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B산업은행은 지금의 아시아나항공이 처한 상황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은 총대를 메고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퇴진과 아시아나항공 포기를 이끌어냈다. 아시아나항공의 주인을 무려 31년 만에 바꾸는 만만치 않은 일을 시작한 셈이다.
이 과정에서 이 회장이 보여준 단호함과 결단력에 높은 평가가 쏟아지기도 했다.
그러나 자축하기엔 씁쓸한 뒷맛을 지울 수 없다.
산업은행이 지금의 아시아나항공 사태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는 씻기 어려운 원죄를 짊어지고 있는 탓이다.
아시아나항공 매각이라는 초유의 사태에 이르게 된 배경에
박삼구 전 회장이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박 전 회장이 그룹을 확장하고 또 재건하는 과정에서 아시아나항공을 이용하면서 아시아나항공도 조금씩 망가졌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 이르도록 '방조'한 것은 산업은행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과 산업은행은 10년 동안이나 얽히고설킨 관계를 이어왔다. 둘의 인연은 2009년 6월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산업은행과 재무구조 개선 약정을 맺으면서 시작됐다.
그 뒤 산업은행이 금호아시아나그룹 구조조정을 이끄는 과정에서 박 전 회장에게 지나친 특혜를 줬다는 의혹은 끊임없이 제기됐다. 산업은행은 박 전 회장을 상대로 강경한 입장을 보이는 것 같다가도 결정적 순간에는 그의 손을 들어줬다.
결정적으로 박 전 회장은 2015년 말 7228억 원에 금호산업을 되찾는 데 성공한다. 산업은행이 박 전 회장에게 부여한 우선매수청구권 때문이다.
박 전 회장의 잘못된 판단으로 금호아시아나그룹이 거의 공중분해됐는데 이를 고스란히 다시 박 전 회장에게 넘겨주며 기회를 준 것이다. 한 번 경영에 실패한 사람에게 재기의 기회가 얼마나 주어지기 어려운지는 주변의 자영업자들만 봐도 알 수 있다.
당시에도 박 전 회장의 사례가 실패한 경영자에게 기업을 쉽게 돌려주는 나쁜 선례를 만들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워크아웃 등 기업 구조조정이 도입취지와 달리 실패한 대주주와 경영진이 자리를 보전하고 기업의 부실을 털어내는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것이다.
아시아나항공이 망가지기 시작하면서 피해는 고스란히 직원들의 몫이 됐다. 지난해 불거진 이른바 ‘기내식 대란’에서도 승객들의 원성을 온몸으로 받아낸 건 결국 현장에 있던 직원들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아시아나항공은 매각을 앞두고 몸값을 높이기 위해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고 있다. 지난 수 년 동안 비상경영으로 줄일 수 있는 건 다 줄였는데 최근 희망퇴직까지 실시했다.
지금도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나오는 매각 관련 소식 하나하나를 마음 졸이면서 지켜보고 있는 건 아시아나항공 직원들이다.
박 전 회장은 어찌 보면 숨은 승자가 됐다.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하면 수천억 원을 쥐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과거 산업은행의 행보를 놓고 비판적 의견을 밝혀왔던 이 회장은 다소 억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산업은행 회장이라는 자리는 스스로 한 일만 책임지는 자리가 아니다.
이번 매각이 단순히 그동안 아무도 하지 못했고 할 생각도 못했던 ‘
박삼구 몰아내기’에 성공했다는 점에만 매몰되서는 안 될 일이다.
부실과 실패의 책임을 확실하게 묻고 재기의 기회를 주는 과정에서 얼마나 깊은 고민이 있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되새기는 계기가 돼야 한다.
그리고 기업의 규모가 클수록 이 고민은 더욱 깊어져야 한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