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터 틸은 비즈니스 명저 ‘제로 투 원(Zero to One)’을 통해 파격적인 사상을 전파한 실리콘밸리 최고의 사상가이자 지배자다. 팔란티어 홈페이지는 피터 틸이 “당사의 공동 창립자 중 한 명이며 2003년부터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팔란티어>
필자는 실리콘밸리의 철학자이자 지배자인 피터 틸의 ‘뇌’ 속이 몹시 궁금했다. 과연 그의 두뇌 깊은 곳에는 어떤 심리 기제가 작동하고 있는 것일까. 그 단서 하나를 예전 기사에서 찾았다.
2007년 12월, 실리콘밸리의 타블로이드 매체 고커(Gawker)는 ‘피터 틸은 완전히 게이다’라는 상당히 자극적인 제목을 달았다. 당사자의 허락 없이 성적 정체성을 강제로 세상에 폭로하는 ‘아우팅(Outing)’을 감행한 것이다.
당시 피터 틸은 극히 가까운 지인들에게만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밝혔다고 한다. 이 보도는 결과적으로 실리콘밸리의 가장 잔인한 복수극으로 끝을 맺는다.
피터 틸이 누구이던가. 비즈니스 명저 ‘제로 투 원(Zero to One)’을 통해 파격적인 사상을 전파한 실리콘밸리 최고의 사상가가 아니던가. 게다가 일론 머스크, 리드 호프만 등과 함께 페이팔(PayPal)을 세워 강력한 권력 집단 ‘페이팔 마피아(PayPal Mafia)’의 대부로 불린 인물이 아니던가.
2004년 페이스북의 가능성을 일찌감치 알아보며 최초의 외부 투자자가 되었고, 거대 AI·데이터 기업 팔란티어(Palantir Technologies)를 공동 창업한 테크 제국의 수장이 아니던가. 고커가 건드려도 너무 큰 인물을 건드렸다는 얘기다.
놀랍게도 그는 철저한 ‘문과생’이다. 대학에서 철학과 법학을 공부했다. 피터 틸에 정통한 연구자들에 따르면, 흔히 실리콘밸리의 거물들이 코딩이나 공학적 알고리즘으로 세상을 정복했다면, 피터 틸의 무기는 사람의 본성과 군중의 심리를 내밀하게 들여다보는 통찰력이라고 한다.
◆ 10년을 얼려둔 차가운 분노, ‘심리적 스텔스’ 전쟁
피터 틸이 공동 설립한 ‘팔란티어’라는 기업의 네이밍도 심상치 않다. 판타지 소설과 영화로 유명한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수정 구슬 ‘팔란티르’에서 따왔다.
소설과 영화 속에선 시공간을 넘어 세상의 모든 동태와 적의 허점을 감시하는 관찰 도구다. 하지만 이 구슬의 진짜 무서움은 따로 있다. 세상을 훤히 들여다보면서도 정작 이를 보는 자신의 존재와 위치는 어둠 속에 완벽히 감출 수 있다는 점이다. 피터 틸의 승부수 역시 이 수정 구슬이 가진 심리적 메커니즘과 닮았다.
▲ 피터 틸의 성적 정체성을 아우팅(Outing)한 당시 ‘고커 미디어(Gawker Media)’ 기사. 피터 틸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10년 간의 소송 대리전을 펼쳤고, 1억 4,000만 달러 배상 판결을 얻어내면서 고커 미디어는 파산했다. <고커 아카이브>
다시 아우팅 사건으로 돌아가 보자. 완벽한 통제력을 증명하며 살아온 피터 틸 같은 승부사에게, 타인에 의해 강제로 치부와 사생활이 파헤쳐지는 모욕은 단순한 화를 넘어선다. 그것은 자신의 자아 기반 전체를 흔드는 치명적인 수치심이자 파괴적인 분노를 불러일으킨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그 즉시 불같이 화를 내며 상대의 멱살을 잡거나 미친 듯이 소송을 걸며 감정을 분출했을 것이다. 그러나 피터 틸의 대응은 완전히 달랐다. 개인적인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소송도 하지 않았다. 공개적인 보복도 하지 않았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그의 뇌 속에서는 ‘정서적 차단’이 일어났다. 뜨거운 분노가 이성을 마비시키지 못하도록 감정 회로의 전원을 일시적으로 꺼버린 것이다. 그러면서 불같이 끓어오르는 감정을 냉혹한 계산 영역으로 보냈을 것이다.
