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던칸 그란트 글렌파클라스 글로벌 영업 총괄이 5일 저녁 서울 성동구 '언더시티 성수'에서 스스로를 소개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스코틀랜드 위스키 브랜드 글렌파클라스가 한국에 새로 출시한 15년 캐스크 스트렝스 제품을 알리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190년 역사의 글렌파클라스를 6대째 이어가는 그란트 가문의 던칸 그란트 글렌파클라스 글로벌 영업 총괄도 직접 한국을 찾았다. 한국 소비자들에게 신제품을 소개하고 브랜드의 전통을 알리기 위해서다.
5일 저녁 서울 성동구 '언더시티 성수'에서 열린 글렌파클라스 크리스마스 파티. 참석자들이 잔을 들고 건배 구호를 맞춰보는 것으로 분위기가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몇 차례 연습이 이어진 뒤 무대에 오른 그란트 총괄은 한국 전용 신제품을 소개하기에 앞서 190년간 이어온 증류소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그란트 총괄은 현재 가업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최연소 가족 구성원이자 글렌파클라스의 6대 회장 내정자다.
이날 가장 눈길을 끈 대목은 질의응답 시간에 나왔다.
한 참석자가 최근 위스키업계에서 와인이나 럼 등 다양한 숙성통(캐스크)을 활용하고 있다며 글렌파클라스도 새로운 캐스크를 사용할 생각이 있는지 물었다. 새로운 시도보다는 전통을 지키는 브랜드로 알려진 글렌파클라스의 앞으로의 방향을 묻는 질문이었다.
그란트 총괄은 "여러 가지 실험을 하고 있지만 앞으로도 전통을 유지할 것 같다"며 "10년 뒤 200주년을 맞아 지금까지 보지 못한 방식의 제품을 선보이더라도 올로로소 셰리 캐스크를 사용할 것 같다"고 말했다. 올로로소 셰리 캐스크란 스페인의 드라이 스타일 주정강화 와인인 '올로로소 셰리'를 담았던 오크통이다.
재미있는 점은 글렌파클라스가 한국 시장에서는 새로운 제품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는 것이다.
2026년 8월 한국 전용 10년 캐스크 스트렝스 제품을 선보인 데 이어 11월에는 15년 제품까지 출시했다. 숙성통은 바꾸지 않되 숙성 연수와 원액 구성을 달리해 한국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맛을 보여주겠다는 접근이다.
▲ (왼쪽부터) 글렌파클라스 105와 글렌파클라스 10년 캐스크 스트렝스(CS), 글렌파클라스 15년 캐스크 스트렝스 배치 No.1. <비즈니스포스트>
첫 잔인 '105'는 크리스마스 파티에 더없이 잘 어울리는 제품이었다. 탄생부터 크리스마스와 인연이 깊기 때문이다.
1968년 그란트 가문의 4대손 조지 S. 그란트가 지인들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을 고민하다가 물을 섞지 않은 위스키를 선물했다. 반응이 예상보다 좋아 아예 상품으로 내놓게 됐다. 58년 전 크리스마스 선물이 지금까지 글렌파클라스의 대표 제품으로 남아 있는 셈이다.
이름에 붙은 '105'도 그냥 나온 숫자가 아니다. 과거 영국에서 알코올 도수를 표시하던 프루프 단위에서 따온 것으로 현재 기준으로는 알코올 도수 60%에 해당한다. 일반적인 위스키가 물을 섞어 도수를 40% 안팎으로 낮추는 것과 달리 원액의 높은 도수를 살리는 것이 캐스크 스트렝스의 특징이다.
두 번째 잔은 한국 소비자만을 위해 만든 10년 캐스크 스트렝스다.
글렌파클라스 공식 수입사 비바이에이치가 이마트 트레이더스와 협업해 2026년 8월 내놓은 제품이다. 알코올 도수는 60.4%로 첫 잔인 105보다도 0.4%포인트 높다. 10년 이상 셰리 캐스크에서 숙성한 원액을 사용했으며 꿀과 바닐라, 배 등의 풍미를 특징으로 내세운다.
마지막 잔은 이번 파티의 주인공인 '글렌파클라스 15년 캐스크 스트렝스 배치 No.1'이었다. 15년 동안 숙성한 원액을 사용했으며 알코올 도수는 58.1%다. 앞서 마신 두 제품보다 도수는 낮지만 숙성 기간은 가장 길다. 글렌파클라스가 올해 한국 시장에 내놓은 두 번째 전용 캐스크 스트렝스 제품이다.
15년 제품에는 올로로소 셰리 오크통(혹스헤드) 캐스크에서 숙성한 원액만 사용했다. 특히 전체 원액 가운데 45%는 퍼스트필 캐스크에서 숙성했다.
퍼스트필은 셰리 등을 담았던 오크통을 위스키 숙성에 처음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오크통에서 우러나오는 풍미를 상대적으로 강하게 느낄 수 있는 원액을 일정 비율 섞어 맛에 변화를 줬다.
브랜드가 설명한 세 제품의 풍미도 조금씩 다르다.
105는 건과일과 토피의 진한 맛을, 10년 캐스크 스트렝스는 꿀과 바닐라의 달콤함을 강조한다. 15년 제품에는 바닐라와 서양배, 꿀의 향에 건과일과 토피, 시나몬과 정향 등 향신료의 풍미를 더했다. 같은 셰리 캐스크를 사용하더라도 숙성 기간과 원액 배합에 따라 서로 다른 맛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 던칸 그란트 글렌파클라스 글로벌 영업 총괄이 5일 저녁 서울 성동구 '언더시티 성수'에서 글렌파클라스의 증류 방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숙성통도 아무 곳에서나 가져오지 않는다. 글렌파클라스는 스페인 헤레스 지역의 가족 경영 업체와 협력해 올로로소 셰리 캐스크를 공급받고 있다. 원액을 만드는 방법부터 숙성 과정까지 오랫동안 이어온 방식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란트 총괄이 새로운 캐스크 사용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선뜻 다른 선택지를 제시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위스키를 병에 담기 전 마지막 선택 역시 사람의 몫이다. 그란트 총괄은 증류소 매니저인 캘럼 프레이저가 직접 원액의 향을 맡고 맛을 보고 색을 확인한 뒤 사용할 캐스크를 고른다고 소개했다. 컴퓨터나 인공지능(AI)에만 의존하지 않는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그란트 총괄은 "사람을 위한 위스키를 사람이 만든다"고 말했다.
이러한 고집을 뒷받침하는 것은 오랜 가족 경영이다. 글렌파클라스는 1836년 스코틀랜드 스페이사이드에서 정식 증류 면허를 취득했고 1865년 존 그란트가 증류소를 인수했다. 이후 6대에 걸쳐 그란트 가문이 증류소를 운영하고 있다.
다만 한국 위스키 시장의 분위기는 예전만 못하다. 관세청 수출입통계에 따르면 2026년 1~8월 국내 위스키 수입량은 1만2205톤으로 2025년 같은 기간보다 22.1% 줄었다.
글렌파클라스는 이처럼 전체 시장이 위축된 상황에서도 한국 전용 10년과 15년 캐스크 스트렝스를 연이어 선보였다. 고도수와 셰리 캐스크 숙성 위스키를 즐기는 국내 소비자들에게 선택지를 넓히는 데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조성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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