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1926년 11월4일, 우리말과 글을 기리는 첫 '가갸날'(현 한글날)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손끝의 한글'도 세상에 나왔다. 송암 박두성 선생과 제자들이 만든 한글 점자 '훈맹정음'이다.
박 선생은 문자를 만든 데서 나아가 점자를 배우고 책을 읽을 기회까지 넓히려 했다. 그 노력은 오늘날 점자의 법적 지위와 국가의 교육·보급 책무를 규정한 점자법과 정책으로 이어졌다.
다만 점자의 법적 지위가 확립됐지만 생활 속 정보 접근 환경에는 여전히 개선할 부분이 남아 있다. 훈맹정음 반포 100년을 맞아 점자 교육과 사용 환경의 현주소를 살펴봤다.
9일 국립한글박물관과 국가법령정보센터 등의 자료를 종합하면 올해는 한글날을 기념하기 시작하고 훈맹정음이 반포된 지 100년이 되는 해다. 점자의 발전과 보전, 교육·보급에 대한 국가의 책무를 규정한 점자법도 제정 10년을 맞았다.
국립한글박물관은 국립세계문자박물관·송암점자도서관과 함께 지난 7일부터 인천 국립세계문자박물관에서 '점에서 세상으로 : 훈맹정음 100주년' 특별전을 열고 있다. 한글 점자의 탄생과 지난 100년의 변화를 함께 보여주는 전시다.
박두성(1888~1963) 선생은 한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보통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1913년 서울맹학교의 전신인 제생원 맹아부 교사로 부임했다. 당시 학생들이 우리말을 쓰면서도 일본어 점자로 공부해야 했던 현실은 그가 한글 점자 연구에 나선 계기가 됐다.
이전에도 미국 선교사 로제타 홀이 평양에서 창안해 학생들을 가르친 4점식 한글 점자 등이 있었지만 첫소리 자음과 받침 자음을 구별하기 어려운 등 한계가 있었다. 박 선생은 1920년부터 연구를 시작하고 1923년 제자들과 조선어점자연구위원회를 조직해 한글의 구조에 맞는 점자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 결과 1926년 11월4일 훈맹정음이 세상에 나왔다. 이날은 조선어연구회가 훈민정음 반포일로 여긴 음력 9월29일을 양력으로 환산해 처음 기념한 '가갸날'이기도 했다. 이후 1940년 발견된 '훈민정음 해례본'을 근거로 반포일이 양력 10월9일로 다시 정리됐고, 광복 뒤인 1945년부터 이날을 한글날로 기념했다.
훈맹정음은 여섯 개 점의 조합으로 글자와 부호를 표현하는 6점식 한글 점자다. 자음과 모음을 한 음절 안에 모아 쓰는 한글과 달리 첫소리와 모음, 받침을 옆으로 이어 적는다. 같은 자음도 첫소리와 받침에 쓰일 때 점의 모양을 달리해 혼동을 줄였다.
훈민정음이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이라면 훈맹정음은 '눈먼 이들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를 뜻한다. 박 선생이 '시각장애인의 세종대왕'으로 불리는 이유다.
훈맹정음의 의미는 이후 박 선생의 보급과 교육 활동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문자를 만든 뒤 이를 실제로 배우고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데 힘을 쏟았다. 여러 분야의 책을 점자로 만들어 보급하고 전국의 시각장애인에게 점자 설명서와 점자용지 등 학습자료를 우편으로 보내고 편지로 점자를 가르치는 통신교육을 진행했다. 점자책을 주고받는 비용이 학습을 가로막지 않도록 점자 우편을 무료로 이용하게 해달라고 체신국에 건의하기도 했다.
개인의 노력에 기대던 점자 보급과 교육은 이후 국가의 책무로 제도화되기 시작했다
정부는 1997년 '한국 점자 규정'을 고시해 한글뿐 아니라 수학·과학·음악 등 여러 분야에서 사용할 점자 표기 기준을 마련했다. 2016년 5월29일에는 점자의 발전과 보전, 교육·보급을 국가의 책무로 규정한 점자법이 제정됐고 이듬해 5월30일부터 시행됐다.
점자법은 점자를 '한글과 더불어 대한민국에서 사용되는 문자'이자 일반활자와 동일한 효력을 지닌 문자로 규정한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시각장애인의 점자 사용능력 향상과 점자의 발전·보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국가·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에는 점자를 통한 정보 접근·활용을 지원할 정책을 수립·시행할 책무도 부여했다.