필자는 피터 틸의 그런 차가운 감정 모드를 ‘심리적 스텔스(Psychological Stealth)’라 정의해 보려 한다. 적의 동태를 고요히 감시하고 판의 구조를 읽어내되, 자신의 공격 의도를 적의 레이더망 아래로 완벽히 숨긴 채 단 한 번의 정밀 타격을 준비하는 극강의 심리 기술을 말한다.
◆ 1600억 원의 벼락, 무대 뒤에서 완성된 복수극
이 ‘심리적 스텔스’ 작전의 클라이맥스는 2012년 고커가 프로레슬링의 전설 헐크 호건의 사적인 성관계 동영상을 무단 유출했을 때 찾아왔다. 고커는 법원의 삭제 명령마저 무시하고 버텼다.
호건은 거대한 매체를 상대로 싸울 소송 자금이 부족했다. 그때 호건을 예의주시하던 이가 있었다. 바로 피터 틸이었다. 그는 호건이라는 대리인을 양지에 세웠다.
피터 틸은 호건에게 1천만 달러가 넘는 소송비 전액을 지원하며 “절대 합의하지 말고 법적으로 끝장내라”는 조건을 걸었다. 당시 고커는 자신들이 단지 유명인(헐크 호건) 한 명과 지루한 사생활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고 착각했다. 자신들이 싸우는 진짜 상대가 거울 뒤에서 수정 구슬을 쥐고 판을 조종하는 피터 틸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른 채 말이다.
2016년 3월, 플로리다 법원 배심원단은 고커에게 1억 4천만 달러(한화 약 1600억 원)라는 벼락같은 배상금 판결을 내렸다.
사상 유례없는 거액의 배상 판결에 고커 미디어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졌고, 곧이어 즉각적인 파산 신청을 냈다. 그제야 헐크 호건의 뒤에 숨어 거대한 방패를 조종하던 진짜 주인이 피터 틸이었다는 사실이 세상에 드러났다. 언론과 실리콘밸리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고커가 세상에서 완벽히 지워진 후에야 비로소 피터 틸은 무대 위로 걸어 나왔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복수가 아닌, 아무 죄 없는 사람들을 짓밟는 불량배(고커)에 맞선 자선적 행위였다.”
10년 동안 자신의 감정과 전장을 완벽히 통제한, 극강의 통제력을 증명한 셈이다. 어떤가, 소름 돋는 복수극이 아닌가. 피터 틸의 전략과 사상에 완전히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분명한 건 그가 자신의 거대한 성취와 명성을 지키기 위해 극히 장기적인 전략으로 움직였다는 점이다.
여러분은 비즈니스 전장에서 어떻게 싸우고 있는가. 만약 무기가 없다면, 이 극강의 ‘심리적 스텔스’ 전략으로 무장해 볼 생각이 있는가. 선택은 자유다. 이재우 경영어록서 ‘일언천금’ 저자
| 이재우는 일본 경제와 기업인들 스토리를 오랫동안 탐구해왔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열성팬으로 '원령공주의 섬' 야쿠시마 사진전을 열기도 했다. 부캐로 산과 역사에 대한 글도 쓰고 있다. 글로벌 경영인들의 어록을 모은 '일언천금'의 저자이기도 하다. |





![[시승기] 제네시스 첫 두 개의 심장 'GV80 하이브리드', 고성능에 연비도 잡았다](https://www.businesspost.co.kr/news/photo/202610/20261026154135_192077.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