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한 사람은 금융위원장에서 금융그룹 회장으로 직함이 바뀌었다. 하지만 다른 한 사람은 10년 전과 같은 명함을 사용하고 있다.

5일 서울 중구 우리금융지주 본사에서 마주 앉은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과 헨리 페르난데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회장의 이야기다.

▲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오른쪽)과 헨리 페르난데스 MSCI 회장 겸 CEO가 5일 서울 중구 우리금융그룹 본사에서 면담을 가진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우리금융그룹>


두 사람은 2016년 1월에도 만났다.

당시 임종룡 회장은 금융위원장으로서 페르난데스 회장에게 한국 증시의 MSCI 선진지수 편입을 요청했다.

이번에는 우리금융 회장으로 페르난데스 회장을 맞아 기후변화와 인공지능(AI) 시대 금융회사의 역할을 논의했다.

임종룡 회장이 금융당국 수장에서 금융그룹 경영자로 자리를 옮기는 동안 페르난데스 회장은 MSCI를 계속 이끌었다. 그는 1998년부터 올해로 28년째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다. 2007년부터는 이사회 의장도 겸하고 있다.

금융지주 회장에게 세 번째 임기를 허용할지를 놓고 한 해 가까이 논의를 이어온 한국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이력이다.

두 사람의 만남을 보며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금융사 경영자가 한 회사를 오래 이끄는 일은 그 자체로 비판받을 일일까.

페르난데스 회장 재임 기간 MSCI는 실적과 기업가치가 크게 성장했다.

연간 매출은 상장한 해인 2007년 약 3억7천만 달러에서 지난해 약 31억3천만 달러로 8.5배 늘었다. 시가총액은 상장 첫날 약 26억 달러에서 이달 5일 기준 약 469억 달러로 약 18배 증가했다.

물론 MSCI는 투자정보를 제공하는 미국 상장사로 은행을 거느린 국내 금융지주와 사정이 다르다.

더군다나 국내 금융지주 회장들의 장기 재임을 두고 ‘이너서클’이라는 말까지 나온 데 이유가 없는 것도 아니다.

회장과 가까운 인사들이 이사회를 꾸리고 그 이사회가 다시 현직 회장을 단독 후보로 추천한다면 주주들은 이미 후보가 한 사람으로 좁혀진 뒤에야 표를 던지게 된다.

다른 후보에게도 충분한 기회를 줬는지, 어떤 이유로 현직 회장을 다시 추천했는지, 구체적 설명이 없다면 주주로서는 연임의 타당성을 판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 같은 이너서클 문제가 연임을 제한한다면 사라질 수 있을까.

회장에게 두 번째 임기까지만 허용하더라도 현직에게 유리하게 후보를 추리고 평가하는 관행이 이어진다면 공정성 논란은 남을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국내 금융당국이 금융지주 회장의 3연임을 법으로 금지하는 방안에서 한발 물러선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금융위원회가 2일 여당에 설명한 금융지주 지배구조 개편안은 연임 횟수에 따라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와 주주총회의 의결 요건을 높이는 데 무게를 뒀다.

아직 당정 협의가 남았지만 연임을 더 엄격하게 심사하면서도 세 번째 임기를 맡길 만한 경영자인지는 주주가 판단할 여지를 뒀다.

금융당국이 은행 임추위의 역할을 강화하도록 요구하는 가운데 지주 회장의 인사 영향력을 어디까지 인정할지도 함께 생각해 볼 문제다.

은행은 금융지주의 핵심 계열사다. 은행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지주의 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룹 경영을 총괄하는 회장으로서 은행장에 자신의 뜻을 잘 따르고 손발이 맞는 인사를 앉히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물론 회장이 사실상 낙점한 사람을 은행 이사회가 그대로 추인하는 것은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경쟁 자체를 제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은행 이사들이 다른 후보를 추천할 수 있고 회장이 선호하는 후보 역시 같은 기준으로 검증받는다면 지주 회장이 은행장 인선에 의견을 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 아닐까.

▲ 헨리 페르난데스 MSCI 회장은 2016년 1월15일 임종룡 당시 금융위원장을 만나 한국의 MSCI지수 편입 문제를 논의했다. 사진은 당시 페르난데스 회장이 서울 중국 금융위원회를 방문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지배구조에 정답은 없다. 하지만 한국도 미국도, 한국 금융사도 미국 금융사도 모두 동의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주주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10년 전과 같은 직함으로 임종룡 회장과 마주 앉은 페르난데스 회장을 보며 국내 금융지주에서도 그런 주주들의 선택이 가능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융당국은 후보들이 공정하게 경쟁할 규칙을 세우고 이사회는 누구를 어떤 기준으로 평가해 추천했는지 시장에 설명할 책임이 있다. 그 과정을 충실히 거쳤다면 다음 CEO를 선택하는 것은 주주의 몫이다.

어쩌면 우리가 지금 힘줘 논의하고 있는 연임 횟수를 제한하고 지주의 계열사 임원 선임권을 약화하는 것은 부수적 문제일지 모른다. 전해리 기자