국가·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은 시각장애인이 요구하면 일반활자 문서와 같은 내용의 점자 문서를 제공해야 한다. 종이에 찍는 점자뿐 아니라 전자점자도 여기에 포함된다.
최근에는 점자교육을 뒷받침하는 제도도 보강됐다.
2024년 개정된 점자법과 이에 따른 하위법령이 지난해 2월28일부터 시행되면서 점자교원 자격제도와 점자능력 검정의 법적 근거가 마련되고, 점자교육원 지정·지원 체계가 보강됐다. 학교 밖에서 점자를 배우려는 중도실명 성인 등의 교육 기회를 넓히기 위한 제도다.
정부의 제2차 점자발전기본계획(2024~2028)은 2028년까지 전국 17개 시·도에 점자교육원을 지정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공공정보의 점자 제공을 늘리고 교과용 도서와 교육자료의 점자 제작·보급을 지원하는 한편 일반활자와 점자를 짝지은 말뭉치와 디지털 점자지도 등 디지털 환경에서 점자를 사용하는 기반도 확대하기로 했다.
제도가 갖춰지고 있지만 점자가 필요한 일상과 실제 사용 환경 사이에는 아직 간극이 크다.
국립국어원이 전국의 점자 사용 시각장애인 508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지난해 발표한 '2024년 점자 사용 양상 실태 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92.9%가 점자를 자립에 중요한 요소라고 평가했다. 반면 의약품·의약외품과 음식점에서 점자 사용 필요성은 5점 척도에서 각각 4.6점에 달했지만 점자 사용환경에 대한 만족도는 모두 1.4점에 그쳤다.
박 선생은 시각장애인 지원 활동을 담은 기록물 '맹사일지'에서 "어서 바삐 점자를 배워야 원하는 대로 글을 읽게 되는 것이요"라고 적었다.
훈맹정음 반포 100년이 지난 오늘, 점자는 법률이 인정하는 문자가 됐고 국가가 점자를 가르치고 정보를 제공해야 할 책무도 제도화됐다. 훈맹정음 100년은 시각장애인에게 '손끝의 한글'을 만들어준 역사인 동시에 그 글을 배우고 읽고 필요한 정보를 얻을 권리를 넓혀온 역사다. 다만 그 권리를 일상에서 온전히 구현하는 일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허원석 기자
박 선생은 문자를 만든 데서 나아가 점자를 배우고 책을 읽을 기회까지 넓히려 했다. 그 노력은 오늘날 점자의 법적 지위와 국가의 교육·보급 책무를 규정한 점자법과 정책으로 이어졌다.
▲ 훈맹정음 표기법. <국립한글박물관>
다만 점자의 법적 지위가 확립됐지만 생활 속 정보 접근 환경에는 여전히 개선할 부분이 남아 있다. 훈맹정음 반포 100년을 맞아 점자 교육과 사용 환경의 현주소를 살펴봤다.
9일 국립한글박물관과 국가법령정보센터 등의 자료를 종합하면 올해는 한글날을 기념하기 시작하고 훈맹정음이 반포된 지 100년이 되는 해다. 점자의 발전과 보전, 교육·보급에 대한 국가의 책무를 규정한 점자법도 제정 10년을 맞았다.
국립한글박물관은 국립세계문자박물관·송암점자도서관과 함께 지난 7일부터 인천 국립세계문자박물관에서 '점에서 세상으로 : 훈맹정음 100주년' 특별전을 열고 있다. 한글 점자의 탄생과 지난 100년의 변화를 함께 보여주는 전시다.
박두성(1888~1963) 선생은 한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보통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1913년 서울맹학교의 전신인 제생원 맹아부 교사로 부임했다. 당시 학생들이 우리말을 쓰면서도 일본어 점자로 공부해야 했던 현실은 그가 한글 점자 연구에 나선 계기가 됐다.
이전에도 미국 선교사 로제타 홀이 평양에서 창안해 학생들을 가르친 4점식 한글 점자 등이 있었지만 첫소리 자음과 받침 자음을 구별하기 어려운 등 한계가 있었다. 박 선생은 1920년부터 연구를 시작하고 1923년 제자들과 조선어점자연구위원회를 조직해 한글의 구조에 맞는 점자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 결과 1926년 11월4일 훈맹정음이 세상에 나왔다. 이날은 조선어연구회가 훈민정음 반포일로 여긴 음력 9월29일을 양력으로 환산해 처음 기념한 '가갸날'이기도 했다. 이후 1940년 발견된 '훈민정음 해례본'을 근거로 반포일이 양력 10월9일로 다시 정리됐고, 광복 뒤인 1945년부터 이날을 한글날로 기념했다.
