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이스피싱에 속아 계좌나 인증정보를 제공한 피해자도 사기방조 등 혐의로 수사를 받을 수 있어 사건 초기 대응이 중요하다. <연합뉴스>
신뢰감을 주는 검사, 금융감독원 직원, 법원 공무원, 시중은행 대출 담당자의 직함을 교묘하게 사칭해 피해자를 옭아맨다. 모집책, 연락책, 관리책 등 철저한 점조직 형태로 분업화되어 있고 주범들은 대부분 해외에 거점을 두고 활동하기에, 한 번 피해를 당하면 피해금 회복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인형뽑기 가게를 운영하는 자영업자 제문제(가명) 역시 보이스피싱은 남의 일로만 여겼다. 그는 상가 오피스텔 분양 잔금 마련이 급박한 상황이었으나, 갑작스러운 금융 규제로 은행 대출이 막혀 자금 압박을 받고 있었다. 그러던 중 시중 K은행 대출 담당자라는 서유민(가명)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서유민은 제문제의 신용평가 적격성만 확인되면 1억 원 상당의 정상 대출이 즉시 승인된다고 안내했다. 그러면서 본사 전산 심사를 위한 1회용 본인인증 번호 화면을 확인해 달라고 요구했고, "심사가 진행되는 동안 고객이 뱅킹 앱에 동시 접속하면 보안 충돌로 대출 승인이 즉시 부결되니 심사 완료 시까지 앱을 잠시 삭제하라"고 요구했다. 급박했던 제문제는 이를 정식 1금융권 대출 전산 절차로 믿고 일회용 인증번호 캡처 사진을 전송한 뒤 앱을 삭제했다.
그러나 약속한 날짜가 지나도 대출금은 입금되지 않았고 서유민은 연락을 끊었다. 이상함을 느낀 제문제는 즉시 관할 경찰서를 찾아 피해를 호소했으나, "아직 본인의 금전적 손해가 확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정식 사건 접수가 되지 않아 발길을 돌려야 했다.
악몽은 한 달 뒤에 시작되었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로부터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라는 통보를 받은 것이다. 조사 과정에서 제문제는 자신의 계좌가 피해자들의 피 같은 돈 수억 원을 세탁하는 경유지로 악용되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경찰은 그를 단순 피해자가 아닌 보이스피싱 자금세탁 공범으로 보았고, "대출을 받게 해준다는 약속을 대가로 계좌 인증정보를 넘겼으니 사기방조 및 전자금융거래법위반 혐의가 명백하다"며 거세게 추궁했다.
대출 사기에 속아 인증번호를 확인해 준 제문제는 정말 형사처벌을 받아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도 속은 피해자다", "범죄인 줄 전혀 몰랐다"는 단순한 하소연만으로는 혐의를 벗을 수 없다. 실무상 피해액이 크고 피해자와의 합의가 없으면, 수사기관은 기계적으로 기소 의견 송치하고 법원 역시 실형을 선고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자칫 미숙하게 혐의를 부인하다가는 증거인멸 우려로 구속영장까지 청구될 수 있다.
따라서 사건 초기부터 전문변호사의 조력을 받아 객관적 증거와 정밀한 판례 법리로 수사기관의 프레임을 깨뜨려야 한다.
첫째, 사기방조의 '미필적 고의'를 조각해야 한다. 이상 감지 직후 경찰에 신고하려 했던 통화·문자 내역, 개인정보 노출을 우려해 신분증을 즉시 재발급받은 사실, 사건 직후 정신적 충격으로 병원 진료를 받은 객관적 기록 등을 시계열로 제시하여 자신이 '범죄 도구로 악용당한 진정한 피해자'였음을 입증해야 한다.
둘째, 전자금융거래법상 '대여'와 '대가성'의 부존재를 증명해야 한다. 최근 법원은 타인에게 계좌 통제권을 넘겨주는 '대여'와 본인 대출 심사를 받기 위한 '수단'으로 인증번호를 넘겨준 행위를 엄격히 구분하고 있다. 사기범의 실물 보안카드 요구를 단호히 거절했던 정황, 금전적 대가를 약속받은 사실이 전혀 없다는 점 등을 최신 무죄 판례와 결합하여 수사기관의 논리를 탄핵해야 한다.
제문제는 조사 초기부터 형사전문변호사의 체계적인 조력을 받아 사기방조 및 전자금융거래법위반 피의사실 전부에 대해 '불송치(혐의없음)' 결정을 받아 무사히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보이스피싱 조직에 속아 계좌나 인증정보를 제공했다가 졸지에 피의자로 입건된 경우라면, 첫 경찰 조사 단계부터 신속하게 관련 사건 경험이 풍부한 변호사의 조력을 받아 실체적 진실을 밝혀내야 한다. 주상은/윈앤파트너스 법률사무소 파트너변호사
| 글쓴이 주상은 변호사는 윈앤파트너스 법률사무소의 파트너변호사이다. 대한변호사협회 공인 재개발 재건축 전문변호사이고, 주로 재개발 재건축, 리모델링, 건설 부동산 사건들을 취급해왔다. 대학원에서 민사법을 전공했다. 대학원에서는 논문을 주로 작성하다가 변호사가 된 후에는 복잡하고 어려운 법언어를 쉬운 일상 용어로 풀어 쓰는 데에 관심을 두고 있다. 칼럼을 통해 일반인들이 법에 대해서 가지는 오해를 조금씩 해소해나가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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