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업 바람 타고 힘 받는 소액주주 운동, 성공사례 쌓으며 더 강력해진다

▲ 두산그룹이 지배구조 개편 일환으로 두산에너빌리티 신설법인과 두산로보틱스 합병을 추진하는 것을 두고 소액주주들이 반발하고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정부가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밸류업 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소액주주 운동도 힘을 받고 있다.

소액주주 운동은 흩어진 의결권을 모아 소액주주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성공사례가 늘고 연말로 갈수록 밸류업 정책 기대감이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밸류업에 역행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한 소액주주 운동 역시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기업가치 강화를 위해 9월 중 밸류업지수를 선보이고 2~3개월 두 밸류업 상장지수펀드(ETF)를 출시한다는 계획을 세워뒀다. 

시장에서는 밸류업지수가 나오고 이와 관련한 ETF가 나오면 조 단위의 기관투자자의 자금이 유입되면서 다시 한 번 밸류업 바람이 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9월을 밸류업의 본격적 시작으로 볼 수 있는 셈인데 이에 맞춰 소액주주 운동도 더욱 거세지고 있다.

정부가 연초부터 밸류업 정책으로 기대감을 키워 놓은 상황에서 되레 밸류업 정책에 역행하는 헐값 합병, 상장폐지 등이 발생하고 있어서다.

두산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이 대표 사례로 꼽힌다.

두산로보틱스와 두산밥캣은 7월11일 이사회에서 완전모자회사 관계를 구축해 시너지 효과를 높이겠다는 이유로 주식의 포괄적 교환을 결의했다. 

하지만 적자를 거듭하고 있는 두산로보틱스와 건실한 흑자를 내고 있는 두사밥캣과 합병비율을 1대 0.63으로 결정하자 소액주주를 중심으로 한 반발이 커졌다. 이에 금융감독원이 두 차례 신고서 정정을 요구했다. 

결국 두산로보틱스는 8월29일 정정공시를 통해 포괄적 주식교환 계약을 해제하기로 했다. 소액주주 반발에 금융당국이 화답한 모양새다. 하지만 두산밥캣 지분을 보유한 두산에너빌리티 신설법인과 두산로보틱스 합병은 예정대로 추진한다.

소액주주들은 이 방안 역시 소액주주 이익을 침해한다고 보고 행동주의 플랫폼 '액트'와 '헤이홀더' 등을 통해 흩어진 힘을 모으고 있다.

이상목 액트 대표는 2일 두산에너빌리티로부터 주주명부를 전달받았다고 밝혔다.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밥캣 임시주총에서 소액주주들의 힘을 모아 지배구조 개편안건이 부결될 수 있도록 의결권 대리행사를 권유하기 위해서다.

액트에 따르면 올해 주주총회 31개 종목에서 1만9944명의 주주가 의결권을 행사했다. 

DI동일 주주연대는 최근 법무법인과 계약을 맺고 서민석 DI동일 회장과 서태원 대표이사 부회장, 상근감사 4명을 상법 및 특정경제범죄법 위반(배임) 혐의로 서울 수서경찰서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주주연대는 DI동일 최대주주 정헌재단에 대한 DI동일의 자금 대여를 문제 삼고 있다. DI동일은 2020년부터 2023년까지 100억 원 규모를 정헌재단에 대여했다. 주주연대는 이 자금 대여가 상법상의 ‘신용공여 금지규정’을 위반했다고 보고 있다. 반면 DI동일은 급박한 경영환경에 관한 결정으로 적법한 절차에 따라 진행됐다고 주장한다. 

주주연대는 2월 DI동일의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해 자회사 동일알루미늄(지분 90.39%)를 흡수합병할 것도 제안했다. 2차전지 양극박 국내 1위 기업 동일알루미늄의 별도 상장 우려를 제거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LG화학이 물적분할을 통해 LG에너지솔루션을 상장해 주주가치 침해 논란이 일었던 것과 같은 사례가 DI동일에서 나올 수 있다고 본 셈이다. 또한 DI동일의 부동산 등을 처분해 동일알루미늄 증설에 활용해 경영효율성을 높여야한다고 주주연대는 주장했다. 

심의섭 NH투자증권 연구원도 “DI동일은 양극박 선두기업 자회사 동일알루미늄과 부동산, 자사주 등 풍부한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며 “부동산 대부분이 유휴부지로 불용자산 매각 등을 진행하면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현금활용 능력을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밸류업 바람 타고 힘 받는 소액주주 운동, 성공사례 쌓으며 더 강력해진다

▲ 소액주주들이 행동주의 플랫폼 '액트'와 '헤이홀더'를 통해 힘을 모으고 있다.


헤이홀더에서는 아세아제지 소액주주 활동이 눈에 띈다. 아세아제지는 지난해 7월 정부의 밸류업 정책에 앞서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정책 공시를 내놨다. 

아세아제지는 2023년과 2024년 각각 200억 원의 자사주 취득을 실시하고 2026년까지 단계적으로 별도기준 순이익의 25%를 주주에게 돌려준기로 했다. 이와 함께 2024년과 2025년 전년에 취득한 자사주 75%씩 소각하고 2026년도 소각되지 않은 물량을 모두 소각하기로 했다. 

다만 지난해부터 자사주를 취득했지만 좀처럼 주식소각 공시는 나오지 않았다. 이에 소액주주 연대는 적극적 행동에 나섰다.

소액주주 연대 측은 7월 정부의 세제 혜택을 받고 밸류업지수 포함 등을 위해 밸류업 공시를 요구하는 서한을 보냈고 8월에는 자사주 소각 공시 요청 서한도 보냈다.

아세아제지는 이에 화답해 5일 보통주식 200만 주, 154억8천만 원 규모의 주식을 소각한다고 공시했다.

아세아제지 관계자는 “소액주주 연대 측과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있고 밸류업 공시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관투자자들도 소액주주 연대에 힘을 보태고 있다.

대표적으로 VIP자산운용은 메리츠금융지주를 모범사례로 들어 지주회사와 사업회사 중복상장에 따른 저평가 문제를 완전자회사화를 통해 해소하고 투자자들에게 단일 선택지를 줘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최준철 VIP자산운용 대표는 최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조용한 행동주의를 추진하면서 아세아, 풍산홀딩스, 영원무역홀딩스 등 지주회사들에게 중복 상장을 없애 자회사 100% 완전자회사를 추진하는 것을 건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산운용업계 한 관계자는 “소액주주들이 저평가 탈피를 위해 힘을 모으는 것뿐 아니라 적극적 주주제안과 위법 여부를 꼼꼼히 챙기는 등 과거와 달리 응집력과 전문성이 크게 높아졌다”고 말했다.

그는 “두산, 셀트리온 등 지배구조 개편에도 목소리를 내고 있고 신성통상의 상장폐지도 불발시키는 등 성공사례가 누적될수록 소액주주 운동은 더욱 활발해질 것이다”고 덧붙였다. 류수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