훈맹정음은 여섯 개 점의 조합으로 글자와 부호를 표현하는 6점식 한글 점자다. 자음과 모음을 한 음절 안에 모아 쓰는 한글과 달리 첫소리와 모음, 받침을 옆으로 이어 적는다. 같은 자음도 첫소리와 받침에 쓰일 때 점의 모양을 달리해 혼동을 줄였다.
훈민정음이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이라면 훈맹정음은 '눈먼 이들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를 뜻한다. 박 선생이 '시각장애인의 세종대왕'으로 불리는 이유다.
훈맹정음의 의미는 이후 박 선생의 보급과 교육 활동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문자를 만든 뒤 이를 실제로 배우고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데 힘을 쏟았다. 여러 분야의 책을 점자로 만들어 보급하고 전국의 시각장애인에게 점자 설명서와 점자용지 등 학습자료를 우편으로 보내고 편지로 점자를 가르치는 통신교육을 진행했다. 점자책을 주고받는 비용이 학습을 가로막지 않도록 점자 우편을 무료로 이용하게 해달라고 체신국에 건의하기도 했다.
개인의 노력에 기대던 점자 보급과 교육은 이후 국가의 책무로 제도화되기 시작했다
정부는 1997년 '한국 점자 규정'을 고시해 한글뿐 아니라 수학·과학·음악 등 여러 분야에서 사용할 점자 표기 기준을 마련했다. 2016년 5월29일에는 점자의 발전과 보전, 교육·보급을 국가의 책무로 규정한 점자법이 제정됐고 이듬해 5월30일부터 시행됐다.
점자법은 점자를 '한글과 더불어 대한민국에서 사용되는 문자'이자 일반활자와 동일한 효력을 지닌 문자로 규정한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시각장애인의 점자 사용능력 향상과 점자의 발전·보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국가·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에는 점자를 통한 정보 접근·활용을 지원할 정책을 수립·시행할 책무도 부여했다.
국가·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은 시각장애인이 요구하면 일반활자 문서와 같은 내용의 점자 문서를 제공해야 한다. 종이에 찍는 점자뿐 아니라 전자점자도 여기에 포함된다.
▲ 송암 박두성 선생. <국립한글박물관>
최근에는 점자교육을 뒷받침하는 제도도 보강됐다.
2024년 개정된 점자법과 이에 따른 하위법령이 지난해 2월28일부터 시행되면서 점자교원 자격제도와 점자능력 검정의 법적 근거가 마련되고, 점자교육원 지정·지원 체계가 보강됐다. 학교 밖에서 점자를 배우려는 중도실명 성인 등의 교육 기회를 넓히기 위한 제도다.
정부의 제2차 점자발전기본계획(2024~2028)은 2028년까지 전국 17개 시·도에 점자교육원을 지정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공공정보의 점자 제공을 늘리고 교과용 도서와 교육자료의 점자 제작·보급을 지원하는 한편 일반활자와 점자를 짝지은 말뭉치와 디지털 점자지도 등 디지털 환경에서 점자를 사용하는 기반도 확대하기로 했다.
제도가 갖춰지고 있지만 점자가 필요한 일상과 실제 사용 환경 사이에는 아직 간극이 크다.
국립국어원이 전국의 점자 사용 시각장애인 508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지난해 발표한 '2024년 점자 사용 양상 실태 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92.9%가 점자를 자립에 중요한 요소라고 평가했다. 반면 의약품·의약외품과 음식점에서 점자 사용 필요성은 5점 척도에서 각각 4.6점에 달했지만 점자 사용환경에 대한 만족도는 모두 1.4점에 그쳤다.
박 선생은 시각장애인 지원 활동을 담은 기록물 '맹사일지'에서 "어서 바삐 점자를 배워야 원하는 대로 글을 읽게 되는 것이요"라고 적었다.
훈맹정음 반포 100년이 지난 오늘, 점자는 법률이 인정하는 문자가 됐고 국가가 점자를 가르치고 정보를 제공해야 할 책무도 제도화됐다. 훈맹정음 100년은 시각장애인에게 '손끝의 한글'을 만들어준 역사인 동시에 그 글을 배우고 읽고 필요한 정보를 얻을 권리를 넓혀온 역사다. 다만 그 권리를 일상에서 온전히 구현하는 일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허원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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