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올해 들어 대규모 투자를 다수 진행하고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인공지능(AI)부터 시작해 콘텐츠 투자까지 적극적으로 보폭을 넓히고 있는데 신세계그룹에서 가시화하고 있는 계열분리를 염두에 둔 포석으로 읽힌다.
변화의 움직임은 긍정적이지만 일각에서는 돈이 문제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조 단위가 넘어가는 투자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되는데 정 회장이 이를 어떻게 안정적으로 조달하느냐가 숙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8일 신세계그룹 상황을 종합하면 올해 들어 AI, 콘텐츠 등 신사업에 대한 투자를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신세계그룹은 6일 파라마운트의 워너브라더스 인수 거래에 10억 달러를 투자한다고 밝혔다. 공시 기준 투자금액은 1조3596억 원이다.
워너브라더스는 영화·방송 제작사 워너브라더스와 HBO, CNN, 디스커버리, HBO맥스 등을 거느리고 있으며 ‘해리포터’, ‘왕좌의 게임’ 등 글로벌 지식재산권(IP)을 확보하고 있다. 유통과 콘텐츠의 결합을 염두에 둔 행보로 읽힌다.
올해 초에는 미국 AI 기업 리플렉션AI와 250메가와트(MW)급 AI 데이터센터 구축도 추진하기 시작했다. 신세계그룹이 유통이라는 단일 축에서 벗어나 IT 쪽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눈에 띄는 변화로 읽혔다.
일각에서는 관련 투자에 신세계그룹이 중장기적으로 10조 원가량을 넣어야 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올 정도로 규모가 적지 않은 사업이다.
정용진 회장이 이처럼 대규모 신사업 투자에 다시 속도를 내는 것은 2021년 이후 5년 만의 일이다.
당시 정 회장은 이마트를 통해 지마켓(전 이베이코리아)를 3조4404억 원에 인수했다. 스타벅스코리아 지분 추가 확보에는 4743억 원, SSG랜더스 인수에는 1천억 원을 투입했다. SSG닷컴도 W컨셉을 2650억 원에 사들였다.
온라인과 커피, 스포츠 등 소비자 접점을 한꺼번에 넓혀 이른바 ‘신세계 유니버스’를 만들겠다는 구상이었다.
당시에도 정 회장이 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승부수를 띄웠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실제로 정 회장은 조 단위 투자를 일으키기 위해 서울 성동구에 있던 이마트 신사옥을 크래프톤에 약 1조1천억 원에 파는 등 여러 자산을 유통화했다.
다만 5년이 지난 현재 성적표는 엇갈린다.
SCK컴퍼니(스타벅스 운영사)는 2024년 처음 연매출 3조 원을 넘어선 데 이어 2025년 매출 3조2380억 원을 내며 외형 성장을 이어갔다. SSG랜더스도 인수 이듬해 통합우승을 차지하며 스포츠를 활용한 브랜드 효과를 보여줬다.
반면 가장 많은 자금을 투입한 지마켓은 인수 이듬해부터 적자로 돌아섰고 2025년 영업손실은 1217억 원까지 늘었다. SSG닷컴 역시 2019년 출범 이후 아직 흑자를 내지 못하고 있다.
2022년 약 3천억 원을 들여 사들인 미국 와이너리 쉐이퍼 빈야드도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했다. 신세계프라퍼티의 미국 자회사 스타필드프라퍼티스는 지난해 말 쉐이퍼 빈야드 영업권 392억 원을 전액 손상처리했다.
최근 수년 사이 정 회장이 대형 인수합병보다 벌여 놓은 사업을 정비하고 이마트 본업의 수익성을 회복하는 데 주력한 것은 이런 흐름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지마켓과 SSG닷컴 등 이커머스 사업도 비용 효율화와 구조조정에 집중했다.
한동안 자제했던 공격적 경영 기조를 깨고 다시 조 단위 투자에 나서는 것은 계열분리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신세계그룹은 2024년 10월 이마트 부문과 백화점 부문의 계열분리를 공식화했다. 지난해에는 어머니인 이명희 총괄회장이 보유하던 신세계 지분 전량을 정유경 신세계 회장에게 증여하면서 남매 독립경영 구도도 한층 분명해졌다.
계열분리가 마무리되면 정용진 회장은 이마트와 신세계프라퍼티, SCK컴퍼니, SSG닷컴 등을 중심으로 홀로서기에 나서게 된다. 이명희 총괄회장이 이끄는 신세계그룹의 한 축인 이마트를 정 회장이 담당하는 단순한 형태가 아니라 자신만의 경영 색깔을 증명해야 하는 입장으로 변화하게 되는 것이다.
▲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왼쪽)이 9월3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파운드리 스쿨' 출범식에 참석해 제이콥 헬버그 미국 국무부 경제차관(가운데), 미샤 라스킨 리플렉션AI 최고경영자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AI 데이터센터는 기존 유통사업에 AI를 적용하는 수준을 넘어 인프라 자체를 새로운 사업으로 키우겠다는 구상으로 읽힌다. 정 회장이 6월 신세계프라퍼티 대표를 직접 맡은 것도 미래사업을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기보다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대목으로 읽힌다.
워너브라더스 투자는 여기에 콘텐츠라는 축을 더한다.
투자구조도 이마트에서 신세계프라퍼티와 미국 자회사 스타필드프로퍼티스로 이어져 정 회장이 맡을 이마트 부문 안에서 이뤄진다.
파라마운트와 워너브라더스가 보유한 글로벌 IP는 스타필드와 화성 스타베이시티 등 기존 공간사업에 활용할 수 있다. 워너브라더스의 HBO맥스와 파라마운트의 파라마운트플러스를 이마트 등 계열사 멤버십과 연계할 가능성도 있다.
한국기업평가는 리포트를 통해 “이번 투자로 차입 부담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나 영업 기반과 현금창출력을 감안할 때 대응가능한 수준으로 판단된다”며 “글로벌 콘텐츠 IP와의 연계를 통해 그룹의 유통·레저사업 경쟁력 강화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2021년도 대규모 투자와 비교하면 정 회장의 방향성도 일부 달라졌다.
당시에는 지마켓과 스타벅스, 야구단처럼 이미 존재하는 소비자 접점을 사들이는 방식이었다면 지금은 AI 인프라와 글로벌 콘텐츠처럼 계열분리 이후 새로운 성장축이 될 사업을 직접 만드려는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이런 흐름을 감안할 때 올해 정 회장의 행보는 5년 만에 다시 시작한 ‘두 번째 대형 베팅’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재계 안팎의 평가다. 동시에 이명희 총괄회장의 영향 아래 있던 하나의 그룹 경영에서 벗어나 독립된 오너경영자로 어떤 색깔을 보여줄지를 가늠하는 본격 시험대로도 여겨진다.
물론 정 회장의 성과에 부담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AI 데이터센터는 아직 합작법인 설립과 부지 선정 단계에 머물러 있다. 대규모 전력 확보와 자금조달, 외부 고객 유치 등 넘어야 할 과제도 많다.
콘텐츠 투자 역시 실제 사업화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이번 투자로 이마트의 재무부담이 확대될 수 있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보고서를 통해 “워너브라더스 투자와 SSG닷컴 재무적투자자 지분 인수에 투입된 자금은 모두 2조1871억 원으로 2025년 연결기준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을 웃돈다”며 “현금창출력 대비 과중한 투자가 진행된 만큼 단기적으로 이익창출력 대비 재무부담은 과거보다 높은 수준을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이번 투자와 관련해 아직까지 투자 규모를 제외하고 구체적으로 정해진 사항은 없다”고 말했다. 김예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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