다면 법적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연방사법센터는 결국 이들의 요청을 수용해 기후변화 섹션을 삭제했다.

이번에 공동서명을 낸 학계 관계자들은 "27개 주 법무장관들이 조직적으로 이미 전문가 검증을 마친 내용을 삭제하려고 시도한 것은 연방 사법부의 독립성에 대한 직접적 도전"이라며 "해당 법무 장관들은 본인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기후 과학에 대한 철저한 검증을 거친 내용을 공격했다"고 비판했다.

메뉴얼 작성에 참여한 미국 국립과학공학의학원도 매유얼 원안을 공개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며 공화당 법무장관들의 요구를 거부하기로 했다.

현재 국립과학공학의학원 홈페이지에는 메뉴얼 원안이 그대로 게재돼 있다.

이에 오스틴 크누드센 몬태나주 법무장관 등 공화당 법무장관 20여 명은 공동서한을 통해 "해당 섹션이 계속 공개되도록 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이번 메뉴얼의 저자로 참여한 브렌다 에스케나지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캠퍼스 교수는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정치인들의 행동이 매우 우려스럽다"며 "이것은 과학이 공격받고 있는 또 다른 사례"라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는 이미 정치적 성향과 무관한 여러 과학자들의 동료 검토 과정을 거쳐 메뉴얼을 냈다"며 "이런 문서의 발간은 과학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 민주당은 연방 의회 차원에서 연방사법센터에 서한을 보내 기후변화 관련 섹션 복원을 요청했다.

론 와이든 오리건주 상원의원, 돈 바이어 버지니아주 하원의원 등 민주당 소속 의원 20여 명은 서한을 통해 "기후과학과 관련된 소송이 증가하고 있는 현 시점에 우익의 압력에 굴복해 해당 장을 삭제하기로 한 결정을 용납할 수 없다"며 "해당 섹션을 복원하고 사법부의 입을 틀어막으려는 모든 시도를 거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권과 학계로부터 전방위적 압박을 받고 있는 연방사법센터는 3일 기준 아직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