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예고 없이 마주한 타인의 무례와 그로 인한 불쾌함을 어떻게 다룰지가 종종 화제에 오른다. 사진은 명동 거리의 모습. <연합뉴스>
그중에서도 오늘은 원래 알던 사이가 아닌, 일상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낯선 사람의 무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예를 들면, 가게나 식당, 시설 등을 이용하다가 갑자기 불친절한 대우를 받는 경우다.
얼마 전에는 카페에서 누군가 직원에게 빨대의 위치를 묻는 모습을 보았다. 빨대는 내 눈에도 찾기 어려운 곳에 있었는데, “저기 있잖아요”라는 직원의 짜증 섞인 대답에는 그것도 못 찾느냐는 기색이 역력했다.
서비스 제공자가 늘 밝은 표정으로 누군가를 반겨야 할 의무는 없다. 그러나 사실 (진상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 느끼는 불쾌함은 특별한 대접을 받고 싶어서라기보다, 일상적인 질문을 했다는 이유로 핀잔을 듣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사소한 무례가 때로 오래 마음에 남는 이유 중 하나는, 보통 이런 장면은 갈등을 예상하고 들어간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서비스를 이용하러 갔다가 돈을 내고 불쾌함까지 구입하는 셈이 되니, 평온했던 일상이 느닷없이 어그러진다.
불쾌함이 종종 오래 가게 되는 또 다른 이유는 이런 경험들이 불필요한 자기점검을 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사람들은 보통 상대의 반응을 단서 삼아 자신부터 점검하곤 한다. 내가 못 들은 안내가 있었나? 방해가 되는 순간에 질문을 했나? 혹시 내 말투에 문제가 있었나?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짐작이 가질 않는다.
이런 자기의심은 마음을 어지럽힌다. 그래서 우리는 친구를 붙들고 하소연하며 묻는다. “내가 무리한 요구를 한 거야? 내가 예민한 거야?” 나는 그런 무례한 반응을 일으킬 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받고 싶은 것이며, 그 확인이 마음을 정리하는 데 무척 중요해지는 상황이 된다.
그렇다면 이런 일을 겪었을 때, 무엇을 기억하면 도움이 될까?
그건 바로, 당신이 아무 잘못을 하지 않아도 언제든 무례한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즉 '타인의 무례는 삶의 기본 이용 약관'인 셈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조항이며, 태어날 때 동의한 기억도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삶에 기본적으로 따라오는 조건이라고 생각하면, 그 일을 겪을 때마다 놀라고 자신을 의심하는 데 쓰는 힘을 조금 덜 수 있다.
우리는 대체로 내가 예의를 지키면 상대도 예의를 지킬 것이라고 기대한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마음이지만, 사실 그것은 예상이라기 보다는 소망에 가깝다. 이것이 ‘내가 예의를 지키면 상대도 반드시 그럴 것이다’라는 확신으로 굳어지면 상대의 짜증을 설명할 길이 좁아진다. 무례한 대우 자체도 불쾌한데, 일어날 수 없다고 믿었던 일이 벌어졌다는 당혹감까지 더해지면서 분노는 더 커진다.
무례를 겪었을 때 오히려 자기점검을 반복하는 마음에는 사실 이 상황을 납득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내가 무언가를 잘못한 것이라면 차라리 수정해서 다음에는 같은 일을 피하면 되니까. 그러면 세상은 여전히 안전하고 예측 가능한 곳으로 계속 남아 있을 수 있으니까.
그래서 때로는 상대의 태도가 내 행동과 무관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받아들이기보다, 내 쪽에서 이유를 찾는 일을 계속하게 된다. 친구에게는 상대가 잘못했다고 열심히 이야기하면서도, 마음 한편에서는 여전히 내가 뭔가를 잘못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는 것이다.
‘사람은 서로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기준을 버릴 필요는 없다. 다만 나의 예의는 내가 선택할 수 있으며, 그럼으로써 존중받을 '확률'은 높아질 수 있지만 그것이 상대의 태도까지 완전히 결정할 수는 없다는 점을 기억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타인의 무례는 앞으로도 예고 없이 찾아올 것이다. 그럴 때는 ‘아, 동의한 기억은 없지만 삶의 약관에는 이런 것도 들어 있었지’ 하고 생각해보기를 권한다.
그렇다고 꼭 참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냥 넘길지, 항의할지, 그 자리를 떠날지 선택할 권리 역시 내 삶의 약관에 포함되어 있으니까. 반유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였고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여성학협동과정 석사를 수료했다. 광화문에서 진료하면서, 개인이 스스로를 잘 이해하고 자기 자신과 친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책 '여자들을 위한 심리학', '언니의 상담실', '출근길 심리학'을 썼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