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SK이노베이션이 최고경영자에 처음으로 전력 분야 전문가를 외부에서 수혈해 에너지·전력을 중심으로 하는 포트폴리오 변화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신임 정승일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은 한국가스공사와 한국전력공사 사장 등을 거친 관료 출신 전력산업 분야 전문가로 SK그룹에는 올해 초 영입됐다. 그동안 SK이노베이션 수장은 석유화학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내부 출신이 주류를 이룬 만큼 향후 경영 전략에 ‘변화’ 가능성이 엿보인다.

▲ 정승일 SK이노베이션 신임 총괄사장(왼쪽)과 강동수 SK이노베이션 신임 사장. <SK이노베이션>


다만 각자대표 체제를 이어갈 강동수 사장은 SK이노베이션 기존 사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안정 속 변화’에 방점이 찍힌다.

그만큼 SK그룹은 SK이노베이션에 향후 최대 과제로 2차전지 중심의 리밸런싱(사업재편) 이후 포트폴리오 ‘안착’을 주문한 것으로 풀이된다.

30일 SK이노베이션에 따르면 정승일 SK이노베이션 신임 총괄사장과 강동수 신임 사장 모두 2027년 초 주주총회를 통해 이사회에 진입한다.

SK이노베이션은 이날 신임 총괄사장에 정승일 ㈜SK 미래성장 담당 사장을, 사장에는 강동수 ㈜SK 담당 사장 겸 PM부문장을 선임했다. 두 사장은 11월1일 정식 취임한다. 내년 주주총회를 통해 이사회에 진입하면 각자대표이사를 맡을 것으로 예상된다.

SK이노베이션이 올해 3월 시작한 각자대표이사 체제는 물론 후임이 선임되면서 총괄사장-사장 체제도 이어지게 됐다. SK이노베이션의 ‘총괄사장’ 직책은 지난해 5월 그룹 지주사 ㈜SK의 장용호 사장이 SK이노베이션도 챙기면서 생겨났다.

SK그룹이 최근 1년 사이 변화가 컸던 SK이노베이션의 체제 안정에 무게를 둔 셈이다.

다만 정승일 SK이노베이션 신임 총괄사장 이력을 살펴보면 사업 차원에서는 변화 의지가 엿보인다.

SK이노베이션의 수장에는 그동안 전통 에너지 산업인 석유화학업에서 잔뼈가 굵은 내부 출신 인사가 주로 앉았다. 대한석유공사에서 출발해 정유업을 중심에 둔 만큼 자연스러운 기조로 여겨졌다.

드물게 외부인 학계 출신으로 SK이노베이션을 이끈 구자영 전 부회장도 글로벌 오일 메이저 엑손모빌에서 연구 및 개발 경력을 쌓은 인사로 평가됐다.

다만 정승일 신임 총괄사장은 관료 출신으로 주로 전력과 에너지 분야에서 경험을 쌓았다. 정 총괄사장은 1965년생으로 1989년 행정고시(33회)에 합격해 현재의 산업통상부에서 일했다.

이후 한국가스공사 사장과 산업통상자원부 차관, 한국전력공사 사장 등을 지냈다. 대한전기협회 회장을 거쳐 사외이사 경력도 삼성전기나 사우디전력공사 등 전력 관련 기업에서 쌓았고 SK그룹에는 올해 1월에야 SK하이닉스 고문으로 영입됐다.

SK그룹은 그만큼 이번 인사를 통해 조정된 포트폴리오의 안착에 무게를 둔 것으로 평가된다. 그동안 SK이노베이션의 2차 전지 중심 리밸런싱이 정점을 지났다고 본 것이다.

SK이노베이션은 미래를 ‘전기화(Electrification)’ 시대로 짚고 이에 대비해 2차전지를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육성해 왔다. 하지만 이를 맡은 계열사 SK온은 적자를 이어가며 ‘아픈 손가락’으로 여겨졌고 리밸런싱의 중심에 서 있었다.

최근 SK이노베이션은 SK온 부진의 여파가 끼친 배터리 분리막 자회사 SKIET를 흡수합병했고 지난해에는 SK온이 ‘캐시카우’로 평가되는 윤활유 기업 SK엔무브를 흡수합병했다. SK에코플랜트가 배터리 생산설비 공장을 건설하던 SK에코엔지니어링을 흡수합병한 것도 SK온발 일감이 줄어든 여파가 컸다는 평가가 나왔다.

강동수 신임 사장이 정승일 총괄사장의 파트너로 낙점된 것은 정유를 중심으로 하는 기존 사업을 안정시켜 이를 바탕으로 2차전지 사업 리밸런싱을 이어가려는 흐름의 연장선으로 읽힌다.

정승일 총괄사장과 달리 강동수 사장은 SK그룹에서 오래 경력을 쌓았다. 재무와 전략 분야에 전문성을 지닌 것으로 평가되며 특히 SK이노베이션과 SK에너지 등에서 일해 기존 에너지 산업 관련 이해도도 높다.

▲ 장용호 SK이노베이션 대표이사 총괄사장(왼쪽)과 추형욱 SK이노베이션 대표이사 사장. 이번 인사로 장용호 (주)SK 대표이사 역할에 집중하고 추형욱 사장은 SK그룹에 새로 만들어진 동남아 담당으로 이동한다.


이번 SK이노베이션 계열사 사장단 인사에서 변화가 석유화학 부문에 집중됐다는 점도 같은 맥락으로 분석된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말 인사에서 김종화 SK에너지 사장이 SK지오센트릭(옛 SK종합화학) 사장을 겸임하도록 했다. SK지오센트릭 사장이 선임된 지 1년여 만이었던 만큼 석유화학 분야의 구조조정에 맞추겠다는 의지로 읽혔다.

다만 이번 인사에서 SK에너지 사장은 강동수 SK이노베이션 사장이, SK지오센트릭 사장은 김원기 SK엔무브 CIC 사장이 겸직하도록 했다. 1년 만에 석유화학 사업 리더십 구조까지 바뀐 것이다.

SK이노베이션이 그만큼 지정학적 불확실성 등에 따른 변동폭이 큰 석유화학업 포트폴리오를 안정시키기 위해 고심을 이어간 것으로 보인다. 기존 사업이 안정돼 현금흐름이 풍부해야 2차전지 중심의 전기 사업 확대를 추진할 수 있다.

SK이노베이션은 향후 전기 사업자로서 전환에 속도를 내겠다는 방침을 세워뒀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이번 인사는 사업 포트폴리오 리밸런싱과 재무구조 개선을 바탕으로 미래 성장 전략의 실행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며 “기존 사업의 경쟁력과 수익성을 높이는 동시에 전기 사업자로의 전환을 가속화해 지속가능한 성장 기반을 공고히 하겠다”고 말했다. 김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